바쁘다. 바쁘다 하고 살다보니 주위 사람들이 이제 내가 바쁜 건 아주 당연한 걸로 받아들인다. 잦은 회의와 이어지는 야근. 자꾸만 쏟아지는 일들. 그런 일들에 치이고 파묻혀 지내면서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건 술과 담배와 운동과 하소연을 들어주는 몇몇 지인들 덕분이다. 아, 강의도 있다.


강의를 하는 건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이다. 무척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고, 준비 단계에서부터 시간도 많이 투여해야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확신하는 신념을 전달하는 것은 기쁨과 보람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강의 요청이 더 많아졌다. 학교 강의도 더 많아졌고, 에너지자립마을을 비롯해서 성인 대상 강의도 많아졌다. 둘 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다만 사전에 잘 준비하지 않으면 대상에 맞는 강의를 하기 어렵다. 역시 준비가 핵심이다.


작년에도 강의했던 동네 학교 2곳의 강의 요청이 이번에도 들어왔다. 지역을 대표한다고 표현할 만한 여고 2곳이다. 작년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에 준비를 했는데, 한 학교는 작년에 내 강의를 들었던 아이들이 서너명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동아리 차원에서 강의를 들어서 그런가보다. 물론 확 업그레이드 시킨 강의를 준비했기에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또 한 학교는 한 반이 함께 왔는데, 이 친구들 강의를 듣는 태도도 좋았고, 강의 후 이어진 팀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강사로서 무척 만족한 시간이었다.


이후 남고생 거의 40여명 강의가 있었는데, 진짜 힘들더라. 2시간 강의 후 목이 완전히 가버렸다. 계속 떠들고, 딴 짓하는 아이들 때문에 자꾸 목청을 높이다 보니 목이 쉴 수 밖에.


하루는 작은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공동육아방과후협동조합에서 초등 저학년과 부모를 위한 에너지 강의를 했다. 하필 다른 일로 바쁜 시기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초등학생 대상 강의는 정말 오랜만이라 조금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확실히 오랜만에 초등 강의를 하다보니 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다. 하긴 어디 초등 강의 뿐이겠는가. 지금껏 내 강의를 돌아보면 난 늘 욕심을 과하게 부려왔다. 하나라도 더 설명하려고 빠른 말투로 급하게 말을 하다보니 강의 후반부로 갈수록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늘 있었다. 고치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더라.


암튼 이번 방과후협동조합 강의에서 좋았던 건 아이들의 반응이 아니라 부모들의 반응이었다. 처음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쉽게 시작했던 강의가 점점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스스로 깨닫고 있었지만,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는 초등생들을 다시 끌고가기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부모들이라도 제대로 잡자고 생각했다. 부모들의 반응은 확실히 좋았다. 여러 명이 다시 한번 어른 대상으로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막연하고 어려운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고, 작지만 실천을 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 덕분에 강의를 하면 나도 즐겁고 기쁘다.


어느 중학교 교사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가서도 반응이 무척 좋았다. 이 강의는 교사 대상이어서 특히 더 준비도 많이 했고, 신경도 많이 썼다. 기대한 만큼 좋은 반응이 나와서 나도 무척 좋았다.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거의 3시간을 이동해서 강의를 하고 왔다. 강의가 오전 10시 였는데, 7시 이전에 출발해야 했다. 평소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이라 그 시간에 움직여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 강의 자료를 손보고, 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잠을 거의 못 잤다. 무척 피곤했지만, 초행 길이라 졸지도 못했다. 창 밖 풍경을 살피며 안내 방송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했다.


약 20명이 참여했는데, 확실히 그린리더 과정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듣는 분들이라 강의 집중도가 남달랐다. 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게 되는 편인데, 오늘 그 상한치를 찍은 것 같다. 다만 시간에 쫓겨서 후반부로 갈수록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하고, 빠른 말투와 급한 진행을 또 반복했다. 강의를 마치고 진행자가 "원래 그렇게 말투가 빠르시냐고?" 물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지는 않은데, 시간에 쫓겨서 그랬다." 답했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부르겠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의 먼 거리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강의는 완전 만족스러웠다. 이런 날엔 목이 좀 아파도, 에너지를 확 쏟아서 좀 피곤해도 괜찮다. 기분이 좋으니까.


또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게 될까? 벌써 또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 근데 다음 강의는 초등학교다. 당장 초등학생 눈높이의 강의자료를 보강해야 한다. 그래도 강의자료를 만드는 일은 다른 일보다 즐겁다. 아이들과 소통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 반면 원고 작업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아니 대다수의 문서작업이 그렇다. 오늘도 벌써 마감을 2주나 넘긴 원고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이미 보낸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달성했다고 판단했는데, 분량을 확 줄여달라고 했다. 내가 제일 못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분량 줄이기다. 기본적으로 무슨 글을 쓰더라도 길게 쓰는 버릇이 있다. 편집 일을 해봐서 남의 글 줄이기는 익숙한데, 내 글은 도무지 못 줄이겠다. 아! 내 자신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빨리 가서 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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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5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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