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악몽

요즘은 거의 매일 악몽을 꾸는 것 같다. 장소는 어린시절에 오래 살았고 대학시절에도 잠깐 살았던 작은 아파트였다. 꿈 속의 시기는 아마 제대한 후에 대학에 복학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난 당시에 학교 앞에 작은 방을 얻어 살고 있었고, 그 집엔 부모님과 동생만 살고 있었는데, 주말이나 가끔 본가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난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잘 수 밖에 없었다. 그 좁은 집에는 방이 둘 밖에 없었고, 작은 방은 여동생이 썼다. 군대 가기 전에는 주방을 뒷베란다로 옮기고 원래 주방이었다가 이젠 주방으로 가는 통로가 되어버린, 다른 집이었다면 거실이라고 불렀을 수도 있는 좁은 공간에 자바라 칸막이를 치고 임시로 내 방으로 썼다. 평생 침대를 써 본 적이 두 번 있는데, 그때와 고시원 생활할 때였다. 그 통로 공간은 원래 싱크대가 있던 자리 밖에 내가 잘 곳이 없었는데,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바닥에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침대 생활을 몇 달간 했고, 내가 군대 간 후에 그 침대는 여동생이 썼다.

암튼 가끔이지만 그 집에서 자고 돌아와야하는 날엔 부모님과 한 방에서 지내야 하는 일이 무척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모로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다가 문득 잠에서 깼다.

정신이 든 후에 그 공간과 그 시절이었다면 충분히 괴롭고 힘든 시기였으니 악몽일 수 밖에 없겠다고 납득했다.

집 이야기

그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였다. 그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기 전에 우리집은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이었다. 내 기억속에 가장 오랜된 우리집은 넓은 2층 주택 중 구석진 곳에 있는 방 한칸에 부뚜막이 달린 곳이었다. 사람 얼굴 높이에 작은 간유리 창문이 있는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뚜막이 나오고 그 옆에 아주 높은 계단 두 단을 밟고 미닫이 문(나무창살에 창호지를 붙인)을 열면 작은 방이 나왔다. 그 방에 제대로 된 가구도 없이 네 식구가 살았다. 욕실이 따로 없어서 그 부뚜막에서 아침 저녁으로 씻었고, 화장실은 밖에(그러니까 마당 구석에) 여러 가구가 함께 쓰는 공동 화장실이 세 칸(혹은 두 칸이었으지도)있었다. 그 2층 주택은 주인집이 2층 전체를 쓰고 1층은 우리 집 같은 집들이 대여섯 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집에 살았던 또래 친구가 적어도 너댓명은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에 커다란 (뻘건)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들이 빨개벗고 놀았다. 남녀 구분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게. 그때 우리집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방에 살았던 동갑내기 여자 아이랑은 같이 다 벗고 노는 일이 자연스러웠는데, 동네 목욕탕 여탕에 엄마 따라갔다가 같은 반 여자아이와 마주쳤을 때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수 없었던 것. 뜨거운 탕안에 쏙 들어가서 버티고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시절 그 열악한 주거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시백 선생의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덕분이었다. 이시백 선생의 실감나는 묘사 덕분에 그때 그 집이 생각났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동기가 그 동네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알고보니 국민학교 한 해 선배였던 그는 대학시절까지도 그 동네에 계속 살고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갔던 어느날 어린시절 살았던 그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자주 놀았던 골목길과 공터 등이 여전히 기억 속에서는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남아있는 학교를 비롯해 길을 유추해보면 여기쯤이 맞을 것 같은데, 그 집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단칸방에 제법 오래 살다가 국민학교 2학년때 앞서 언급한 임대아파트로 이사갔다. 그 아파트는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 좁은 집이 당시엔 엄청 넓어보였다. 나와 동생에겐 방이 새로 생겼다. 집엔 각종 가구들도 새로 생겼다. 동생은 잠버릇이 험해서 같이 자기에는 좋은 룸메이트는 아니었지만, 좁은 방에 네 식구가 자던 시절에 비하면 뭐 말이 필요없었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내 독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었고, 학급문고를 읽었고 이웃이나 친구들 책을 빌려 읽었다.

이 아파트에 오래 살았던만큼 기억나는 일화가 많은데, 겨울이 오면 뒷베란다 연탄광에 연탄을 쌓아두었던 일과 그 연탄광 옆에 쓰레기 투척구가 있어서 쓰레기를 던지면 아파트 뒤쪽 쓰레기장에 쓰레기가 모였던 것 등이 기억난다. 우리 집은 4층이었는데 연탄이 들어오는 날엔 난리가 났다. 1층부터 4층까지 부직포 같은 걸로 계단에 연탄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깔개를 깔아두고 여러 명의 아저씨들이 양손에 연탄 2개씩 총 4개를 쥐고 4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그 깔개는 집안에도 깔아둬야 하는데, 아저씨들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가 다시 뒷베란다에서 신발을 신고 할 수 없으니 신발을 그냥 신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연탄광에 연탄 200장을 채우고 나면 집안 청소가 큰 일이다. 아무리 깔개를 깔아뒀어도 집안엔 신발자국이 남게 마련이고, 연탄 가루가 날리기 마련이다.

4층까지 올라야하는 계단은 좁아서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들은 도중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몇 살때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연탄을 같이 날랐는데, 양손에 연탄 집게를 쥐고 연탄을 4개를 들어올리면 손아귀 힘만으로 버티며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나중에는 손에 힘이 빠져서 연탄을 놓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실수로 연탄을 떨어뜨리면 비싼 연탄을 못쓰게 되고 바닥이나 벽에도 시꺼먼 얼룩이 묻는다.

그 아파트에 제법 오래 살다가 청소년기에 그 근처 주차장 옆 반지하 집에 또 몇 년을 살았다. 그 아파트가 방이 두 개 밖에 없고 좁았는데 반해, 주차장 옆 반지하 집은 엄청 넓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시절 사춘기였던 나와 동생은 넓은 방에 자바라 라고 부르는 접었다 펼쳤다 하는 간이 벽을 치고 한 방에 지냈다. 내가 입구 쪽에 지내서 동생은 화장실만 가려고 해도 자석으로 닫힌 자바라를 열고 내 자리를 지나가야 했다. 사춘기의 예민했던 남녀가 그 방에서 참 많이 싸웠으리라.

그 집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단칸방 시절에도 화장실이 밖에 있었지만, 그건 재래식이었고 여러 집 가족들이 같이 써야해서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집 화장실은 밖에 있었어도 수세식이었고, 우리 가족만 쓰는 것이라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겨울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추위가 제일 힘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반지하 집에 살았었다. 그 집 바로 뒤엔 독서실이 있었고, 동네 친구들 중 그 독서실에 다니는 애들이 좀 있었다. 그 독서실 베란다에서 아이들이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며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집이 바로 보였다.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난 반팔 셔츠에 사각팬티만 입고 밖에 나와 있었다. 집안은 열기로 가득차 있었고, 선풍기도 여동생한테 뺏겼고, 밖은 그래도 해가 떨어지면 좀 견딜만 했으니. 독서실 쪽에서 여자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쩌다 알게된 이웃 여고 아이들이었다. 난 그렇게 속옷바람으로 여자아이들을 만나 한참을 놀다가 돌아왔다. 속으로 제발 그 아이들이 이게 속옷이란 걸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랐는데,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아이들 집에도 다들 그런 사각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아빠들이 있었을테니까. 다음날부터 어울리던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동네에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누군가가 있다고.

쓰려다보니 학교 앞 자취방에 대해서도 쓸 말이 많은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래 내용은 벌써 며칠 전에 쓰다 만 것인데,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일단 뒤에 붙여둔다.

화가 난다

아침에 페이스북을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출근을 위해 움직이던 걸 멈췄다. 상식 혹은 기본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 당사자는 일반인이 아닌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공인이었다. 4년전 지난 지방선거에서 바로 내 눈앞에 앉아서 내가 요구했던 재생에너지 정책을 당연히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는 당선된 후에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약속을 이행하라고 찾아갔던 우리를 그는 매몰차게 문전박대했다. 만날수 없었다. 선거 운동 기간에 뭐든 수용하겠다고 직접 본인이 도장을 찍은 그 협약서를 지금도 내가 갖고 있는데. 그래놓고 다시 선거에 나오겠단다. 지난 4년 동안 만날 수도 없었는데, 이제 다시 시민의 발이니 머슴이니 하면서 떠들겠지.

하필이면 그 인간의 책을 낸 출판사가 내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였다. 그걸 알게 된 건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코로나 국면에서 공무원들을 비롯해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요하는 국면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해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는 기사였다.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래 본인은 다시 선거를 준비해야 하니 출판기념회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양심을 팔고 본인 잘난 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눈이 돌아갔다.

하필 한때 엄청 친했던 친구가 그 인간의 책을 냈더라. 그리고 출판기념회 기사가 났고,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페이스북에 공유한 걸 봤다. 처음엔 그냥 무시했는데, 그렇게 자랑하는 듯한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보여서 더 화가 났다.

그냥 넘어가려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사실 댓글로 그런 이야기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뭔가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내 감정과 의도를 다 담기는 어려웠다. 결국 감정을 주로 담은 댓글을 쓰고 말았다. 만약 그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때 의도를 설명할 기회가 생기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각자의 입장은 다르니까 라는 투의 답글만 남기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던 간에 내가 표현하려던 불쾌감은 전달이 됐으니 그걸로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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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4-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는 저놈의 집 얘기만 해도 한보따리의 얘기가 나올듯해요. 진짜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집들에서 참 잘도 살았다는.... ㅎㅎ 감은빛님의 악몽이라는 말이 공감가요. 그 시절 살았던 기억 자체가 악몽인것은 아니지만 다시 살라고 하면 진짜 악몽이 될것같으니 말이죠. ㅎㅎ
다음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은빛 2022-04-30 16:49   좋아요 0 | URL
그죠? 바람돌이님.
정말 집을 주제로 쓸 이야기가 엄청 많아요.
언젠가 제대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에
늘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22-04-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 - 불쾌한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풀어 냈으니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되셨으리라 믿어요.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감은빛 님이 글을 쓰시는 분이고,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공간이 있어 글을 읽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에요. 생각 없이 사는 듯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지요. 그런 사람에겐 무엇이 잘못인지 말해도 아마 못 알아 듣고 화부터 낼 겁니다.

저도 어릴 적 연탄을 몇 백 장 쌓아 놓아야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집에서 산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뜨거운 물도 안 나오고 세탁기도 없는 그런 집에서 어떻게 웃으며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감은빛 2022-04-30 16:52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말씀처럼 확실히 도움이 되었어요.
제 글이야 뭐 그냥 생각나는 걸 끄적이는 것 뿐인데,
이렇게 공감해주시니 너무 감사한 일이죠. 고맙습니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정말 화장실도 욕실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살았었나 싶더라구요. 확실히 우리는 점점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지구가 위기에 처한다는 생각을 못 한다는 점이 안타깝긴 합니다.

꼬마요정 2022-04-3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연탄을 사용해야 하는 집에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던 집도 그렇구요(친가, 외가 다요) 그 당시 저는 몰랐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이 많았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잘 살아남은 것 같아요. 근데 또 연탄 보일러(?) 뚜껑 위에 쥐포 구워먹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더럽네요 ㅎㅎㅎ

저도 구의원 경선한다고 후보들 문자 오는데 보니까 한 분…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고 딸이랑 싸우고 짜증 내던 분이더라구요. 몇 년전에 일 때문에 봤는데, 구의원 선거 나올 거라는 거 보고 화가 나더라구요. 진짜 아무나 정치 하는구나, 소명의식 같은 건 없는 사람 많겠구나 싶었어요. 감은빛 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감은빛 2022-04-30 16:58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안녕하세요.
정말 예전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꽤 많았어요.
제 먼 친척되시는 어르신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숙직실에서 주무시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
연탄 난로를 켜놓고 환기를 제대로 못 하셨나봐요.

사실 거대 양당 체제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과자들도 많고 인간이 되지 못한 뭐 같은 xx들도 많죠.
전과 중에서도 음주운전 이런 건 정말 많구요.
제일 화가나는 건 성범죄자들도 제법 많더라구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