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짜증 

 계단을 오른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매일 겪는 일이지만, 계단 끝에서 시야가 확 트이는 순간은 늘 어떤 쾌감이 든다. 해방감이랄까.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시간은 6시를 막 넘었다.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퇴근시간이 지났다. 아직 어린 둘째 녀석은 담임선생님이 퇴근하고나면 자꾸 운다고, 되도록이면 6시전에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데, 나도 퇴근시간은 6시다. 집에서 일터까지 빨리와도 50여분(걷는시간 포함) 오늘처럼 양해를 구하고 일찍 퇴근한 날이 아니면 7시 전에 도착하는것 조차 쉽지 않다. 다시 한번 시계를 보고 뛰어볼까 생각했다가, 허리와 골반이 계속 좋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냥 걸음을 좀 더 재촉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창 바삐 걷고 있는 나에게 어느 여성이 다가선다. 뭐라고 말을 거는데, 무시하고 지나친다. 나를 붙잡으려고 손을 내뻗는다. 만약 옷자락에 손끝이라도 스친다면 화를 버럭 내리라 생각했지만, 손이 닿기 전에 나는 이미 그녀를 지나쳤다. 어차피 귀에 꽂은 이어폰 때문에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녀가 뭐라고 했을지는 뻔하다. '복이 많으신데...' 라던가 '참 인상이 좋으신데....' 라던가. 질리지도 않는 뻔한 말을 내뱉으며 접근하는 사람들. 정말 하루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같이 그 사람들에게 시달리다보니 화가난다. 지난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하나가 양쪽에서 나를 막아서듯이 달려들어서 그 사이를 뚫고 지나쳤는데, 남자가 내 팔을 잡았다. 너무 화가나서 확 째려보았더니, 곧바로 손을 놓았다. 만약 손을 놓지 않았다면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뜨렸을지도 모른다. 바쁜 퇴근길에 매일같이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증산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제발 나 좀 건드리지 말라고! 

둘. 두부부침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도착. 역시 담임 선생님은 안계신듯, 보조선생님이 아기를 안고 나오셨다. 아기를 안은 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안으세요' 아기를 조금 앞으로 내밀어줘야 내가 손을 내밀텐데, 그렇게 안고 있는 채로, 어떡하라는 건지. 자칫 잘못하면 선생님의 몸에 손이 닿을텐데.... 아기의 바깥쪽을 먼저 받고, 내 몸쪽으로 아이가 기울어지기를 기다렸다가(자연스레 선생님 몸에서 아기가 떨어지면) 다른 손을 뻗어 아기를 안았다. 힘들다.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으면, 선생님이 아기띠를 메도록 도와주는데, 이 보조선생님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자꾸만 시간을 끈다. 어디를 어떻게 끼워야할지 모르겠단다. 아기를 안은 자세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겨우 아기띠를 메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첫째는 요즘 어린이집을 마치고 피아노학원에 다닌다. 둘째를 안고 첫째를 만나러 갔다. 첫째 녀석은 피아노 공부를 다 마치고 그림을 그리고 놀고 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면서, 저녁 반찬에 대해 잠시 고민한다. 어제 '제철 꾸러미'에서 받은 두부를 계란에 묻혀서 부쳐야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첫째에게 둘째를 잘 보라고 해놓고 얼른 두부부침을 만들었다. 첫째 아이가 맛있다고 잘 먹었다. 

셋. 내 새끼들!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을 때인 것 같다. 빨리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하는데, 아기는 울어대고, 첫째 아이는 말을 안듣고 있으면 정말 힘들다. 미칠 것 같다. 반면 가장 행복한 때도 역시 아이들을 돌볼 때인 것 같다.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기도 깔깔대며 웃고, 큰 녀석도 깔깔 웃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한참을 장난치고 놀다가 한팔에 하나씩 두 녀석을 꼭 끌어안았다. '내 새끼들!' 두 녀석의 뺨을 동시에 부비며 장난을 쳤더니, 또 둘이 깔깔 웃어댄다. 이제 씻기고 재워야겠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셋 다 잠들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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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힘들 때는 아이들을 돌볼 때,
가장 행복한 때도 아이들을 돌볼 때...
인생의 비밀이 숨어있는 문장인듯..
심오합니다! ^ ^

감은빛 2011-03-12 00:46   좋아요 0 | URL
인생의 비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요즘 사는게 그러네요.
그만큼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간다는 얘기죠.

cyrus 2011-03-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도 나름 바쁘시군요. 그래도 애들을 씻기고 재우고 요리까지 하시는 모습이
멋진 슈퍼파파네요 ^^

감은빛 2011-03-12 00:48   좋아요 0 | URL
슈퍼파파라뇨? 요즘 시대에 이쯤은 당연한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면 여성들에게는 환호를! 남성들에게는 야유를 듣겠죠.
늘 활동가로서, 운동가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노력합니다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네요. 힘들어요!

꿈꾸는섬 2011-03-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제가 지금 울컥하고 있어요.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그 아이를 좀 더 일찍 데려가려고 잰걸음을 걷었을 감은빛님을 생각하니 또 안타깝고 두 아이 데려다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까지...보통 주부들의 일상인데, 어찌 이리 공감 백배하게 만드시는지......
아이들과 함께 있을때 행복하다는 감은빛, 너무 좋은 아빠, 멋진 아빠세요.^^

감은빛 2011-03-12 00:52   좋아요 0 | URL
네, 보통 주부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공감하시는 거죠.
저도 일주일에 이삼일은 보통 주부처럼 살아야 하거든요. ^^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3-1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든 하루 하루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쁜 '내 새끼들'도 쑥쑥 커갑니다.^^
아이 때문에 힘들고 행복하고~~~ 그때가 좋은 때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죠.
힘내세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1-03-12 00: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점점 커가는 첫째 녀석을 보면서,
아이들 자라는 게 참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는데,
그럼 또 쑥 커버린 느낌이 들겠죠.
한 발 멀리 가버린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벌써부터 아쉽습니다.

고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3-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새끼들! 그거 한마디로 충분하네요.
고운 페이퍼입니다. 감은빛님 건강 챙기시고, 즐거운 한주 되셔요.

감은빛 2011-03-14 14: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님도 즐거운 한 주 되시길~!

hnine 2011-03-1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참 따뜻한 분이시군요. ^^

감은빛 2011-03-14 14:13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따라쟁이 2011-03-1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다는 감은빛님은 애들도 씻겨주고.. 로 시작하는 댓글을 달까 하다가.. 이젠 좀 질릴것 같아서. 패스 하고..
감은빛님, 참 따뜻한 분이시군요. ^^ 2 정도로 하겠습니다.

감은빛 2011-03-14 14:14   좋아요 0 | URL
흠, 저도 그 댓글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
그럼 저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2' 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