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스에서 전력예비율이 7%대까지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 벌어졌으며, 지금처럼 계속 전력 사용량이 많아지면 지역별 순차적 정전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들었다. 2011년의 블랙아웃 사태를 연상시키는 멘트로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한국일보 1면 기사로 [블랙아웃 위기, 깜깜이 대책]이라는 제목을 봤다. 기사 내용은 읽지 않았다. 읽을 가치도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쓱 지나가면서 본 거라 읽을 여유는 없었다. 어제 본 뉴스가 어느 방송사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전력예비율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지면서 여러 언론 매체가 일제히 블랙아웃 위기를 들먹이며 마치 전력 공급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근시간을 앞두고 잠시 짬을 내어 이 글을 두드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블랙아웃 위기에 몰릴 일은 없다는 뜻이다. 먼저 단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방송에서 언급한 전력예비율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전력 설비예비율과 전력 공급예비율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생산 설비가 공급할 수 있는 최대량은 정해져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2년 7월 8일 현재 설비용량은 134,239 메가와트이다. 이 중에서 당일 최대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남는 수치가 바로 설비 예비력인데, 최대공급량에서 수요를 빼고 남아있는 설비의 양을 말하고, 이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 설비예비율이다.
다음은 공급예비율을 알아보자. 전체 설비 용량 가운데 매일 그 100%를 가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발전소는 점검에 들어가 있을테고, 어느 발전소는 고장이 났을 수도 있고, 어느 발전소는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가동 중단 중일 수 있다. 그래서 당장 공급 가능한 총량을 공급능력으로 별도로 책정하고 22년 7월 8일 현재 공급능력은 99,525 메가와트이다. 여기서 당일 최대 수요를 제외하고 남는 양을 공급예비력이고, 이를 다시 비율로 나타낸 것이 공급예비율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전력예비율은 바로 저 공급예비율을 말한다. 저 수치가 10% 미만으로 떨어져서 위험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말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위험할까? 그렇지 않다. 전력거래소는 매일 전력사용 수요를 예측해 적절한 양의 공급능력을 확보해두고 있으며, 예비율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고 해서 당장 위험할 일은 없다.
이 그래프는 오늘 오후 5시 무렵의 실시간 전력수급 그래프이다. 공급예비율이 7%까지 떨어졌다는 어제(7일, 목) 그래프가 녹색 점선으로 되어 있고, 오늘 그래프가 붉은색 실선으로 되어있다. 오늘은 흐린 날씨라 그런지 어제보다 전력 사용량이 제법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피크 타임으로 예상되는 5시에서 6시 사이가 다 되어도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이 표는 6월 28일부터 어제까지 최대전력수요 및 공급 현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각 날짜별로 공급능력과 최대 수요가 나와있고, 각 날짜별로 작년 수치와 비교해 증가율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공급예비력과 예비율을 표기했다. 언론에서 다룬 것처럼 7월 5일부터 예비율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져 조금씩 떨어지다가 어제 7.2%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럼 오늘은 어떨까? 어제보다 전력 사용량이 낮으니 당연히 예비율은 올라갔을 것이다. 글을 두드리는 6시 기준 공급예비율은 16.54%이다. 아까 그래프를 캡쳐할 때는 대략 15%였는데, 그 사이에 예비율이 더 올라갔다. 즉, 전력 사용량이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그럼 여기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일보 1면 기사에 대해 발빠르게 반박한 내용을 보자.
전력 수급대책을 마련해 차질없이 대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한여름 피크 타임에 대비해 과도하게 설비를 늘려서 여름이 아닌 계절, 특히 봄과 가을에는 공급예비율이 엄청나게 남아도는 상황이다. 올해 봄에는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거의 매년 봄마다 공급예비율은 50%를 넘어섰다. 설비예비율이 아니다. 공급예비율이 절반을 넘었다는 뜻이다. 그 말은 전체 설비의 절반 이상은 돌릴 수 있는데도 놀고 있다는 뜻이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공급예비율이 70%를 넘기는 날도 보았다. 올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 다시 공급예비율을 확인해보면 분명 그 수치가 30~40%는 넘을 것이다.
그 말은 약 30~40%에 달하는 발전설비들은 1년 중 여름 한 철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일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의 발전원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믹스를 살펴보면 원자력(약 27%)을 가장 베이스로 두고 그 위에 석탄화력발전소(약 35%)를 돌리고 그 다음 유류화력발전소(석유가공원료, 약 0.5%) 그 다음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돌리는데, 여름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이 천연가스 발전소를 돌릴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방금 말한 순서는 발전원료 단가가 저렴한 순서이며, 실제 전력거래소에서도 이 순서대로 발전소를 가동한다.
이 그래프는 오늘 실시간 발전원별 수급 현황이다. 가장 아래 주황색 핵발전은 쉽게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특정한 발전소가 원료봉 교체에 들어가지 않는 한 늘 동일한 출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석탄화력이 나무색이고, 그 위 좁은 띄 형태의 붉은 색이 유류 화력 발전소이며, 그 위 초록색이 신재생발전소이다. 이 신재생에너지라는 단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고 전혀 재생가능하지도 않은 에너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걸 따지려면 할 말이 많은데 이제 퇴근해야 하므로 오늘은 일단 넘어가자. 그 다음 노란색이 천연가스 발전소이고, 마지막 보일듯말듯한 파란색이 양수 발전(높은 산 위에 댐을 지어서, 밤에 전기로 물을 퍼올리고, 낮에 다시 떨어뜨려 발전하는 방식, 밤에 낭비되는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지은 발전소)이다.
위 그림은 더운 여름이라서, 즉 전력 사용량이 아주 많은 시기라서 가능한 그래프이다. 만약 봄, 가을이었다면 저 노란색, 천연가스 발전소의 비중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 공급예비율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언론이 공급예비율을 걱정하는 건 수치가 낮아졌기 때문이지만, 산자부의 반박문에도 나와있듯이 이미 예측한 범위 내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그 언론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이 정도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썼다면 기자로서 직무유기가 아닌가. 그럼 왜? 사람들에게 전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핵발전소를 늘리기 위한 술수로 보인다.
실시간 전력수급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루 중에서도 최대 수요에 이르는 시간은 짧다. 그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발전설비들이 많은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재생에너지, 그 중에서도 태양광의 힘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전력 수요가 가장 높은 시간은 한창 더운 2~3시를 지나 그 열이 각 건물에 축적되어 있는 4~5시 경이다. 그 시간에 태양광발전은 높은 발전률을 나타낸다. 태양광이 널리 보급된 나라는 여름철 한 철만을 위해 과도하게 발전설비를 늘릴 필요가 없다. 1년 중 3계절을 놀아야 하는 천연가스 발전소 말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내뿜는 석탄화력 발전소 말고, 핵폭탄과 같은 원리에 과학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는 핵발전소 말고, 1년 365일 원료비가 필요 없는 태양광 발전소를 늘리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미세먼지도 줄일 수 있다.
태양광발전설비에서 중금속이 나온다고?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태양광 패널은 모두 실리콘 베이스이기 때문에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는다. 태양광은 비싸다고? 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점점 단가가 낮아졌고, 곧 다른 에너지원과 충분히 경쟁할만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금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핵폐기물 처리장 비용을 감안하면 핵발전 보다 훨씬 더 싸고, 기후위기와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석탄화력보다 저렴하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충분히 사용하려면 대한민국을 다 덮어도 모자란다고? 역시 거짓말이다. 정확히 계산해본 없지만, 5%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산을 깎아서 만들지 않아도 도로, 철로, 건물 옥상, 주차장 등만 활용해도 충분하다. 문제는 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피하는 것이다. 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이 대부분 핵발전 산업 관련자들이거나 그 수혜를 입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에너지 정책을 시민들의 합리적인 토론으로 결정하라고 한다면 절대 지금과 같은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긴 시간 정부의 거짓말에 세뇌된 분들이 많다는 것은 감안해서 충분히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윤 정권에서 핵발전 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는데, 문 정권에서도 핵발전 산업이 쓰러진 적은 없다. 그저 추가 발전소 계획 중 일부가 취소되었을 뿐이다. 암튼 정부가 차질없이 핵발전 산업을 키우기 위해 그 사전 작업으로 이번 여름 전력 공급이 문제다 라는 식으로 언론이 그 밑밥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쯤 제대로 된 언론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