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멍하고, 목이 붓고,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났다. 올해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좀 컨디션이 나쁘거나, 목이 아프거나 한 적은 있었지만, 다행히 잘 넘겼다 싶었는데, 결국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올해 처음‘ 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올해가 이제 이틀 남았네. 아니 오늘은 이미 절반 이상 지나가버렸으니, 하루 남았다고 해야하나? 하루를 남겨놓고 감기를 걸려버리다니! 게다가 제일 짜증나는 코감기라니!

오늘 애들이 오는 날이다. 큰 아이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 오기로 했고, 작은 아이는 아까 와서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나는 이불을 둘둘말고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불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겠다. 가스요금이 무서워 혼자 있는 날엔 거의 켜지 않는 보일러도 작은 아이가 왔다는 핑계로 켜뒀다. 그러고보니 간밤에 술먹고 새벽에 들어와서 보일러도 안 켜고 춥게 자서 감기에 걸린건가? 이제껏 잘 버텼건만, 왜 하필 오늘, 애들 오는 날.



어제 지른 책들이 도착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별로 읽지도 못하면서, 자꾸 사기만 한다.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책을 많이 정리해서 책장에 여유를 만들어뒀었는데, 벌써 책장이 꽉 차서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졌다. 바닥에 쌓인 책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저걸 다 언제 읽으려나. 예전엔 책이 오면 기분좋고 설레였는데, 왜 오늘은 기분이 별로냐? 이것도 몸이 아파서 그런건가?

애교

어제 밤 친구를 만나러 나가다가 길에서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두 사람 다 작은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방과후협동조합 엄마들이다. 그 둘은 아마도 의료사협 모임에서 술을 한 잔 한 듯, 기분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후배랑 2차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다른 친구를 만나 술을 더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둘 중 하나가 ˝술 마시러 가는 거죠? 우린 술 마시고 들어가는 중˝ 이라고 말했다. 근데 그 말투가 참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애교 섞인 말투라고 해야하나? 우린 잠시 몇 마디 얘길 나누고 금방 헤어졌는데, 그 애교 섞인 말투가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러고보니 몇 몇 여성들이 애교를 부린다고 느낀적이 있다. 왜 내게? 아니, 당연히 날 이성으로 느껴서 애교를 떠는 거라고 착각한 건 아니다. 그저 왜 이 타이밍에, 왜 나한테인지 궁금할 뿐이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좀 친한 사람에게 그러는게 아닌가 싶었다.

며칠 전 만난 어느 여성은 예전에 일했던 단체 선배였는데, 뭔가 도와달라고 해서 시간을 내서 만났고, 끝나고 일어서는데 애교 섞인 말투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 단체에 일했던 게 꽤 오래전이니 알고 지낸지 제법 오래되었는데, 그런 말투는 처음 들었다. 그 말투를 듣자마자 나와도 친분이 있는 그의 남편이 떠올랐다. 이 사람도 자기 남편에게는 자주 애교를 부리겠지. 최근에도 회의자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그는 평소 내게 꽤나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당연히 개인적인 친분을 맺을 일이 별로 없었고, 늘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암튼 그 애교 덕분에 이 사람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선배 활동가 한 사람은 50대 여성인데, 자주 애교 섞인 말투로 말을 건다. 대체로 장난인데 아주 귀여운 척 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도 여자구나 싶은 생각. 이 선배는 가벼운 스킨쉽도 잦은 편이다. 사무실에서 오가다 마주쳐 잠시 얘길 나누다보면 굳이 내 손을 잡고 말을 하기도 하고, 같이 술 마시고 떠들다가 툭툭 치거나 슬쩍 껴안기도 한다. 당연히 오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라면 어쩌면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같은 층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활동가는 일 때문에 자주 만나기도 하고, 오가다가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이 여성은 목소리가 작고 가늘다. 말투도 조용조용하고, 마치 수줍은 듯한 느낌이다. 한번은 회의를 마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평소와 같은 조용조용하고 수줍은 듯한 말투가 아니었다. 평소 말투가 이것일테고, 내가 늘 들었던 그 말투는 사람들 앞에서 나오는 말투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뭔가 작은 부탁을 하면서 애교 섞인 말투로 말하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건 부탁하느라 그런거니 오해하면 안 되는데, 왠지 오해하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런저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그런 가벼운 애교를 봤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뭔가 부탁할 땐 애교를 부리는 구나. 그리고 가끔 어떤 이들은 친한 사람에게 편하게 애교를 하기도 하는구나 싶다.

내가 사귀었던 여러 여성들은 대처로 애교가 없는 편이었다. 애교를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내게 애교를 부리면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모임에는 나갈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프다고 빠질지, 약속을 지키러 나가서 콧물을 훌쩍이며 앉아 있어야 하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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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서 감기 걸리셨나봅니다.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님, 연말을 맞아 새해인사 드립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면 새해가 됩니다.
좋은 날들이 늘 가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18-01-17 09:17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계속 상태가 안 좋아 해가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답글 겸 새해 인사 남깁니다.

늘 인사 남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7-12-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일 좀 지금보다 더 적게 하고 복은 더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

감은빛 2018-01-17 09:1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일 두루 이루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7-12-3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교 있는 여자를 보면, 나와 좀 다른 부류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애교를 어떻게 보이는 건지 잊어 먹은 1인입니다.
새해에 웃는 시간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8-01-17 09:20   좋아요 0 | URL
페크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페크님도 많이 웃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018-01-15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