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발전소 청소


토요일 아침, 오늘은 태양광 발전소 청소가 있는 날이고, 낮까지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 날이고,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는 날이다. 발전소 청소에는 사다리나 막대 달린 걸레 등의 도구도 필요하고, 그 도구들을 옮길 차량도 필요하고, 청소를 할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소에 참여하겠다고 답을 한 조합원이 거의 없었다. 전날 다시 확인해보니, 오겠다고 답을 하신 분 중에 못온다고 한 분도 있었다. 이사님 중 한 분이 초등학생들을 데려오기로 했는데, 몇 명이나 데려오실 지 여쭤보려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사람이 안오면 어쩌지? 그냥 소수의 인원이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만 청소 해야겠지.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차량을 빌려 놓고, 아침에 빌릴 사다리를 어떻게 찾고 또 반납할 지 약속을 정했다. 


어쨌거나 다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애들 깨웠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발전소 청소를 가기 싫어했다. 하지만 낮시간까지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했고, 난 발전소 청소를 하러 가야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집에 있겠다고 했다. 물론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니 둘만 둘수도 있겠지만, 집에 밥도 없고, 반찬도 없었다. 점심도 문제이고, 어쨌거나 내가 책임지는 시간인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설득했다. 억지로 준비 시키고 김밥을 사러 갔다. 반은 아침에, 나머지 반은 청소를 마치고 먹을 에정이었다. 하필 이 마음이 급한데, 김밥집에 김밥 사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10분을 넘게 기다려 겨우 김밥을 사서 돌아왔다. 아이들은 느릿느릿 옷을 입고 있었다. 서두르라고 잔소리를 몇 번 하고, 협박을 몇 차례하고, 그래도 안 되어서 화를 벌컥 내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사다리를 빌리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더니 10분 전이었다. 그런데 약속시간에서 15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25분 동안 멍하니 사람들을 기다렸다. 결국 발전소로 가서 짐을 내리기로 했다. 그제서야 이사님 두 분과 학생들 여러명과 학부모 한 분이 오셨다.


학생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청소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만 아랫 열은 손으로 닦을 수 있지만, 윗 열은 사다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사다리 위에서 막대 걸레를 이용해 닦는 일은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힘을 줘서 빡빡 문질러야 하는데, 자칫 잘못 균형을 잃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지지물 없이 사다리 맨 꼭대기에 서서 힘을 쓰는 일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사다리 작업을 거의 혼자 다 했다. 큰 아이는 내가 사다리 꼭대기에 위태롭게 서서 힘을 쓰면서 걸레질을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무섭다고 했다.


아랫 열의 청소는 벌써 끝났건만, 윗 열의 청소는 아직 멀었다. 사다리를 옮기고, 올라서서 균형을 잡고 걸레질을 하고, 다시 내려와 사다리를 옮기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만 가을 비 덕분인지 패널이 전체적으로 그리 더럽지 않았다. 봄에는 찌든 때가 많아서 엄청 더러웠는데, 이번에는 닦아도 별로 청소한 티가 안 날만큼 더럽지 않았다. 결국 이사님 두 분이 전체적으로 살펴본 후에 윗 열 청소는 그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청소를 마쳤다. 학생들의 공이 컸고, 우리 아이들도 열심히 했다. 큰 아이는 최근 키가 부쩍 커서 애들엄마와 비슷할 정도로 자랐고, 정수리가 내 입술 정도까지 닿았다. 그 키를 이용해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작은 아이는 손을 뻗어도 아랫 열의 아래쪽 밖에 손이 닿지 않아, 걸레질을 하기 어려웠다. 대신 나와 박자를 맞춰 내가 사다리를 오르면 막대 걸레를 올려주고, 내가 내려갈 때 막대 걸레를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돌아오면서 사다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사무실에 와서 걸레들을 빨아서 널고, 막대와 물통들 등 도구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차량을 반납했다. 큰 아이가 친구 생일 잔치에 가야 한다고, 친구 선물 살 돈이 없다고, 대신 사 달라고 했다. 문구점에 들러 선물 값을 치르고, 큰 아이를 보냈다. 작은 아이는 애들 엄마와 시간을 맞춰야 해서 나와 좀 더 있었다. 작은 아이까지 애들 엄마에게 보내고 집회를 갔다.


100만 인파


시청 역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인파로 가득차서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광화문 방향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도무지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길을 찾아 계속 움직였는데, 간신히 좀 이동이 가능한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역사 밖으로 나왔더니 또 인파로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밀고 밀리는 와중에 간신히 사람들을 만났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운동을 20년 넘게 했는데, 이런 인파는 처음이었다. 와! 오늘 진짜 사람 많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 그럼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경찰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 안에서 잘 놀다가 돌아가면, 저들이 과연 눈이나 껌뻑할까? 과연 박근혜가 국민이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려올 생각을 하기나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수많은 인파가 각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여해 이 좁은 공간에 발디딜 틈 없이 모였지만, 그 인간은 "그래서 뭐?"라고 할 게 뻔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차벽은 폭력이다


오늘은 두드러지는 폭력사태가 없었다. 경찰이 아예 진압 시도를 하지 않았고, 차벽도 경복궁 앞으로 후퇴했다. 지금까지 집회 현장에서 폭력은 차벽을 뚫기 위한 시위대의 시도에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맞섰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차벽은 위헌이며, 그 자체로 시민들의 정당한 이동권을 막는 불법이며, 폭력이다. 차벽을 끌어내거나 부수는 행위는 경찰의 불법을 교정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다. 법치국가에서 살아가는 올바른 국민이라면 경찰의 불법 행위를 지적하고, 바로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줘야 하고,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그걸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틀린 일을 그냥 그대로 당하고 살았으니, 지금 우리가 이 말도 안되는 미친 시대를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다행히 오늘은 차벽이 후퇴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경복궁 앞에 세워진 차벽을 보면서 여전히 불편했다. 100만이 모였으면 뭐하나? 밤이 되면 사람들은 돌아갈 것이고, 차벽은 여전히 견고할 것이고, 경찰과 권력은 차벽 안에서 안도할 것이다. 시위대는 경찰과 권력이 "옛다 이 안에서 놀아라!"라고 정해준 범위 안에서 열심히 놀다가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0만이 모였으면 뭔가 해야 한다. 그게 뭐라도. 우린 오늘 과연 무엇을 했을까?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행사를 하면 뭐하나? 수많은 시민들이 종로와 시청과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면 뭐하나? 그걸로 박근혜를 끌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나? 나는 꼭 청와대로 진격을 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행동들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찰과 권력이 정해놓은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들이 긴장하고, 그들이 최소한 우릴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차벽이 우릴 막고 있다면, 꼭 차벽을 끌어내거나 뚫어야 하는 건 아니다. 대신 차벽이 없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저들을 위협할 수 있다. 청와대로 가면 뭐하나? 지금도 들은 척도 안 하는데, 청와대로 가면 들어주나? 안 들어준다고 우리가 로베스피에르 처럼 그들을 사형에 처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집회 시위 현장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경찰이 이미 차벽과 물대포와 곤봉과 방패 등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것은 맞지 않다. 차벽과 과잉 폭력진압이라는 경찰이 저지른는 불법 폭력 행위를 우리는 언제까지 눈감아 줘야 하나? 아니 왜 눈감아 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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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1-13 0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시위는 시위이고 축제는 축제이지 축제 같은 시위가 과연 최상의 시위 문화인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은빛 2016-11-13 19:11   좋아요 0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께서 적어주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ureka01 2016-11-13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청와대보다 차라리 검찰청으로도 갔으면 좋겠습니다....법이 무너지는데 법부터 좀 바로 세웠으면 ㅠ.ㅠ

감은빛 2016-11-13 19:12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저는 경찰청 점거나 봉쇄 이런거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samadhi(眞我) 2016-11-13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폭력시위가 합법이고 경찰은 시민이 다칠까봐 보호하는 본래의 역할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감은빛 2016-11-13 19:14   좋아요 0 | URL
경찰이 권력의 개가 된지 오래죠.
아무 죄없는 시민들에게 곤봉과 방패를 휘둘렀고,
물대포를 직사로 쏘았죠.
그렇게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죠.
우리는 이런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