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운전
명절 중간이었던 토요일 어른 6명과 아이 5명의 대가족이 차 2대로 움직였다. 아침부터 누군가 서울대공원을 가자고 말을 꺼내는 바람에, 아이들을 동물원에 밀어넣고, 어른들은 미술관에 가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준비시키는 일은 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게다가 집에서 서울대공원은 너무 멀다. 분명히 도로는 막힐 테고, 길에 버리는 시간과 기름이 아깝기도 하고,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에서 시달리는 일이 너무 피곤해서 싫었다. 누군가 대안으로 비교적 가까이 있는 실내놀이터를 제시했고, 부모님보다 더 상전인 아이들을 모시고 우리는 실내놀이터를 찾아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처음엔 내렸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였는데, 이동하는 도중에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적당할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하필 앞 창의 빗물을 닦는 와이퍼가 움직일때마다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와이퍼의 고무가 많이 닳아서 유리와 마찰할 때 소리가 심해졌다. 즉, 갈아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비는 쏟아 붓는데 와이퍼 소리가 거슬리니 좀 짜증이 났다. 게다가 시야가 자주 흐려져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작은 차에 많은 사람들이 타 있으니, 평소보다 실내에 성에가 더 심하게 끼었다.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 운전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이 이 성에다. 순식간에 시야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습관적으로 히터를 켜놓고 있었는데, 따뜻한 공기 때문에 성에가 더 심해졌다. 급하게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덕분에 성에는 곧 사라졌는데, 뒷자리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춥다고 한다. 잠시 에어컨을 끄면 또 성에가 생기고, 다시 켜면 또 춥다.
비 때문에 좌우거울과 뒷거울들이 잘 안보이는 것도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다. 특히 차선을 바꿔야하는데, 옆 차선에서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잘 안보이면 들어갈 수가 없다. 낯선 길을 달리다가 네비가 시키는대로 지하차도로 진입하기 위해 왼쪽으로 차선을 바꿔야 하건만, 빗방울과 성에 때문에 거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방향지시등(깜빡이)을 켜고 서서히 들어가면서 계속 거울을 살폈건만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장님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 지하차도로 진입하면서 빗길 운전이 위험한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척 신경을 많이 쓰고, 힘겹게 운전을 했지만 그래도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 차는 그랬는데, 같이 움직였던 매체 차는 타이어 펑크가 났다. 돌아오는 도중에 도로에 움푹 패인 구덩이가 있었는데, 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피하지 못했고,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타이어 휠이 찍혀서 깨졌다고 한다. 안그래도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연초에, 타이어와 휠 값으로 적잖은 돈을 쓰게 되어 동생과 매제는 얼굴이 어두웠다. 무척 재수가 없었다는 말 밖에 해줄 수가 없는 경우인데, 이것도 비만 아니었으면 분명히 피해갈 수 있었지만, 빗길 운전이라 일어난 사고다.
한 7~8년 전에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에 군산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있었다. 차에 동료를 태우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정말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졌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가시거리가 채 10미터도 안되었다. 차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비상등을 켜지 않으면 앞 뒤 차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겁이 났다.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사실이. 속도를 확 낮추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희미하게 보이는 앞 차의 비상등만 줄곧 쫓아갔다. 빗길 운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겁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날이었다.
진짜 연휴가 필요해!
작년 11월즈음 새 달력을 받았을 때, 누군가가 휴일을 찾아보며 내년 설에는 4일이나 쉬네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4일이나? 4일 밖에가 아니고?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설과 추석은 고향을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명절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움직이는 시기이므로 말 그대로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맞은 설날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어쩔수 없이 고속버스를 탔다가 17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생각을 하면 정말 몸서리가 쳐진다. 다시는 고속버스를 타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기차표를 구하는 일은 늘 어려웠고, 그 후로도 가끔 12시간에서 15시간을 갇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고속버스가 이랬으니 일반 승용차는 더 오래 걸렸으리라.
이런 교통대란은 짧은 시기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동할 수 있는 기간을 좀 더 길게주면 교통란은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연휴를 하루라도 더 주면 도로 상황은 더 좋아지는 것이다. 사실 딱 4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고, 처가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면 잠시도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연휴라는 단어의 '휴'는 분명 쉰다는 뜻인데, 이렇게 움직이면 아주 고강도 노동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1년에 두 번씩 해마다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12월과 1월에 한 달에서 한 달 반 동안 일을 안한다고 한다. 아예 사무실 문을 열지 않는단다. 여름에도 또 약 한 달 가량 휴가를 간다. 일년 열두 달 중에 두 달의 휴식을 갖는 것이다. 부러웠다. 우리는 한 달은 바라지도 않고, 설과 추석에 딱 일주일씩만이라도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그럼 훨씬 살만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각 보름씩 연휴를 줘서 1년에서 한 달을 휴식기간으로 정하는 건 어떠까 싶기도 하다.
작년부터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가는 대신, 부모님께서 서울로 역귀성을 하기로 했다.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거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표는 여유있게 구할 수 있고, 비록 짧은 시간만 열어두고, 몇 편 배정이 안되어 있긴 하지만, 철도공사가 역귀성 할인도 제공한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힘드시겠지만, 해마다 기차표 구하는 전쟁이 더 치열해지고 심각해져서 너무 힘들었던 상황에, 많이 고민하고 의논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조금 더 수월할 줄 알았는데, 물론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만큼 수월해진건 틀림없긴 한데, 그래도 명절을 지내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연휴 전날 저녁 서울역에서 부모님을 모셔오고, 그 전까지 장을 다 봐둬야 하고, 연휴 첫 날엔 하루종일 제사음식을 만들었고, 둘째날인 설날에는 제사를 지내고 오후에 처가에 다녀왔다. 저녁 늦게 동생네 가족이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소란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5명은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이 돌봄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절실히 깨달은 시간이다. 다음 날엔 앞서 말했듯이 실내놀이터를 다녀왔고, 연휴 마지막 날엔 점심을 먹고 동생네가 떠났고, 오후 늦게 부모님을 서울역으로 모셔다 드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청소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다음날인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여러 감정이 북받쳤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랬다. 연휴를 돌아보니 반나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했다. 아니 30분 이상 쉬어보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명절 전부터 몸이 썩 좋지 않았는데, 억지로 억지로 버텼건만 그대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 짜증이 났다. 분명 연휴였건만 나는 왜 하루도 쉬지 못했을까! 결국 월요일 아침에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피곤해서 입 안에 두 군데가 헐었고, 코 속에도 크게 한 군데가 헐었다.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이를 닦을 때마다 헐은 자리가 쓰라렸고, 세수를 하거나, 안경을 매만지다가 손이 코 끝에 닿으면 굉장한 고통이 느껴졌다. 누가 들으면 뭐 그런걸로 엄설이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세수를 하지 않고 그냥 출근하면 안될까 고민할 정도로 고통을 느꼈다.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은 무척 바쁜 날이었다. 주초와 월초와 년초에는 일이 몰리는 시기인데, 하필 그날은 세 개가 다 겹치는 날이었다.(아직 2월이니 년초다.) 그리고 이번 주는 유난히 바쁜 시기다. 녹색당 지역 모임에서 1년에 한번 총회를 여는 시기라서 그 준비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했다. 회사 일, 녹색당 일, 집안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일!!!!
나는 좀 쉬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어디 섬에 가서 딱 한 달만 아무생각없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현실적으로 한 달은 불가능할테니 3~4일만이라도 좋다. 진짜 쉴 수 있는 연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