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무실 이사가 있었다. 같은 건물에서 사무실을 서로 바꾸는 좀 특이한 이사였다. 새 사무실은 옛 사무실 보다 층수가 낮아서 좋다! 책이 들어올 때마다 끙끙거리며 책을 올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쁜 일이다.(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고,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그리고 공간이 좀 더 아담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옛 사무실은 불필요한 공간이 많았고, 아무리 청소하고, 정리해도 늘 정신없는 느낌이었다. 대신 공간 자체가 좁아졌기 때문에 개인공간이 줄어들었고, 책을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여 정리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결국 책을 다 옮겨오지 못하고, 일부는 옛 사무실 창고 공간에 그대로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갖고 내려오기로 했다.) 

이사를 마치고, 짐들을 정리하고, 개인 공간을 다시 일하기 좋게 세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책 옮기느라 혹사당한 온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사무용품들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뒤지기 일쑤였고, 바뀐 공간에 적응하지 못해 자꾸만 헛손질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이곤 했다. 



무엇보다 막내기자가 일을 정리하는 통에 내가 맡아야 할 일상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조금 어설프고, 미덥지 못했지만,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에 적응이 안 되어서 며칠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와중에 편집장님께서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기자 역할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사실 여기로 일터를 정하면서 처음에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었다. 예전 일터에서 간혹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자, 취재나 편집에는 관심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영업일이 더 좋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대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도 물론 재밌고 좋을 것이다. 편집일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재미를 느끼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일인 것 같다. 



한가지. 글쓰기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처음 출판계에 들어올 때는 편집이나 취재가 더 하고 싶은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영업일을 하게 되었고, 뒤늦게 시작한 탓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덤벼들었다. 좌충우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서서히 나만의 방식을 익혀가게 되었다. 뭐 지금도 영업자로서의 나는 미숙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 일이 재밌다. 맨 땅에 헤딩해가면 익힌 하나하나의 사소한 노하우들이 자랑스럽다.(선배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사람의 욕심을 끝이 없다. 아무래도 자꾸만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꿈틀 올라온다. 하지만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들어봐야 소용없다. 이제 막 재미를 붙인 이 일을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될 때.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리라 마음먹고 들뜬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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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9-1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이 넘 이뻐요. 감은빛.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출판사에서 일하시나요? 예전에 직업중 가장 대단하고 또 대단한 분야는 영업직이라고 직원들과 결론내린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 대단하세요^^

감은빛 2010-09-13 12:58   좋아요 0 | URL
감은빛이란 필명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난 번에 블랑카님 글에 댓글로 적었듯이 실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구요.
감은빛은 짙고 윤기나는 검은색을 뜻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감이 좋아서 쓰고 있어요.

영업도 종류가 많잖아요. 저는 뭐 그리 대단한 영업을 하는 건 아니구요.
그저 책이 좋고, 사람 만나는 게 좋다보니 그럭저럭 하게 되더라구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0-09-12 0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9-1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한 사무실에서는 회사가 더 번창하기를 바래요. 이번 주에 이사예정이었다면 비때문에 곤혹스러웠겠어요. 지겹네 비가 내렸네요.... 출판마케팅의 한기호씨도 영업직으로 성공한 케이스였지요. 전 그 분 열정시대인가 뭐가 읽었었는데, 창비시절부터 마이다스의 손이더라구요. 감은빛님의 영업이야기 하니깐 갑자기 그 분이 불쑥 떠오릅니다. 술은 안 하시나요?

감은빛 2010-09-13 13:10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죠.
덕분에 파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책잔치는 취소되었다고 들었어요.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은 비 때문에 하루일정이 모두 취소되기도 했구요.

한기호 소장님은 무척 유명한 선배님이시죠.
술은 가끔씩 합니다. 저녁에 아이를 돌봐야 할 일이 종종 있어서 자주는 못하구요. ^^

lo초우ve 2010-09-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고 윤기나는 검은색이었군요 ^^
좋은직업 가지셔서 부럽네요 ^^
난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거든요 ㅋ
감은빛님 새로 옮김 사무실 잘 적응하시구요,
그곳에서도 더 큰 대박 낳으시길 바래요 ^^
오늘도 홧팅~!! ^^

감은빛 2010-09-15 14:53   좋아요 0 | URL
아, 별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출판계에 들어올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어요.
가정주부는 참 어려운 직업(물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요!)입니다.
제가 몇 달간 아이 돌보면서 집안일 해봐서 잘 알아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티 안나고, 돌아서면 할일이 산더미죠.
이 땅의 가정주부들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lo초우ve 2010-09-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하하하하하~~
맞아요 ^^
여자들.. 아니, 엄마들 그리고 가정주부들..
정말 대단한 직업입니당 ^^
그래서 타고 나는것 아닐까 생각되어요 ^^
여자들 남자들 각자 맡아서 할일들.
여자는 집안살림 잘하고 내조 잘하고
남자는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지키고...후훗 ^^

감은빛 2010-09-17 07:07   좋아요 0 | URL
저는 김두식 선생처럼 집에서 가정주부 하는게 꿈입니다.
아내가 돈만 잘 벌어다준다면 그렇게 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