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날린다.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살랑살랑 떨어지다가, 휙 불어오는 바람에 앞으로 달려갔다가 또 위로 올라간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배철수 디제이가 11월은 아직 가을이라고, 지금 이렇게 추운 건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단풍추위’ 때문이라고 했다. 3월에서 4월 초까지 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를 꽃샘추위라 부르듯, 11월의 추위를 ‘단풍추위’라 부를 수 있다고, 더불어 이 말은 자신이 처음으로 사용했으니, 저작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정말 그가 이 말을 처음 쓴 것인지 모르겠으나, 꽤 재밌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단풍추위 때문에 옷을 단단히 여미고도 모자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길을 걷다가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는데, 올가을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불광문고에 들어섰다.


앞쪽에 가을을 맞아 사랑이야기를 다룬 문학 작품들을 모아둔 탁자가 있었다. 재밌는 점은 한쪽에는 남성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로 채웠고, 반대편은 여성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들을 모았다. 우선 남성이 주인공인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짧은 시간 나는 지나이다에게 첫눈에 반한 블라디미르(첫사랑)가 되었다가, 캐서린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복수와 파멸의 길을 걸어간 히스클리프(폭풍의 언덕)가 되었다. 또 샬롯테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때문에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 되었다가, 일흔넷에 열아홉의 울리케를 사랑했던 괴테처럼, 열일곱의 소녀 은교를 향한 사랑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작가 이적요(은교)가 되었다. 예전에 읽어본 책들도 있었지만, 제목만 들었을 뿐 읽지 않은 책들도 있었고, 아예 처음 접한 작품도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옮겨 여성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첫눈에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남성 주인공 편과 달리 읽은 책이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야지 맘만 먹고 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가 그나마 익숙한 책이었고, 여기 전시된 책은 읽지 않았지만, 에쿠니 가오리나 알랭 드 보통은 다른 작품을 접해본 작가였다. 낯선 작가의 책들 중 몇 권을 들춰보았다. 우선 제목부터 독특한 [19 29 39]는 세 여성의 나이를 뜻했다. 젊은 여성 작가 3명이 함께 쓴 소설이었다. 아마 각자 한 명의 주인공을 맡아서 쓴 것 같은데, 흔히 볼 수 없는 작업 방식이라 어떻게 풀어갔을지 흥미가 생겼다. [클라리 세이지]는 허브의 한 종류로, 향이 깊고 부드러워 마음의 안정을 돕고 피로를 달래주는 식물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결혼한 네 여인의 비밀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하는데, 여러 사회 문제들과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 육아와 일터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등 무척 공감이 가는 주제였다. 주인공 네 명이 각자의 성격과 상황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 다나베 세이코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 둘이나 포함되었다는 점, 마스다 미리라는 일본 30대 미혼 여성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그린 만화가의 책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살펴보면 하나하나 다 읽고 싶은 책이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일단 한 권을 골랐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추위를 지나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보련다.





























## 불광문고에서 만날 수 있는 늦가을 사랑이야기 ##


-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

첫사랑(이반 투르게네프, 민음사, 2003년, 10,000원), 그 남자의 연애사(한창훈, 문학동네, 2013년, 12,000원), 청혼: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겠어(오영욱, 달, 2013년, 13,500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1999년, 7,000원),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문학동네, 2011년, 13,000원), 180일, 지금만큼은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테오, 예담, 2014년 13,800원), 단 한 번의 연애(성석제, 휴먼앤북스, 2012년, 12,500원), 은교(박범신, 문학동네, 2010년, 12,000원),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시공사, 10,800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년, 12,000원), 천 년의 사랑(양귀자, 쓰다, 2013년, 15,000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예담, 2009년, 12,800원)




























- 그 여자의 사랑이야기

서른 넘어 함박눈(다나베 세이코, 포레, 2013년, 12,000원), 클라리 세이지 1,2(고선미, 스프링, 2013년, 12,000원/각 권), 잡동사니(에쿠니 가오리, 소담, 2013년, 12,800원), 사랑이 달리다(심윤경, 문학동네, 2012년, 12,000원),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문학과지성사, 2006년, 12,000원), 우리는 사랑일까(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05년, 12,500원), 노리코 연애하다(다나베 세이코, 북스토리, 2012년 12,800원),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김형경, 사람풍경, 2012년, 14,500원), 수짱의 연애(마스다 미리, 이봄, 2013년, 8,000원), 19 29 39(최수영, 정수현, 김영은, 소담, 2010년, 11,000원), 안나 카레리나 1,2,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펭귄클래식, 2013년, 11,000원/1권, 12,000/2,3권), 나마스테(박범신, 한겨레출판, 2005년, 12,000원)
















* 은평시민신문에 실은 글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4-11-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슬펐어요. 사랑의 달콤한 맛과 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아요.

감은빛 2014-12-02 04: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좀 당황스러웠어요.

비로그인 2014-11-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참 좋네요.

감은빛 2014-12-02 04:27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랑인가에 따라 본질적으로 좋을수도, 아닐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말 자체는 좋은 거죠.

yamoo 2014-11-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하고 실전은 천지차이더군요~ㅎ 어쨌거나 위의 책 중에서 2권은 읽었고 2권은 그냥 소장만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봐서 소설책을 전부 처분해야 할 듯합니다. 이 사랑에 관계된 소설책들도 ㅇ예외가 아니겠지요.ㅎ

이 글은 기고문이군요~^^ 잘 봤습니다!

감은빛 2014-12-02 04:29   좋아요 0 | URL
저는 1권은 읽는 중이고, 3권을 읽었네요. 집에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잔뜩 있는데, 아내는 자꾸 책 좀 처분하라고 하네요. 읽어야 처분이라도 할텐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