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짐(Home gym)

여름이라 운동 강도를 높이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자꾸 일정 수준에서 운동을 멈추고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이런 정체기를 좀 극복해보려고 큰 맘 먹고 새 운동기구를 3개나 질렀다. 며칠 전 저녁 회의를 마치고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을 거절 못 하고 딱 두 잔을 걸치고 12시 무렵 돌아오니, 현관 문앞에 운동기구 3개를 포함한 택배 상자 4개가 놓여 있었다.

술도 한 잔 걸쳤고, 걸어오느라 조금은 지친 상태였는데, 그 밤에 운동기구들이 도착한 걸 보고 갑자기 신이 나서 포장을 풀었다. 케틀벨을 꺼내다가 실수로 쿵 떨어뜨리고는 너무 놀랐고 아랫집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후로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내친 김에 이번에 장만한 12킬로그램 케틀벨과 17킬로그램 불가리안백으로 가볍게 운동도 했다. 그리고 부피가 큰 불가리안백을 놓기 위해 운동공간을 조금 정리했다. 걸어온 후에 무게를 들었더니 땀으로 온 몸이 젖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이 정도면 홈 짐으로 어느 정도 구색이 맞겠다 싶었다. 비록 공간이 협소해 계속 원하는 벤치프레스용 거치대가 달린 벤치는 사지 못하고 있지만, 그 외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대체로 갖췄다.

1. 실내철봉
가장 부피가 큰 건 바로 이 철봉이다. 일단 높이가 약 2미터 더 높여서 쓰고 싶지만 집 천장이 낮아서 이 정도로 맞출 수 밖에 없다. 양 쪽에 풀업을 위한 바가 달려있고, 한 쪽엔 딥스 바와 레그레이즈를 위한 쿠션도 달려있다. 거의 쓸 일이 없지만 다리 한 쪽엔 푸쉬업을 위한 손잡이도 달려있다. 아, 다양한 당기기 동작을 할 수 있는 튜빙밴드도 달려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동작들을 수행할 수 있고, 생각보다 무게중심도 잘 잡혀있어 안정적으로 매달려 풀업을 할 수 있다.

이전 집에 있을 때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구매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걸 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피로보나 무게로보나 엄청난 짐이 하나 늘었기에 이 집으로 이사올 때 도와주던 후배가 엄청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도 가끔 저것 때문에 방이 좁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나로서는 이제 방안에 철봉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침에 씻기 전에 한 번 매달리고, 저녁에 씻기 전에 또 한 번 매달리고, 매일 두 번씩 매달리면 정말 기분이 좋다.

2. 덤벨들
내가 가진 운동기구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들.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이거나, 대학시절이었을 것 같다. 약 20년전 무일푼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내 커다란 짐 가방에는 무게가 같은 한 쌍의 아령과 무게가 다른 두 개의 아령이 들어있었다. 당시 내 짐을 함께 들어주기위해 서울역까지 마중나왔던 후배는 내 가방에서 아령들이 나오자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 가능해 여러모로 쓰임이 많지만, 최근에는 다른 걸 주로 활용하느라 별로 손을 안 대고 있다. 가끔씩이라도 이용해줘야지.

3. 바벨
바로 앞에 살던 집에서 실내철봉과 함께 구매했다. 술자리와 야근으로 피트니스클럽에 매일 가지도 못하는데, 비싼 돈을 갖다 바치는 게 아까워 차라리 그 돈으로 집에서 운동하자는 마음이었다.

20킬로그램 대봉을 사고 싶었으나 집이 좁아서 15킬로그램중봉을 산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다. 원판은 처음에는 내 몸무게에 살짝 못 미치게 구매했고, 이후에 한 번 더 구매해서 몸무게 이상을 들 수 있도록 갖췄다.

초기에는 무게를 많이 드는 데드리프트와 백스쿼트 위주로 운동했으나, 스쿼트 랙 없이 백스쿼트는 위험해서 낮은 무게로만 시도하게 되었고, 스내치를 열심히 연습했으나, 어느날 무릎을 다친 이후로는 푸쉬프레스와 오버헤드 스쿼트 위주로만 운동한다. 벤치프레스를 못 한다는 점이 늘 아쉽다. 언젠가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간다면 제일 먼저 벤치프레스용 벤치를 들여놓을테다.

4. 완력기
이건 아마도 서울살이 중 가장 먼저 구매한 운동기구일 듯. 일자형 완력기로 원래 용도 외에도 봉으로 활용해 야구배트처럼 휘두르거나, 마치 광선검인양 스타워즈 놀이를 할 때 사용한다. 가끔 기억을 더듬어 총검술을 해보기도 하는데, 길이가 좀 짧아서 아쉽다.

5. 악력기
평택 농사짓는 마을에 살면서 환경단체에 일할 때 구매했다. 당시에 비교적 쉽게 쥘 수 있는 것 말고 힘이 많이 드는 고급자용을 구매했는데,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오른손에 비해 왼속 악력이 형편없이 약했다. 오른손으로는 쉽게 쥘 수 있는 이 악력기를 왼손으로는 몇 개 쥐지 못했다. 이걸로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젠 왼손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나중에 여유가되면 무지개 악력기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그거 색깔별로 7개 구매하는 것도 돈이 제법 들 것 같다. 물론 내 악력이 상위 단계까지 도전할 정도는 아닐거라서 당장 모든 색깔을 다 구매할 필요는 없겠지만.

6. 벤치
결혼 후 꽤 오랫동안 운동을 안 하다가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같이 많이 먹어서 ˝니가 임신했냐?˝ 혹은 ˝몸매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 등등 구박을 듣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운동을 해야지 마음 먹었을 때 구매했다.

벤치프레스가 가능한 벤치를 정말 사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바벨까지 구매할 엄두가 안나서 그냥 평벤치를 구매했다. 운이 나빠서 발걸이가 불량인 벤치를 받았는데, 교환하기가 귀찮아 그냥 발걸이를 활용하지 않고 다른 운동을 중심으로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운동에는 거의 활용하지 않고 그냥 의자 용도로 쓰거나 물건들(특히 작은 아이 장난감) 놓는 받침대로 쓰이고 있다.

7. 케틀벨
케틀벨 운동을 처음 배운게 10여년 전이었다. 어려서 역기를 배웠기에(꾸준히 하지는 않았고, 그냥 배우기만 했다.) 무조건 역도가 최고의 운동이라 여겼는데, 케틀벨을 배우고 나니 좁은 공간에서 손쉽게 운동하기에 최고라 생각했다.

특히 케틀벨 스윙은 마무리운동으로 이만한 게 없다 싶은 최고의 운동이다. 데드리프트도 바벨보다 훨씬 쉽고 안정적이며 스내치는 또 얼마나 리듬감이 있고 재밌는 지 모른다.

처음부터 25킬로그램을 사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서 당시 애들 엄마가 용인해줄 수준인 16킬로그램을 샀다. 요 무게가 참 애매했다. 스윙을 하기엔 적절하거나 가벼웠고, 데드리프트로는 많이 가볍고, 한 손 스윙이나 스내치를 하긴엔 또 무거웠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12킬로그램과 25킬로그램을 사고 싶었는데, 계속 망설이고 미루다가 이번에 12킬로그램을 샀다. 나중에 언젠가 25킬로그램도 사야지.

8. 추감기 봉
배우 장혁이 몸 만들때 전완근 단련을 위해 사용했다는 바로 그 기구다. 나는 몸통 근육에 비해 팔 다리 근육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다. 특히 운동 좀 했다는 분들은 상완과 전완의 크기가 큰 편인데, 나는 크기를 키우는 방식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팔만 보면 운동을 오래한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들 이두나 삼두 크기를 보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특히 전완은 키우기가 쉽지 않은데, 전완이 잘 발달된 사람을 보면 특히나 멋있어보인다.

어느날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러저런 운동기구들을 구경하다가 발견하고 바로 주문했다. 고립운동은 내 운동 철학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전완이 발달된 사람은 부럽다. 일단 열심히 해보자.

9. 중량벨트와 모래주머니
발목에 감을 수 있는 1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는 어느날 마트에서 발견하고 구매했다. 발목에 차고 다양한 하체 운동과 풀업과 딥스 등을 할 때 조금의 무게를 주는 용도로 잘 쓰고 있다. 특히 무릎을 높이 올려 제자리 달리기 동작을 할 때 유용하다.

중학교 때 같이 운동하던 친구는 늘 발목에 2킬로그램짜리 추를 차고 다녔다. 그 녀석은 평소 늘 그걸 차다가 달리기 할 때 풀면 훨씬 가볍게 달릴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발목에 달고 다닐 추를 검색해보려다가 관절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건 포기했다.

대신 맨몸운동에서 무게로 부하를 주고, 특히 풀업과 딥스에 활용하기 위해 중량벨트를 구매했다. 중량조끼를 살지, 벨트를 살지 고민했으나, 조끼는 아무래도 갑갑하고 불편할 것 같았고, 집에 있는 다양한 크기의 원판을 활용하기 좋아서 벨트로 결정했다.

10. 불가리안백
운동은 하고 싶은데, 관절통증으로 못 하는 날엔 다양한 운동 동영상을 찾아본다. 어느날 불가리안백 운동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거 하나로 정말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는 점, 주로 코어를 활용하고 온 몸의 협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 운동 원칙에 딱 맞았다.

그래도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일단 집이 좁아서 부피가 큰 이 아이를 막 돌릴 운동 공간이 아쉬웠다. 지금 운동공간은 큰 방의 한쪽 구석에 운동기구들을 몰아놓고 전신 거울 하나를 걸어놓은 곳인데, 이 아이를 돌리려면 방 중앙으로 나와야 하는데, 거긴 거울이 없어 동작을 제대로 익히고 체크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않았다. 정품이라고 인증받은 제품을 사려면 너무 비싸서 이것저것 많이 검색해보고 고민하다가 중국산 저렴한 제품을 구매했다. 잘은 모르지만 일단은 만족스럽다.

다만 무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처음부터 17킬로그램을 샀는데, 확실히 초보자에겐 무리인 것 같다. 사실 불가리안백을 시작할 때 남성은 12킬로, 여성은 8킬로가 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처음엔 12킬로를 사려고 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꿔 무게를 늘렸다.

지금은 일단 이 아이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고중량에 적합한 동작 중심으로 익히고, 나중에 조금 시간을 두고 12킬로그램을 하나 더 구매해야겠다.

11. 기타 운동 보조용품들
관절통증에 시달리게 된 이후로 각종 보호대들(발목, 종아리, 무릎, 손목)과 장갑은 필수가 되었다. 이외에도 맨몸운동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밴드들이 있고, 스트레칭 할 때와 버피를 할 때 바닥에 까는 요가 매트 등이 있다.

또 자주 하지 않는 스트레칭 동작할 때 참고하려고 사놓은 스트레칭 책이 3권이나 아령들 옆에 놓여있다.


이렇게 적어놓고나니 의외로 운동기구가 많고 여기에 들인 돈도 많구나 싶다. 여기서 더 갖추고 싶은 것들은 ① 벤치프레스용 벤치 ② 샌드백 ③ 대봉(올림픽 규격) ④ 짐볼 등이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겠지. 무엇보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할 것이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운동하려면 바닥 매트 시공도 꼭 필요할 것이다.

가끔 하루종일 먹고, 운동하고, 쉬고 또 먹고, 운동하고, 쉬고 이렇게 반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불가리안백을 받고 요 며칠의 내가 그렇다. 일터에서도 계속 운동 동작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기분좋은 근육통을 느끼며, 오후에 할 동작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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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한번 지도 편달 받아야겠다 ㅎㅎ 😎

감은빛 2020-07-07 19:40   좋아요 0 | URL
제가 감히 지도 편달까지 할 입장은 안 되겠지만,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소인이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겠나이다. ㅎㅎ

다락방 2020-07-0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운동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뽜샤! 전완근 홧팅!! 💪

감은빛 2020-07-07 19: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 덕분에 일요일엔 오버트레이닝을 해버렸나봐요.
저는 정확히 이틀 후 아침에 근육통이 오는 편인데,
오늘 아침에 근육통으로 꽤나 힘들었습니다. ㅎㅎ

비연 2020-07-05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홈트 완전체를 가지고 계신 듯!

감은빛 2020-07-07 19:44   좋아요 0 | URL
인간은 늘 욕심이 앞서나봐요. 비연님.
철봉만 사면 좋겠다 싶다가 철봉을 사면, 바벨을 사고 싶고,
바벨을 사면 좋겠다 하다가 바벨을 사면 또 케틀벨을 사고 싶고,
케틀벨을 갖고 나면 불가리안백을 갖고 싶고.
이거 무한 반복인 것 같아요. ㅠㅠ

stdms2869 2023-08-3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야기인 줄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