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1
아이들과 들어간 식당은 국수집이었는데, 돈까스라던가 볶음밥 등의 다양한 식사 메뉴가 있었다. 큰 아이가 카레새우볶음밥을 먹고 싶다해서 작은 아이와 둘이 나눠 먹으라고 말하고 난 국수를 시켰다. 음식이 나왔는데 작은 아이가 갑자기 볶음밥이 먹기 싫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내 국수를 3분의 1가량 덜어줬다. 큰 아이도 맛있게 먹고, 나도 맛잇게 먹었다. 우리가 다 먹을 동안 작은 아이는 식당 구석 저 높은 곳에 있는 티비를 보느라 거의 먹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여러차례 경고를 했으나 말을 듣지 않는 작은 아이에게, 우리는 다 먹었으니 가겠다고, 넌 여기서 티비를 보라고 말하고 일어서서 계산을 하려했다. 작은 아이는 그제서야 후루룩 재빨리 먹기 시작했다.
식당 아줌마는 우리가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들어온 아줌마와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렸기 때문에 그 분들이 교회에서 만난 사이라는 걸 알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계산을 하려고 일어선 그 순간 그들이 나눈 대화가 완전 충격이었다. 박근혜와 최순실 이야기였다. 당연하겠지. 요즘 어딜가도 다 그 얘기 뿐이니.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박근혜가 무슨 잘못이냐고, 영험하다는데 좀 믿을 수도 있지 뭐 이런 대화를 나누는게 아닌가!
계산을 하고 돌아서서 급하게 그릇을 비운 작은 아이 손을 붙들고 나오면서 이 식당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음식도 괜찮고, 아줌마도 친절하고 다 좋았는데 안타깝다. 당신은 순수하게 대통령을 좋아하고, 이 상황이 안타까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이 어이없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늘 깨달아야 한다. 아이가 좋아했던 카레새우볶음밥은 이제 못 사주겠다.
식당2
칼국수는 어려서부터 참 좋아했던 음식이다. 특히 해물칼국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동네에 정말 맛있는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다른 식당으로 바뀌었다. 단골이어서 무지 잘해주던 집이었는데. 아쉽다. 몇 년 전 오이도에서 먹었던 바지락칼국수는 바지락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다 먹고 나니 바지락 껍질로 산이 하나 생기더라. 정말 맛있었지만, 그날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결국 다시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동네에 생긴 들깨칼국수 집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갔다. 이미 애들엄마가 아이들과 와 본적이 있는지 아줌마가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는 눈치였다. 탁자가 겨우 4개인 조그만 식당. 맨 뒤쪽 탁자에 엄마와 딸로 보이는 일행이 식사 중이었고, 맨 앞 탁자엔 젊은 여성 둘이 엎드려서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그 둘 중 하나가 일어나서 물병과 컵을 갖다줬다. 저 둘은 식당 아줌마의 딸이구나. 들깨칼국수를 주문하고 아이들은 당연히 티비에 눈을 고정시켰고, 나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잠시 폰을 들여다봤다.
칼국수가 나왔고, 아이들의 앞접시에 적당량을 덜어주고,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젊은 여성 한 명이 또 들어와서 두 여성이 엎드려 폰을 만지작거리는 자리에 앉더니 역시 같은 자세로 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딸이 셋이구나. 뒷자리의 모녀 일행이 나가고 마치 조폭처럼 깍두기 머리를 한 덩치 큰 아저씨가 들어와서 그 자리에 앉았다. 아까 우리에게 물과 컵을 갖다준 여성이 이번에도 그 아저씨에게 물과 컵을 갖다줬다.
한참 후에 세 여성 중 한명이 고개를 들더니 "아빠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곱슬머리를 뒤로 넘긴 머리를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깍두기 머리 아저씨가 반가워하며 자꾸 말을 건넨다. 이 곱슬머리 아저씨는 조금 사교성이 없는 건지, 깍두기 머리 아저씨가 귀찮은 건지 조금 건성으로 답을 한다. 뒤에 또 다른 아저씨가 들어오면서 드디에 4개의 탁자가 다 찼다. 이번에도 같은 여성이 물과 컵을 갖다주고, 주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도와 음식을 준비한다. 나머지 두 여성은 여전히 같은, 엎드린 자세로 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주방으로 들어간 여성의 자리에 곱슬머리 아저씨, 즉 아빠가 앉았다.
식당 아줌마가 엎드린 자세의 여성 두 명에게 "아빠한테 인사 했냐?"고 묻는다. 둘 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응"이라고 작게 답했다. 다시 아줌마가 "언제 했냐?"고 "못 들었다"고 하니, 이번엔 주방에서 엄마를 돕던 여성이 인사 했다고 자기가 시켜서 했다고 끼어들었다. 저 여성이 셋 중 맏이겠구나. 식당 일을 돕는 태도나, 주방까지 들어가 일하는 모습이나, 폰만 들여다보는 나머지 형제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태도까지.
그런데 주방에서 나온 그 여성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 아빠의 무릎에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앉는 것이 아닌가. 다 큰 성인 여성이 아빠 무릎에 앉는 걸 처음 봐서 조금 충격이었다. 그는 아빠 무릎에서 앉아서 다시 폰을 들여다봤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앉는 걸 보니 맏이가 아닌가보다. 막내인가? 맞은 편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는 작은 아이를 슬쩍 본다. 작은 아이는 무조건 내 무릎에 앉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슬그머니 일어나 내 무릎에 앉고, 집에서도 무조건 엉덩이를 들이밀고 무릎에 앉는다. 반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큰 아이는 이제 더이상 내 무릎에 앉지 않는다. 훌쩍 키가 커서 내 입까지 닿는 큰 아이는 벌써 몇 해 전부터 무릎에 앉지 않았던 것 같다.
한참 후에 곱슬머리 아저씨가 다리 아프다고 한소리를 한 후에야 그 여성은 일어섰다. 그동안 식당 아줌마가 가족들을 먹일 음식을 준비했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 여성이 엎드린 두 여성에게 탁자 위를 치우라고 명령하고, 음식을 날라왔다. 반찬을 떠서 나르고, 밥을 옮기는 것도 모두 그 여성이 했다. 아,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여성이 마지못해 일어나서 돕는 척을 하더라. 그럼 이 사람이 막내인가. 곱슬머리 아저씨가 옆자리에 놓은 가방을 치우고 자리를 옮긴 후 아빠와 세 딸은 식사를 했다.
그날은 미국 대선 전날이어서 깍두기 아저씨와 곱슬머리 아저씨가 트럼프에 대해 한참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레 최순실 얘기로 넘어가더라. 그 와중에 식당 일을 돕던 여성이 토요일에 광화문 집회에 친구랑 갈 거라고 말을 했고, 곱슬머리 아빠가 우리 가족 다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주방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그럴까?"라고 답했는데, 내가 들어온 이후로 단 한번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젊은 여성이 "난 안돼"라고 답했다. 다른 여성이 "데이트?"라고 물었고, 그 여성은 고개만 끄덕였다. 식당 일을 돕던 여성이 "언니, 광화문에서 데이트 해"라고 아무렇지도 말했고, 그 여성은 "말해볼게"라고 답했다. 아, 이 여성이 둘째였구나. 맏이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고 둘째.
아, 이 가족 대화가 너무 좋았다. 함께 밥 먹으면서 토요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가자고 권하는 가족이라니! 그때 즈음 우리 탁자 위의 들깨칼국수 그릇은 완전히 비어있었다. 작은 아이가 나를 보고, "아빠 이제 면이 없어."라며 울상을 지었다. 내가 조금 덜 먹을 걸 그랬나. 집에 가서 뭔가 먹을 걸 해줘야겠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식당 아줌마가 아이들에게 아주 살갑게 인사를 한다. 이 식당 자주 와야겠다.
신뢰
일이 너무 많아서 밤을 새고 또 야근을 했다. 평소라면 밤을 새고 나서 집에 돌아와 잠시라도 자고 다시 나오는데, 그럴 수 없어서 편의점에서 에너지음료를 마시고 계속 일했다. 늙긴 늙었나보다. 몇 년 전만해도 밤새 교정을 보고 나서 에너지음료를 마신 후 차를 몰고 지방으로 취재를 가기도 했는데, 이젠 에너지음료를 마셔도 별로 소용이 없네. 믹스 커피를 두 개 쏟아붓고 찐하게 마셔도 아무 소용이 없네.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서류 작업을 완료하고 제출해야 했다. 집중해야 했다. 졸릴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더니 몸에 담배 냄새가 배인 느낌이었다. 게다가 밤을 새고 세수조차 하지 못해 무지 씻고 싶었다. 얼른 서류 작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씻고 면도하고 그리고 서류를 제출하러 시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이사님이 저녁에 우편물 작업을 하러 오신다고, 미리 출력해놓으라고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미지 파일로 보냈다. 컬러 출력을 하려면 다른 사무실에 가서 부탁을 해야 한다. 조합원에게 보내려면 많은 부수를 출력해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양을 부탁해도 될까? 아! 근데 그 사무실 젊은 여성 활동가들에게 부탁하려고 생각하니 지금 내 몰골이 너무 말이 아닌거다. 밤을 샜고, 세수조차 하지 못했고, 수없이 많은 담배를 피워 온 몸에서 막 이상한 냄새가 날 것 같았다. 홀아비 냄새 막 이런거. 그래도 우편물을 보내려면 부탁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주는 죽음의 주간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너무 많았다. 도저히 혼자 다 해낼 수 없을 만큼의 양이었다. 그렇다고 그 중에 버려도 되는 일이나,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매일 술을 마시던 내가 일 때문에 이틀이나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몇 달 만의 일인가? 아무리 바빠도 술은 마시고 다녔건만, 이번 주는 그럴 수 없었다.
어제 우편물 작업을 도와주러 이사님이 세 분이나 오셨다. 그날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일이 어렵긴 하지만 간신히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했더니, 초췌한 내 몰골을 보고 이사님 한 분이 고생이 많다고 몸보신 시켜 주겠다고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다. 글쎄 뭐 딱히 먹고 싶은 건 없고, 그저 술이 먹고 싶을 뿐이다.
술자리에서 신뢰에 대해 얘기했다. 이사님들은 나를 믿는다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속으로 그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들지 마시죠! 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이자, 일터에서는 이사를 맡고 있는 이 사람들과 벌써 몇 년인가?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잠시 떠올려보니 그간 우리가 마신 술이 어마어마했구나 싶다.
1차와 2차는 그저 그랬으나, 3차로 횟집을 간 것은 좋았다.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입에 집어넣은 회 한 조각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43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해(아! 중간에 1시간 반을 졸았구나) 엄청 피곤하긴 했지만, 술이 맛있었고, 회가 맛있었다.
바쁜 한주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바쁘고, 내일은 무지 바쁘겠지만, 그래도 잘 해내리라 믿는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