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자립마을 첫 강의 때 폭염에 대해 특별히 길게 강의를 하고, 일주일 후에 두번째 강의를 하러 갔더니 첫 강의를 들었던 어르신 한 분이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나니 에어컨을 마음껏 켜기가 망설여진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류가 편하게 살려고 에너지를 많이 쓰다보니 폭염이 이렇게 심해진 것인데, 이 폭염 때문에 또 에어컨을 마구 사용하면 점점 더 기후위기가 심해진다고 내가 설명하긴 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이 더위를 견딜 수 없을텐데.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몇 천명씩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것도 모두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이었던 것을.
그래서 질문하신 어르신을 포함해 현장 참석한 소수의 수강생과 줌으로 연결된 다수의 온라인 수강생들 모두에게 전했다. 다양한 기후 현상들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폭염이라고. 폭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에어컨 사용은 꼭 필요하다고. 다만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현명하게 사용하셔야 한다고. 이어서 한 20분에 걸쳐서 에어컨 사용 꿀팁을 자세히 설명했다. 선풍기나 에어서큘레이터를 적극 활용하면 좋고, 바닥에 놓고 사용하는 선풍기 보다 천장에 매다는 실링팬이나 벽걸이 선풍기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했고, 온도 설정 방법을 비롯해 여러 노하우들을 알려드렸다.
사실 가장 더운 날에 에너지를 아끼는 좋은 방법은 무더위 피난처를 만드는 것. 마을 단위 혹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가장 더운 날 저녁에 모여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각자의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냉방에 사용할 에너지를 아끼고 그 시간을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값지게 쓰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가장 무더운 날 밤에 다큐 시청회를 열어 밤새 환경 다큐들을 함께 보기도 했고, 또 다음 해에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서 각자가 좋아하는 음반을 갖고 오거나 유튜브로 검색해서 음악을 소개하고 함께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물론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올해 여름은 나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만든다. 명색이 환경운동가로서 집에 에어컨을 들일 수는 없다는 일종의 자존심이 있기도 하고, 낡은 빌라의 집 구조상 에어컨 설치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도 있었다. 절대 돈이 없어서 설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겨우 여름에 며칠 쓰려고 그걸 설치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다. 암튼 아직 에어컨이 없는 이 집에서 여름을 나는 일이 정말 고역이다.
2018년에도 무지 더웠는데, 왜 유난히 올해 더 견디기 힘들까 싶어서. 2018년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만나고 늦게까지 외부에 머무는 일에 특별히 제약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낮에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에어컨이 있는 곳(주로 술집)에서 누군가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열대야 때문에 일찍 집에 들어가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되도록 늦은 시간까지 시원한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간혹 저녁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일부러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특별히 무더웠던 2018년 여름에도 집에서 고통받았다는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확실히 코로나에 무더위가 겹쳐서 더 큰일이 된 느낌이다. 최근 4차 대유행 때문에 일부러 며칠을 재택근무를 했다. 사무실에 나가면 그래도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데, 집에서 일을 하려니 선풍기 3대를 각각 다른 방향에서 틀어놓아도 별로 시원하지가 않다. 그닥 시원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어야 견딜 수 있으니 선풍기를 도저히 끌 수가 없었다. 밤에도 열대야라서 선풍기를 켜놓고 잠을 잤는데도 너무 더워서 땀을 흘리다 깨곤 했다. 선풍기 3대는 24시간 아니 48시간 이상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흘러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덮어쓰고 땀을 씻어내야 했다.
우리 집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일 정도로 엄청 높은 곳에 위치하고 평소에 바람도 잘 들어오는 편인데, 이번 여름에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더운 날에는 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엄청 들어와서 오히려 춥다고 느낀 날도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날이 거의 없었다.
2018년에 이어 올해 온갖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는 54도에 이르는 폭염과 산불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고, 미국 동부는 폭풍과 홍수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와중에 독일은 갑작스런 폭우로 큰 피해를 당했다. 아프리카와 중동도 폭염 피해를 입은 건 마찬가지고,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일본은 폭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 역시 간혹 국지적인 소나기가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산사태를 비롯한 침수 피해 등을 여러번 입었다. 우리나라의 폭염은 온도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들에 비할 비가 못 된다. 나는 이미 이렇게 죽을 것 처럼 더운데,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겨우 36도일 뿐이다. 물론 습도라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미국과 인도와 중동처럼 50도가 넘어가는 동네에서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이미 몇 해 전부터 기후위기 강의를 할 때마다 2010년대 들어서서 심해진 세계 여러 나라들의 기상 재앙 현상들을 소개하면서 특히 폭염에 대한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다뤘었다. 점점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이런 이상 기후 현상들에 대한 정보들도 많이 공유되고 있다. 다른 이상 기후 현상들에 비해 유독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바로 이 폭염이다. 10여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 통계수치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에어컨은 이제 인권의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수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과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상.
코로나-19 시대를 설명하는 다른 단어는 아마 온라인 시대 혹은 비대면 시대일 것이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실내에 갇힌 채,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교통수단에 이용되는 1차 에너지는 확실히 줄었다. 분명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항공 운행이 급격히 줄었던 것은 온실가스 저감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영상을 보거나 수업을 듣는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 영상 콘텐츠들(영화나 드라마 등)을 모아놓은 몇몇 업체들에 접속해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루종일 수많은 영상을 소모하는 요즘 사람들 덕분에 구글을 비롯해 영상을 주로 제공하는 기업들의 데이터 센터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내가 방 구석에서 뒹굴거리며 영화 한 편 보는 행위는 지구 어딘가의 데이터 센터에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행위는 곧바로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행위가 되고, 퇴근 후 혼자 좋아하는 영화 하나씩 보고 잠드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상황이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구글을 비롯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 센터는 태양광을 비롯해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로만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소식을 몇 해 전부터 듣긴 했다. 죄책감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으려나.
지금의 기후 위기는 이미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티핑 포인트를 지났다는 것이다. 반면 IPCC를 비롯해 국제적으로는 1.5도 안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보는 듯 하다. 과연 인류는 다른 수많은 생물종처럼 기후 위기로 멸종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이 여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단지 혼자 에너지를 아껴 쓰는 실천 외에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을까? 기후 악당으로 낙인 찍힌 대한민국 정부의 헛발질 속에서 나는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 외에 무엇을 시도할 것인가? 여러 생각과 질문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모르겠다. 일단 며칠에 걸쳐 두서없이 두드린 이 글을 마무리 하고 다시 일을 해야지. 당장 뭔가 답이 안 나오고 답답하기만 하더라도 내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