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병이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늘 급한 일을 앞두고도 자꾸만 딴 짓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도저히 그 시간으로는 불가능할 때가 되어서야 고도로 집중해서 일을 한다. 가끔은 기적적으로 그 일을 마무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절대 그 시간에 끝내지 못한다. 일의 경중에 따라 문책을 받기도 하고, 원망을 받기도 하고, 신뢰를 잃기도 한다. 그러면 그렇게 후회를 하면서도 다음 순간 또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마지막에 고도로 집중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들인 시간에 비하면 일의 완성도는 높다. 문제는 조금만 더 빨리 시작했다면 완성도 있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텐데, 꼭 조금씩 일이 남는다.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한데도 그 마지막 순간에 안타까워한다.


또 하나의 병은 앞의 현상과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감 시한을 자꾸 설정하거나 받아들인다는 거다. 일의 양으로 보아 도저히 이틀으론 부족한데도, 그걸 그냥 받아들인다. 그래놓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일단 생각한다. 바로 매달려도 쉽지 않은데, 일단 다른 일을 먼저 하다가 나중에 생각나서 부랴부랴 그 일에 집중한다. 이것도 늘 후회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병이다.


또 있다. 앞의 두 가지 습관 덕분에 자꾸만 일이 몰린다. 하나를 빨리 하고, 다른 일을 또 받아야 하는데, 앞의 일이 자꾸 밀리는데, 뒤에 일을 급한 일정으로 받아버리면 짧은 시간 안에 두 일을 모두 마쳐야 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또 받고 또 받는다. 지난 10월과 11월엔 그런 식으로 한번에 서너개의 급한 일들이 몰리고 또 몰렸다.


이쯤되면 늘 바쁘다고 투덜댈 자격이 없다. 솔직하게 그 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상대에게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가 거는 기대를 저버리면 안될 것 같고, 왠지 그 시간 안에 꼭 끝내야만 할 것 같고,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늘 그렇듯 딱 그때까지 안 되더라도 넘어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모든 나쁜 과정은 자꾸만 반복된다.


지금도 급한 일의 마감시한까지 넘겨놓고 이렇게 딴 짓을 하고 있다.


바빠도 책 이야기



 지난 달에 산 책을 이제서야 읽고 있다.

 (물론 몇 년 전에 사고도 아직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다!)

 이 책을 반쯤 읽다가 목차를 살펴보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단편집이라면 보통 표제작의 제목이 책 제목이 되는데,

 그럼 '그 남자의 연애사'라는 단편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러고 눈을 돌리니 차례 옆 쪽에 일러두기로 설명이 있다.

 초판에 실렸던 그 단편을 이젠 실지 않는다고,

 처음에 경험자의 동의를 구하고 실었는데,

 책이 나온 이후에 항의가 들어온 듯했다. 




 근데 이렇게 되고보니 더더욱 그 글이 읽고 싶어졌다. 책에서 중요한 표제작이 빠지다니! 뭔가 매우 불공평한 일을 당한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책을 다 읽어도 정작 표제작을 못 읽는다면 이 책을 읽지 못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구해 읽을 방법은 없나?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초판이 있으려나? 그런데 돈주고 책을 사놓고 내가 왜 도서관까지 뒤지는 수고를 해야하나? 이거 출판사에 항의라도 해보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할 지 잘 감이 안온다. 문제는 바쁘게 지내다보면 그냥 이 책에 대해서 잊고 지나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다. 결국 그 단편을 읽을 기회는 안 오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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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참 이상하네요. 왜 표제작이 빠졌을까요? 인터넷에 뒤지면 어디 없을라나.

감은빛 2014-12-22 01:35   좋아요 0 | URL
요 밑에 치카님께서 문동 카페의 해당 글 링크를 주셨네요.

cyrus 2014-12-1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사연이 무척 궁금합니다. 호기심이 강한 저라면 일단 도서관에 초판본을 찾아볼겁니다.

감은빛 2014-12-22 01:36   좋아요 0 | URL
저도 호기심은 강하지만, 바빠서 도서관에 갈 여유가 없네요.
도서관에 안 간지 몇 달은 지났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근사해서 갖다 붙여놓기만 한거라면, 출판사에 항의해도 될 만한 일인데요!
(제목 보고 책을 집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제 옆지기도 감은빛님과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요(ㅎㅎ)
항상 위태위태해 보이면서도 또 나름 그런 본인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더라구요.
바뀌지 않는 부분이라면 스릴 있게 즐겨보심도...~^^

감은빛 2014-12-22 01:39   좋아요 0 | URL
원래 초판에는 표제작이 실려있었으나,
해당 작품의 모델이 되는 인물의 요청으로 이후에는 빼버렸대요.
이런 경우도 다 있군요.
문제는 초판 이후로 책을 산 저 같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읽을 기회를 영 잃어버린 것이죠.

현맘님의 옆지기님도 저와 같은 습관을 갖고 계시군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일을 미루는 습성이 있더라구요.
제가 좀 심한 편이긴 하죠.
늘 스릴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늘 불안불안 위태위태해요.

chika 2014-12-19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창훈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역시 저 책을 사놓고는 바빠서 읽지 못했네요. 쌓여있는 책무더기의 어디쯤 깔려있을까...싶은데.

http://cafe.naver.com/mhdn/67687

위 주소로 들어가보면 한창훈님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왜 표제작이 빠졌는가에 대한 설명이지요.
다행히(?)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초판본이라... 감은빛님처럼 궁금해하다 넘기게 되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아직 읽지 않았으니 다를게 없겠지요? ㅠㅠ


감은빛 2014-12-22 01:42   좋아요 0 | URL
표제작이 빠진 자세한 이유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텐데,
작가 입장에서도, 출판사 입장에서도 많이 당황했겠어요.
책을 산 저도 좀 당황했거든요.

며칠 바쁘게 지내느라 이 책 생각은 더 안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글을 쓸 당시의 막 읽고 싶은 궁금함은 많이 옅어졌는데,
그래도 미련은 남아있네요.
언젠가 초판을 찾아볼 날이 있겠죠.

yamoo 2014-12-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그런 책이 있다니, 신기하군요..근데, 왜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 한창훈 소설은 저와 맞지 않아 읽지 않습니다만..정말 궁금해지는 단편인것만은 틀림 없네요..ㅎㅎ

감은빛 2014-12-22 01: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왜 제목을 바꾸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정인 것 같아요.
책이 많이 팔린 것도 아니고, 아직 초판도 다 소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표제작 삭제 요청을 받았으니, 제목을 바꿀수가 없었겠죠.

책은 다른 상품과 달리 출간과 더불어 홍보를 해야 효과가 나타나고,
출간 3개월 이후로는 홍보 효과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한창 책 홍보가 진행 중이고, 잘 팔리고 있는 책 제목을 바꿀 수는 없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