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망연자실
아마 저녁 8시쯤이었을거다. 딱 퇴근시간 맞춰 나오면 도저히 사람이 더 탈수 없는 만원버스를 두어대 이상 그냥 보내야하니, 일부러 한 시간 이상 일을 더 하다가 나왔었다. 그날 따라 저녁 회의나 일정이 없었고, 딱히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평소였으면 밀린 일을 하며 더 늦게까지 있었을텐데, 좀 피곤했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평소보다 일찍(?) 나온게 그 시간이었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켜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 도착 시간을 보니 아직 한참 남았다. 차라리 걸어갈까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그날의 피로감이 너무 컸다. 그냥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높이 달려있는 버스 도착정보 전광판을 보려고 뒷걸음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대로 음악을 들으며 안 읽은 글 숫자가 몇 십개씩 표시된 메신저 앱을 열어보느라 그가 다가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내게 부딪쳤고 둘 다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서로 사과를 했다. 한 눈에 보아도 옷차림이 세련된 여성이었다. 아마 30대 중반이 아닐까 싶은 얼굴.
그는 내가 옆으로 물러난 자리 옆에 서서 버스 도착정보를 한참 보더니, 다시 폰을 들여다보더니 도로가에 서서 초초한 듯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빨간색 광역버스 한 대가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알림이 뜨고, 그 버스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마 그 버스를 타려는 듯, 한 발을 더 도로쪽으로 내딛고 목을 빼고 기다렸다.
그런데 버스가 정류장까지 오지 않고 조금 위쪽에서 도로가로 접근해 속도를 줄이더니 정작 정류장은 그대로 통과해 지나쳐버렸다. 그는 버스가 정류장에 오기도 전에 멈추는 것 같은 모습을 보더니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 버스가 도로 안쪽으로 차선을 바꾸며 속력을 내자 도로로 내려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버스는 그를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휙 자나쳤다.
명백한 버스 기사의 실수였다. 다음 버스는 20분을 더 넘게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 순간 차도에서 다시 인도로 올라서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망연자실한 모습. 나였더라도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는 아예 택시를 타려는 듯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택시가 오는지 살폈다.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여전히 차량은 많았고,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 길에서 그 시간대에 빈 택시를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버스 도착 알림에 나온 다음 버스가 올 20여분 뒤까지도 빈 택시를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가 그렇게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린 것은 아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때 그렇게 초조함을 느꼈다.
내가 타아햘 버스가 오기까지 한참을 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내가 예상한대로 그는 아직 택시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 올랐기에 그 다음 그의 행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과연 자신을 태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버스 기사를 원망했을까?
양수(두물머리), 양평, 용문 그리고 막국수
재작년에는 유독 강의 요청이 많았는데, 작년에는 강의 요청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들어오는 요청이 있어도 내가 직접 하지 않고, 주위에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넘겼다. 올해 다시 강의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요청은 내 경험을 보고, 나를 지명해서 들어오는 요청이 대부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넘길수가 없었다.
그 중 양평에서 온 요청이 있었다. 서울에 산 지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동네를 벗어난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경기도 지리는 더 모른다. 양평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양평이 어딘지도 몰랐다. 강의는 총 2회였는데, 하루에 몰아주면 좋았으련만, 주 1회씩 총 이틀을 양평까지 가야했다. 구체적인 위치가 어딘지는 몰랐지만, 서울의 서북쪽 끝에 살고 있는 내게 엄청 먼 거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침 10시 강의였는데, 강의 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로 길찾기 앱이 알려줬다. 7시 전에 나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차를 빌려 운전해서 가능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아침 출근길에 얼마나 차가 막힐 지 생각이 미치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생각을 폐기했다. 여러번 갈아타더라도 어쩔수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야지 생각했다. 전날 일찍 자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강의시간에 맞출 수 있고, 강의도 잘 할 수 있으리라 머리로는 생각했다. 하지만 술 한 잔 하자는 후배의 연락에 내 손가락은 내 머리와는 관계없이 약속을 수락하는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 어쩔 수 없이 나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자정을 넘겨 집으로 들어갔고, 알람을 10개 넘게 맞추고도 혹시 못 일어나서 강의를 펑크내고 이 바닥에서 신용을 완전히 잃게 될까봐 걱정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들긴 했는데, 계속 악몽을 꿨다. 꿈에서 나는 매번 늦게 일어나 급하게 경의중앙선을 타러 가는데, 꼭 버스가 사고가 나거나, 내가 뛰다가 다치거나, 경의중앙선 열차가 고장이 나거나 해서 강의 장소에 늦게 도착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었다. 그러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이게 악몽의 반복인지 현실인지 깨닫기도 전에 후다닥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경의중앙선 열차에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정말 먼 곳이었다. 문득 자세를 바꾸며 어디쯤 왔는지 살펴도 아직 한참을 더 가야했다. 그러다 문득 밖을 보았는데, 운길산 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두물머리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지금처럼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다가 동행이었던 녹색당 당원에게 운길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내 머리는 당연하게 그때의 두물머리 투쟁에 대한 기억을 재생했다. 천막촌에서 지냈던 시간들. 그때 오랜만에 만났던 환경단체 선배들. 아름다웠던 두물머리의 모습들.
갑자기 양수 역에서 내려 두물머리를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강의를 안 갈 수는 없었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노선도를 살피다가 내가 내려야 할 양평역에서 조금 더 가면 용문 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 여름 휴가를 준비할 때 큰 아이는 다시 한 번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레일바이크를 두 번 타봤는데, 한 번은 용문에서 한 번은 삼척에서였다. 그 유명한 강촌 김유정역 레일바이크도 타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당연한 듯 삼척이란 답이 돌아왔다. 길이(시간)과 재미 면에서 단연 삼척이 훨씬 낫다. 그래서 2년 전에 이어 올해 또 삼척을 휴가 일정에 포함시켜 준비했었다.
2년 전에 탔을 때는 작은 아이가 아직 어려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았었다. 그리고 큰 아이도 지금 보다는 어렸기에 힘을 충분히 내지 못했다. 올해는 두 딸들이 열심히 페달을 돌리니, 나는 거의 힘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올해는 유독 앞쪽에서 속력을 내지 못했다. 속력을 좀 내고 달려야 재미가 있는데, 마치 연휴때 고속도로에 차들이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레일바이크 들이 멈춰선 채 한 참을 기다려 조금 움직이고, 또 조금 가다가 멈춰 한참을 기다리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암튼 그날 큰 아이가 몇 년전에 갔던 용문 여행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아직도 그때 용문 역 근처에서 먹었던 막국수 맛을 못 잊고 있었다. 또 먹고 싶다고 다시 가보자고 했다. 비록 레일바이크 노선은 삼척이 더 재밌지만, 레일바이크를 타러 놀러갔던 여행지로서의 기억은 용문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것 처럼 느꼈다. 과연 그 식당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때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이는 스스로 그 맛에 대한 환상을 심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중에 다시 가서 먹어보면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느 주말 아침 느닷없이 아빠가 짧은 여행을 가자며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갔던 그 여행이 인상 깊었기에, 긴 시간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서 처음 먹었던 음식인 그 막국수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을 듣고 또 하나 궁금했던 건, 과연 언제까지 아이가 그 막국수 맛을 기억할 것인가였다.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고, 삶에 지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문득 아빠랑 함께 여행가서 먹었던 그 막국수 맛을 떠올릴까? 어쩌면 내 나이쯤 되어서 아빠에 대한 그림움과 함께 그 막국수를 떠올릴까?
사진을 뒤져보니 그 여행에서, 그 식당에서 찍어놓은 막국수 사진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식당 주인이 아이들이 먹기에는 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길래, 아예 매운 양념은 다 빼고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긴 시간 이동 끝에 꽤나 배가 고픈 상태로 막국수를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는 같은 식당에서 아이들은 한 번 더 막국수를, 나는 수육에 막거리를 마셨다. 그날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수육을 먹고 신난 작은 아이가 장난치고 웃는 모습이었다. 내 기억에는 작은 아이가 막국수도 맛있어했고, 수육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정작 큰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작은 아이는 지금은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듯 했다. 그래. 그땐 어렸지. 그 후로 몇 번을 그렇게 갑자기 아빠가 즉석으로 결정한 여행을 다녀온 것은 기억하던데, 그런 여행의 거의 처음이었던 그 여행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 궁금해지는 건, 나중에 작은 아이는 어떤 시간의 어떤 사건과 연결해서 아빠를 기억할까?
어쩌면 이번 여름 삼척에서 지낸 시간으로 아빠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우리 부모님을 기억하는지도 떠올려본다. 수많은 사건들, 시간들이 스쳐 지났다. 즐거웠던, 어쩌면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고, 서운하고 슬펐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어느 한 사건만으로 아빠를 기억하지는 않겠지. 복잡다양한 많은 시간과 사건과 감정들이 얽혀있을 것이다.
거제 출장 다녀온 일과 주말마다 이리저리 불려다닌 일과 기후위기 집회에서 있었던 일 등을 적고 싶으나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내일도 지역 축제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주말마다 일.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는 몸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구나. 아,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애들 엄마의 독일 장기 출장도 곧 다가온다. 아이들과 원없이 붙어서 지낼 수 있겠구나.
※ 오늘 밤엔 부모님과도 아이들과도 전화 통화를 해야겠다.
※※ 오랜만에 감상을 남기고 싶은 책이 생겼는데, 통 시간을 못 내고 있다.
※※※ 3달 넘게 운동도 못 하고 있다. 운동하고 싶다. 운동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