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내는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이제보니 속았던 것 같다!' 아마도 예전에 '어떻게해서 결혼하게 되었냐'는 누군가(짐작하건데 내 일터와 관련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의 질문에 이렇게 한번 대답한 이후부터였다. 

몸매를 보고 결혼했다는 말은 과장이긴 하지만 조금은 우쭐해지게 만드는 말이다. 결혼 전 내 몸매는 나름 괜찮았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속았다는 표현은 좀 지나치다. 기분이 나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 결정적 증거(결혼 후 완전히 망가진 몸매)가 있으니까 말이다. 

결혼 후 제대로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일터의 노동과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아내를 위한)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 나를 위한 시간(책읽기, 글쓰기, 운동하기 등)은 쉽게 가질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여기에 육아라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새로운 노동에 매진해야 했다. 

아무리 조각처럼 멋진 몸매라도 관리해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법이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이 망가짐이 스스로에게는 별로 큰 변화가 아닌 것 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내가 뽈록 나온 내 배를 보고 '몸매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는 말을 아무리 자주해도 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대꾸했다. 나중에 운동해서 빼면 된다고!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마음을 바꾸고, 둘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아내의 배가 커져갈 수록, 내 배도 커져만 가는 것이다! 급기야 아내는 소리 쳤다! '니가 임신했냐?' 이 말은 좀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늘 날씬하다, 말랐다는 소리만 들으며 살아왔던 나를 임산부에 비교하다니! 

둘째가 태어나고 아내의 배가 줄어드는 시점부터 내 배를 다시 예전처럼 돌려놓기로 결심했다. 다시 왕(王)자를 새기기까지는 시간이 오래걸리겠지만, 적어도 뽈록 나온 배를 좀 집어넣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관성의 법칙이란 것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다. 조금씩 습관을 바꿔가면서 예전에 비해 먹는 양이 많이 줄었고, 운동량이 크게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조영구라는 분이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을 빼고, 몸짱이 되셨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단단한 복근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이번에는 그 조영구씨가 성형을 했다는 기사가 또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살을 빼서 생긴 얼굴 주름을 펴기위해 성형을 했다고 한다. 

조금 자극을 받았다. 운동 강도를 한층 더 높여보기로 했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티도 안 날만큼 조금씩 식사량을 줄이고(그러다 가끔 과음을 하거나, 폭식을 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나갔는데, 스스로도 별로 재미도 없고, 몸에도 크게 변화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헬스클럽 같은델 끊어서 한 서너달 운동을 해보고 싶은데, 육아와 가사노동에 매인 몸으로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시간을 좀 낼 수만 있다면 집에서도 다양한 운동을 병행하여 옛 몸매로의 복귀를 앞당길수도 있을텐데, 그만한 시간을 빼기도 쉽지 않았다. 

근육운동은 그래도 짬짬히 할 수 있는데, 가장 안 지켜지는 건 유산소운동이었다. 도무지 뜀박질을 할만한 틈을 낼 수 없으니 답답했다. 궁여지책으로 일상에서 걷는 시간을 늘리고, 계단 오르내리기를 많이 했는데, 조금 효과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때 육체노동을 한바탕 할 일이 생겼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책을 옮긴 날이었다. 드디어 내 몸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본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근육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몸이 뻐근하게 쑤시는 느낌이 좋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 늦게까지 다양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몸이 변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상체 근육은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하체와 복근이었다. 여전히 부족한 유산소 운동을 어떻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지금처럼 꾸준히만 한다면 내년 봄에는 예전 몸매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꾸준히라는 절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켜내야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아내가 아파서 한동안 내가 조금 일찍 퇴근하여 아이들을 모두 내가 데려오게 되었다. (평소에는 첫째는 내가 (어린이집에) 데려가고 또 데려오고, 둘째는 아내가 데려가고 또 데려온다.) 둘째 담임선생님은 나의 등장에 조금 놀라고 당황한 눈치였다.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일어서는데, 허리끈을 채워주려던 선생님이 '끈을 늘려야하지 않나요?'라고 작게 물었다.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허리끈을 딸깍 채운 선생님이 놀라서 감탄한다. '아버님, 정말 날씬하시네요!'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들려주었더니, 아내는 내 배를 흘낏 쳐다보고는 '흥!' 콧방귀를 뀐다. 아내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나보다. 기다려라! 내년 봄이 되면 그 콧방귀가 쏙 들어가게 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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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런 페이퍼엔 인증 샷이 필수란거 아시죠?
내년 봄이면 저희도 식스팩 복근 구경할 수 있는 거예요?

글이 참 경쾌해요,통!통!통!

감은빛 2010-09-29 16:24   좋아요 0 | URL
아, 인증샷! 제가 카메라랑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말이죠.
뭐 위에 비밀댓글에도 썼지만,
만약 내년 봄에 예전 몸매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간다면,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

식스팩 복근은 TV와 웹에 온통 널려있지 않나요? ㅋㅋ

stella.K 2010-09-2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감은빛님 그렇게 살쪄 보이지 않는데...
하긴 옷속에 감췬 살을 제가 어찌 아누?
그게 정말 그렇다는군요. 운동해서 다른 살은 빠지는데 뱃살은
안 빠진다고. 갑자기 파란흙님이 감은빛님한테 했던 말이 생각나요.
알흠답다고...ㅋㅋㅋ

감은빛 2010-09-29 16:22   좋아요 0 | URL
살은 하나도 안 찌고 뱃살만 자꾸 불어나더란 말이죠.
감추고 다니느라 애 많이 썼습니다. ^^
파란흙님께서 저를 예뻐해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꿈꾸는섬 2010-09-2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대단하세요....내년 봄이면 원상복귀....부럽긴 한데 도무지 따라하진 못하겠어요.ㅜㅜ

감은빛 2010-09-30 03:04   좋아요 0 | URL
아뇨!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한다면 내년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전 몸매 비슷하게나마 돌아갈지도 모른다 뭐 이런 얘깁니다. 실제로 가능할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