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다. 삼일째 굶고 있다. 아니 삼일동안 죽 한 그릇과 밥 반그릇을 넘겼으니, 엄밀히 말하면 굶은 건 아닌건가? 언젠가 새로나온 매뉴라서 궁금해서 시켰던 '특매운짜장면'을 먹고 속에 탈이나서 삼일을 굶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배탈이 났다. 토요일 저녁에 뭔가를 잘 못 먹었는지 배탈이 났다. 월요일인 어제는 일터에서 꽤 중요한 날이었는데, 도저히 나갈 수가 없어서 하루를 쉬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음 같아서는 하루만 더 쉬고 싶었지만, 억지로 몸을 움직여 출근 준비를 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살이 쏙 빠졌다.(근데 왜 뱃살은 큰 변화가 없는 걸까나?) 속이 비어서 그런건지, 온 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멍하다. 평소보다 더 오래 걸려서 출근을 하고, 급한 일을 처리하고, 동료들이 밥을 먹으러 나간 동안 혼자 사무실을 지켰다. 배는 고프지만, 도저히 밥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생각해보니, 포크레인에 쇠사슬로 몸을 묶어서 자물쇠를 채워버린다던가. 중장비 밑에 기어들어가서 버틴다던가 등등 과격한 투쟁은 몇 번 해봤으나, 단식투쟁은 한번도 못해봤다. 나는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단식을 하면서 싸우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가끔 단식투쟁에 들어간 선배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아무리 주위에서 등을 떠밀어도 단식은 하지 말아야지 했던 생각이 난다. 

동료들이 밥을 먹고 돌아와서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누군가는 외근을 나가고, 누군가는 졸기 시작했다. 나도 졸린다. 새벽에 3번이나 깨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속이 비어서 잠도 안온다. 속이 비어서 머리가 멍하다.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 일하는 척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평소 못읽었던 글을 읽는다. 뭐라고 댓글도 남겨본다. 과연 이 글에 어울리는 말을 남기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언젠가 어느 선배가 말했다.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은 딱 단식만 해야한다. 그 사람이 전략에 관여하고 협상테이블까지 앉으려고 하면 안된다. 단식을 하면 아무래도 생각이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중요한 국면에서 단식에 들어간 선배가 전략에 관여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그때의 전략이 과연 옳았는지,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적으로 다른 결과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멍한 머리로, 자꾸만 오타를 내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끓여서 한 그릇을 목으로 넘기고,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다가 자고 싶다. 그때까지 일하는 척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걸까? 뭐 그렇다고 해두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며칠째 매달렸던 일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전화였다. 예전에 한번 컨택했다가 잘 진행이 안되었던 곳이었는데, 오늘 한번 더 메일을 보내서 조금 양보한 조건을 제시했었다. 상대방은 전화로 거기서 조금만 더 양보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이미 많이 양보한 조건이었는데, 더 양보하기는 곤란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해지는데, 자칫 고집을 부리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양보하면 그것도 곤란한 상황인데...... 머리가 멍했지만 열심히 입을 놀렸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후에 상대방은 일단 한발 물러섰다. 구체적인 사항은 만나서 얘기하고, 일단 거래를 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 오늘은 몸도 안좋고, 머리도 멍해서 왠만하면 중요한 일은 미루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중요한 거래를 하나 성사시켰다. 덕분에 한동안 일 안하고 딴짓 했던 것도 하나도 안 미안해도 되겠다. 오늘 밥값은 충분히 했다. 그럼 맘놓고 좀 더 딴짓을 해볼까나~~~~! 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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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1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탈이 나신데다가 일까지 하시다니..이중고가 겹치셨네요. 저도 예전에 장염으로 입으로는 먹고 밑으로는 바로 내려버리는 일을 당한 적이 있는데 거의 기절할 뻔 했어요. ^^ 이럴 때는 쉬시는 것이 제일입니다.
과격한 투쟁도 여러 번 하셨군요. ^^ 근데 단식 투쟁이라니 거기까지는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된다고 봅니다. 힘 내시고 오늘 푹 좀 쉬세요.

감은빛 2011-06-15 18:17   좋아요 0 | URL
결국 퇴근 시간을 넘겨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 밥먹이면서 밥을 먹었어요.
어제 낮까지 굶었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저녁에는 한결 낫더라구요.

오늘 아침엔 완전히 나은 것 같습니다.
염려해주신 덕분입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6-1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거 좋아하는 사람에게 체하거나 탈이 나는건 엄청난 고문인데요... 어서 완쾌하세요~
몸도 안 좋으신데 일을 성사시키셨다니... 그냥 몇일 푹 쉬셨음 좋겠네요 ㅎㅎ

감은빛 2011-06-15 18:19   좋아요 0 | URL
한창 바쁠때라서, 오히려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며칠 안에 중요한 거래 세 건을 더 성사시켜야 합니다.

현맘님께서 마음써주셔서 다 나았습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1-06-1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탈이 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더라구요. 저도 지난 주 아이스 커피를 많이 마셨다가 고생 좀 했답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순간 무섭기까지 하더라구요. 아무쪼록 빨리 회복하셔서 맛난 것 맘껏 드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11-06-15 18:20   좋아요 0 | URL
저도 얼음이 가득한 수정과를 거푸 몇 잔 들이켰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사흘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블랑카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이제 맛난거 먹을 일만 남았네요. ^^

양철나무꾼 2011-06-15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하시더니, 요번엔 배탈이...
어여, 쾌차하세요~

단잠 주무시고 계실까요?
난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던데...^^

감은빛 2011-06-15 18:22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

어제 저녁을 조심해서 꼭꼭 씹어먹고,
아이들과 조금 놀아주다가 곯아 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몸이 가뿐하네요!


마녀고양이 2011-06-1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요즘 자주 아프신데요.
기억에 허리인가도 아프셨고 쥐도 난다 하시고 배탈에....
스트레스 받고 계신거 아니신가요? 몸이 먼저
나 변하고 싶어 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거 아닐까 걱정되네요. ㅠㅠ

하기사 감은빛님의 많은 관심을 본다면, 그렇겠다고 생각도 들구요..
항상 감사한 마음도 들구요... 여하간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11-06-16 10:39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올해 초에 꽤 오랫동안 골반과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었죠.
스트레스는 늘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별로 없어서,
늘 술로 달래고 있구요.
그래서 몸을 잘 못 챙기고 살고 있네요.

지금부터라도 내 몸도 좀 신경쓰고 살아야겠네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