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전에 어딘가에서 어떻게 인연을 맺었던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게 아주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비교적 최근 일인 경우도 있겠다. 또 그 인연에 대해 한 쪽만 기억하거나, 둘 다 기억은 하는데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나, 둘 다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중에 그런 인연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반가움을 느끼지 않을까? 아, 물론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겠다.
학생운동, 사회운동 판에 있으면 이런 거 자주 겪는다. 어딘가 현장에서 마주쳤던 인연인데, 당시에는 모르는 사이였다가 나중에 인사를 하고,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그때 함께 있었던 분이셨군요. 하고 깨닫는 것이다. 이 판이 워낙 좁고, 이 판에 계속 있다보면 언젠가는 마주칠 확률이 높으므로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힘들다. 한번 스쳤던 인연이라도 곧 잊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계기로 만나 관계를 쌓다가 알고보니 그때 나랑 이렇게 만났던 인연이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게 둘 다 서로 몰랐다가, 아~ 그랬군요.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한 쪽만 기억하는 경우라면 좀 민망할 때가 있다. 몇차례 글에서 언급했듯이, 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라 난감하고 민망한 경우가 많다. 분명 처음 만났을 거라 생각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이 언제 어디서 만났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그럼 뒷머리를 한번 긁적거리고, 제가 머리가 나빠서 잘 기억을 못해요. 죄송해요! 이러고 만다. 어차피 고민하고 기억을 더듬어봐야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의 인연을 둘 다 기억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하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에 만났다가, 긴 시간 서로 볼 일이 없다가, 최근 종종 마주칠 일이 생기는 인연들이 있다. 동향 사람, 대학 선배, 예전에 일했던 단체에서 알던 활동가 등이 있다.
한편 둘 다 서로 몰랐는데, 우연한 계기로 예전의 인연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최근 내 기준에서 신기한 인연을 둘 발견했다. 하나는 이메일 계정을 정리하다가 찾았다. 쓰고 있는 포털 메일함의 용량이 다 찼다고 해서 오래된 메일들을 뒤지며 꼭 필요한 것들을 놔두고, 나머지는 다 지우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도착한 메일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었던 잡지사 기자로 지원하는 이력서에서 최근 자주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찾은 것이다.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조금 놀랐다. 설마 하고 문서를 열어 사진을 봤더니, 그 사람이 맞았다. 와! 이 사람이 그때 당시에 기자로 지원했던단 말야?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 사람을 몇 년 일찍 회사에서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신기했다.
또 하나는 오늘 우연히 찾았다. 저녁에 회의를 했는데,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일이 떨어졌다. 안그래도 오늘 할 일이 많아 야근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거기에 더 많은 일들이 얹어진 것이다. 할일이 많은 수록 더 일을 하기는 싫어진다. 일의 규모가 어느정도 인지, 얼마나 하면 언제 끝날지 예측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양의 일이 떨어지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조금 끄적끄적 문서를 쓰다말다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이름을 입력하면 삼국지 영웅중 한 명에게 대입하는 심심풀이용 게임(?)을 올렸길래, 이름을 넣어봤다. 내 이름을 넣었더니 유비가 나왔고,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덧이름인 감은빛을 넣었더니 서서가 나왔다.
이름을 갖고 몇 가지 생각을 하다가 호기심에 나와 이름이 같은 페이스북 이용자 얼마나 있는지 검색해봤다. 명단이 나왔다. 흔한 이름이 아니라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이번에는 이름을 구글에 넣고 검색해봤다. 이미지 검색으로 들어가니, 아이들 사진이 나왔다. 이건 지역 시민신문에 연재했던 글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사진, 이건 녹색당에서 일인시위 했을 때 사진이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큰 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던 시절의 사진이 나왔다. 클릭했더니 무슨 여성웹진 기사가 나왔다. 그제서야 육아휴직했던 시절에 전화인터뷰 했던 기억이 났다. 기사 제목이 '육아 휴직으로 아이 키우는 아빠'로 붙은 짧은 기사였다. 그래 그때 전화 인터뷰를 했었지 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맨 밑에 기사 작성한 사람 이름이 낯익었다. 흔치 않은 이름이었고,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았다.
당시 전화 인터뷰는 어느 후배 활동가의 부탁으로 응했고, 전화를 건 기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십년쯤 전에는 몰랐던 그를 대략 삼사년 전에 처음 만났던 것이고, 그 당시에 우리는 서로 그 인터뷰의 존재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내가 우연히 그 기사를 검색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당시에 전화 인터뷰를 했던 사실은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 간혹 마주치는 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줄까 말까 생각해본다. 아마 전해주면 무척 반가워하며, 특유의 활짝 웃는 웃음을 보이겠지. 어쩌면 내 어깨를 살짝 치며 "어머! 그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