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친구가 페이스북에 어제 아들을 안고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는 길이 힘들었다고 올렸다. 그집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사진을 보니 너댓살쯤 된 것 같다. 그래. 아이가 태어났다는 글을 봤던 게 그쯤 전이었던 것 같다. 그 글을 보니 생각났다. 2008년 촛불집회때 어느날인가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행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난 당시 네 살이었던 큰 아이와 애들 엄마와 함께 갔었다. 출판사 동료도 함께였다. 우린 당연히 행진에 함께 했고, 난 아이를 안고 여의도까지 걸었다. 물론 걷는 도중에 무척 힘들었다.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있었다. 애들엄마가 짧게 받아 안기도 했고, 출판사 동료도 잠시 안아주기도 했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짧은 구간은 아이 손을 잡고 걷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구간을 내가 안고 갔다. 내 아이 정도는 내가 충분히 안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왼팔에 아이를 안고, 오른팔로는 주먹 구호를 외치면서 당당하게 걸어갔다.
마포대교를 건널 때가 마지막 고비였다. 아이는 졸려했고, 왼팔은 이제 감각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상하게 아이는 오른팔로 안으면 불편해했다. 물론 당연히 오른팔과 왼팔을 번걸아가며 안았지만, 왼팔로 안고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걱정이 된 출판사 동료가 아이를 받아 안으려 했지만, 아이가 가지 않으려 했고, 애들엄마도 옆에서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엇지만, 나는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이 다리만 건너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자꾸만 아이를 안은 팔이 쳐져도 괜찮다 여겼다. 결국 다리를 건넜을 때 약간 희열을 느꼈다. 어려운 목표를 하나 이루었다는 기쁜 감정. 게다가 이 경험이 언젠가 아이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내가 지켜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친구의 글에 댓글을 남겼다. 난 2008년에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안고 갔다고. 자랑이었다.
시위 문화
여러 행사의 진행을 맡아왔지만, 집회 사회를 맡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기자회견 사회는 맡아봤는데, 집회와 성격이 좀 다르다. 집회 사회는 직접 해보니 오히려 간단하더라. 순서대로 사람들 발언 시키고, 발언 중간 중간에 구호 한 번씩 외치고, 그 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격앙된 말투로,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말하면 된다. 아, 막판에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거을 잊으면 안된다.
시대가 많이 변했건만, 이 구태의연한 시위 문화는 거의 변함이 없다. 집회에서 사회를 보는 사람도, 집회에서 발언하는 사람도 역시 그대로더라.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문화에 갇혀 있고, 대다수의 시민들을 배려하지 못하더라. 물론 난 그들의 문화가 익숙하고, 과격한 투쟁가와 과격한 구호와 주먹 다짐을 보면 피가 끓어오르고, 전의를 불태울 수 있어서 좋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그런 문화는 참 우스울 것 같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은 거의 없었는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보니 남성들의 부적절한 언행들을 토로하는 글들이 여럿 있더라. 괜히 젊은 여성(혹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중년 남성은 집회 시위 현장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니 이 공간엔 그런 남성이 오히려 더 많을 거다. 그들은 정치적 이슈 때문에 광장에 나왔고, 스스로 진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생활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보수적인 꼰대일 뿐이다.
이번 집회 전에는 이런 웹자보도 돌아다니던데, 제발 집회 시위 장소에서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폭력과 비폭력
어제 내자동 교차로에서 일부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밤늦게 경복궁 역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눈으로 보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그 인원들이 새벽까지 버티다가 결국 경찰에 의해 인도로 밀려났다고 들었다. 차벽을 향한 항의. 광장에서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내 의지를 전달하기 위한 행동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엇다. 이를 폭력시위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난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에 갇히면 우리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따지기 위해, 이 미친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권력집단과 경찰은 언제나 차벽을 치고 그 뒤에 숨는다. 아니 차벽으로 우리가 적당히 놀다가 지쳐 돌아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차벽은 폭력이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비열한 폭력이다.
그들은 이미 국민을 농락했고, 세금을 자기 주머니로 꿀꺽했다. 불법을 버젓이 저지르고도 전혀 처벌받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거리에서 항의하려 하자 차벽과 경찰 병력을 동원한 진압이라는 폭력으로 맞선다.
비폭력이라는 말 자체를 반대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와 비폭력은 단순히 권력에 굴복해서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과연 다른가? 차벽을 쳐 놓으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뜻이니. 적당히 소리 지르고 항의하다가 돌아가야 하나?
지난 글에서도 썼듯이 꼭 차벽을 뚫기 위한 노력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벽을 우회해서 서울 시내 전역을 우리만의 해방구로 만들어 버려도 좋겠다. 다만 그 좁은 공간안에 갇혀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비폭력 저항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가로 막는 것이 있다면, 그걸 넘어서 가는 것이다. 차벽을 뚫던가, 차벽을 우회해 차도를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키던가, 경찰청을 우리가 봉쇄해버리던가, 뭔가 시도를 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고 뒤에서 비폭력만 외치는 것은 더러운 권력자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 갇히는 거이다.
오늘 페이스 북에서 보니 누군가 이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인도에서 있었던 간디의 소금행진을 예로 들었다. 영국 군인이 총을 쏘면 맞으면서 갔다고 했다. 우리의 3.1운동은 어떤가? 일본 군인의 총칼에도 저항했던 선조들이 이었다.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우리가 거리에 서는 것은 뭔가를 바꾸고 싶은 열망에 소중한 주말 시간을 바쳐 나오는 것이다.
무언가 바꿔내고 싶다면, 최선을 다 했으면 좋겠다.
물론 모두가 맨 앞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오히려 문화제 같은 방식으로 우리만의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재미도 없고 공감도 얻지 못하는 선언문 따위 읽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대다수 시민들이 즐길만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행진은 꼭 청와대를 향하지 말고 서울시내 곳곳으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어떨까? 그리고 차벽이라는 공권력의 폭력에 화가 나는 사람들은 차벽에 모여 그 분노를 표출하면 되지 않을까? 모두가 같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뒤에서 비폭력을 외치며, 정당하게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시위라고 손가락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백남기 어르신은 작년 민중총궐기에서 밧줄로 차벽을 끌어내려다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셨다. 그건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내가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당신이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대포를 사람에게 쏘라고 지시한 인간과, 그걸 실행한 인간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여전히 잘먹고 잘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들이 만들어놓은 차벽 안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