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줄곤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 라는 노래. 평소에도 뭔가 꽂히는 노래가 생기면 계속 반복해서 듣는 편이긴한데, 이번처럼 쉬지 않고 계속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계속 이 노래가 땡겼다고 해야할까.
처음에는 올리비아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을 원곡인 뮤직비디오를 반복해서 봤고, 그 다음에는 라이브로 공연한 영상들을 봤다. 이어서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유튜버들의 커버 영상들을 하나씩 차례로 봤다. 라이브 공연은 라이브로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어서 좋다. 커버 영상들은 라이브로 노래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커버 영상들의 묘미는 다양한 자기 해석과 편곡 스타일이다. 각자의 음색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요즘은 유튜브 덕분에 최근 곡들 위주로 커버 영상들을 찾아서 비교해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어떤 경우는 원곡을 각자의 언어로 커버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언어가 달라진 덕분에 곡의 느낌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훨씬 흥미롭다. 유명한 팝송들을 프랑스어로 부르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한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는 인도네시아 노래들을 영어로 커버해서 올리는데, 인도네시아 노래들에 흥미가 있는 나로서는 이것 역시 엄청 보물창고로 여겨졌다. 유명한 중국 드라마 주제곡을 일본어로 부른 곡이라던가, 중국 노래를 우리말로 바꾼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언어로 된 커버 곡을 발견한 노래는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 였다. 몇 개의 언어로 커버 곡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할 정도로 많았다.
암튼 거의 하루종일 [Drivers license] 를 듣다가 두 가지 이야기를 상상했다. 하나는 이제 막 운전면허증을 딸 나이가 된 10대 후반의 여성이 이별을 겪은 이야기로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실제 10대 후반이니 원곡의 이야기에 가깝다 볼 수 있겠다. 굳이 애써서 찾아보지 않아도 이 노래의 뒷 이야기로 알려진 그와 조슈아 바셋과의 연애. 그리고 사브리나 카펜터의 이야기가 구글의 알고리즘 덕분에 자꾸 눈에 들어오던데, 내가 상상한 이야기는 그렇게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닌 훨씬 평범한 내용이다.
다른 이야기는 3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늦게 운전면허증을 딴 여성의 이별 이야기로, 설정에 성별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어느 여성 작가의 단편 소설에서 약간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순수하게 처음부터 내가 상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핵심적인 내용을 가져온 것은 아니어서 표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두 이야기는 나중에 글로 써서 보관해둬야지. 언젠가 자동차가 등장하는 다양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모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글로 써놓은 몇 개의 이야기가 있고,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된 이야기도 몇 있다. 문제는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인데, 오늘 떠올린 이야기를 포함해 구상만 해놓고 쓰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미 많다. 이러다가 나중에 구상했던 세부 내용들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쩌면 이 이야기들을 두드려서 저장해둬야 할까? 이 글을 두드리다 말고 오늘 저녁에 읽으려고 이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을 찾아뒀는데, 오늘 남은 시간에 책을 읽을 것인가, 이야기를 써놓을 것인가. 모르겠다. 배가 고프니 일단 먹고 생각해봐야겠다. 이래놓고 밥을 먹은 후에는 그냥 잠들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아, 밥을 먹기 전에 왜 하필 자동차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생각했는지는 적어둬야겠지. 일단 오늘 위 두 개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전까지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는데, 자동차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얽히면 두 이야기를 활용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주 오래 전에 내가 겪었던 일을 모티브로 적어놓은 것이 떠올랐고, 잠시 후에 또 다른 이야기들도 생각났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서 자유를 의미한다. 대중교통이 없는 곳에서 차가 없으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마치 갇혀있는 것 같은 상황에 놓인다. 나는 농사짓는 시골 마을에 살면서 그런 상황을 겪었다. 차는 또 떠남을 의미한다. 이별의 상징으로 쓰기 좋다. 한편 차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집이나 사무실보다 차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차는 보다 각별한 느낌일 것이다.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할 돈을 모으지 못하는 현실에서, 매달 엄청난 할부금을 갚아야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만이라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을 소재로 쓸 수도 있다. 거기에 긴 시간 운전하는 것은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거나, 풀지 못하던 어떤 문제에 다가가는 단서를 깨닫게 만들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안에 홀로 앉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은 고독한 주인공을 등장시키기에 너무나도 좋은 공간 설정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얼마나 잘 묘사하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내는가, 얼마나 흥미롭게 풀어나가는가 등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