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꿈(218.236.60.25)  조회: 6797  리플수: 125  추천점수: 461  작성: 08/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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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꽃 접사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 높이를 낮추고


한 걸음 더 다가서면


몸짓에 지나지 않던 꽃들이


비로소 제게 다가와


꽃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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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 키를 치시고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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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자귀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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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까지 둘러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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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한 주도 즐거움이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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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목사님과 강청 여러분~*

 

저는 오래 심양천이라는 산골에서 탈북자들과 양치며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4일 단동 창산에 왔습니다.

곧 한국에 나갑니다. 찾아가 뵙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노트북으로 작성햇던 것입니다.

 

오늘 장산으로 옮겼습니다.


주후 2004년 8월 24일.

북한 선교의 베테랑이고 일사각오로 복음을 전하는 장산 처소장인 주순옥 전도사를 따라

장산으로 왔습니다. 내일은 중국 요녕성 동강시 공안국에 정식으로 등록하려 간답니다.


바로 우리의 앞 200미터에 흐르고 있는 압록강을 여기 사람들은 [피의 강]이라 합니다.

살기 힘든 북한 인민이 중국으로 올려고 헤엄처 오다가 힘이 부처서 그대로 가라앉거나

중국에서 인종차별에 격분하여 북한 내 조국으로 갈려고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는 이들이 그렇게도 많았고 지금도 그렇답니다.


중국의 국토는 성(도)/ 현(군)/ 시/ 향(면)/ 진(읍)/ 촌(마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머물 장산이란 곳은 인구 2,500의 동강시 장산이란 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와 어업이 주업이고 많이 가난합니다. 모두 살기가 힘들어서 젊은이들은 일을 찾아 외국으로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80%입니다. 상당히 크고 좋은 집이 18,000원(인민폐)입니다.

장산처소교회는 약 4-50명의 교인들이 출석하는 교회인데 모두 열심이 대단합니다.


저는 앞으로 단동의 처소교회 담임 전도사들의 모임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로 했고

북한에서 오는 동포들을 전도자로 훈련시켜서 재 파송하는 사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역은 약간의 협박과 이간질과 고자질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납치나 폭행도 있을 수 있는데 신중히 고려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기꺼이 자원했습니다.

저는 이 사역은 물론이고 언젠가 주순옥 전도사를 따라 북한을 왕래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포의 극심한 가난과 질병을 조금이나마 치료 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조금 오래 전부터 이 일을 감당하는데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보다 더 깊은 소원은 북한 공안 원에게 붙잡혀 가서 그들 속에서 살면서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도 사람이고 내 동포인데 70의 노인인 저를 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평양은 천국이고 지방은 어디든 지옥]같답니다. 수 많은 원조와 지원은 직접 먹여주는 것 외에는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답니다. 이는 최근의 정확한 소식입니다.


오늘 이 일의 첫 거름인 이 곳 장산으로 온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 기도하여 주십시오.

내일 공안국에 등록이 잘 되도록, 처소장 중에는 공안국원도 있다는데 무서워하지 안도록,

북한 형제들 4명을 담대한 전도자로 잘 훈련시켜 멋지게 북한으로 재 파송하도록~!!!!!


이곳은 도시입니다. 곧 PC도 설치하고, 본격적인 훈련용 전용주택도 마련키로 했습니다.

성경이 있어야 하고, 자전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의 염려와 지원과 기도가 힘입니다.

몇 일후 다시 보다 소상한 기도 제목이 될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서 강건하십시오.


2004. 8. 24

장산에서

류제창 선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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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명자나무

▲ 명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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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반 고흐 - First Steps


First steps, 1890 (Painting in Asylum at Saint-Remy, 1889~1890)

 

'첫걸음마'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와 묵묵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부모의 애정 어린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혹시 아기가 넘어질까 조급해진 아빠는 얼른 달려가 품에 안고 싶다. 하지만 애써 참는다. 설령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상처가 생겨도 냉정한 마음으로 걷게 해야 한다. 아빠는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작품 속을 살펴보면 걸음마하고 있는 자식을 부모가 바라보며 느끼는 대견함과 흐뭇함, 안타까움과 행복이 잔잔히 녹아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내민 아빠의 두 팔이 유난히 길게 뻗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식에 대한 아빠의 크나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팔과 손을 유난히 길게 강조해서 그렸다.
무릎을 굽힌 모습은 자식에게 한없이 헌신하려는 부모의 심정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며 아기를 향해 단숨에 달려가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옆에 눕혀 놓은 길다란 삽의 방향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고흐는 이렇게 표현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을 그리기 위해 단순 소재에서 치밀한 연출을 구상했다. 아빠와 아기 사이에 펼쳐진 저 텅 빈 공간, 가깝고도 먼 거리로 부모와 자식 사이를 표현했다. 단숨에 달려갈 수 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참아내야 하는,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인 사이. 이 거리 때문에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토록 안락한 가정의 행복을 마치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게 그릴 수 있을까.
불꽃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무뚝뚝하고 괴팍한 성격으로 쉽게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이런 외곬수인 고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리가 없다. 고흐는 젊었을 때 몇 번 사랑에 빠졌지만, 상대 여성들은 하나같이 고흐의 진심을 외면했다. 결혼의 부푼 꿈이 꺾인 고흐는 여자와는 인연이 없다고 체념을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흐의 ‘걸음마’ 작품은 이러한 고흐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외톨이가 된 고흐는 그림 속의 아내와 아이를 가족으로 삼아 쓸쓸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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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소박한 마음으로 봄을 알리는 '보춘화(報春花)'

▲ 보춘화-춘란
ⓒ2004 이선희
보춘화(報春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라 하여 춘란(春蘭)이라고도 합니다. 난은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잎 선이 그리는 넉넉한 자태와 맑고 청아한 향기를 갖기에 선인들에게서 사군자 중의 하나로 분류되었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꼭 보고 싶지만 야생의 상태에서 볼 수 없는 꽃이 있습니다. 발품을 덜 팔아서 그렇기도 하고, 아직은 보여줄 때가 아니라고 꼭꼭 숨어있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이 말하듯 '임자가 따로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누군 보고, 누군 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마음 아픈 것은 흔하디 흔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뽑혀져 우리에게서 멀어진 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해 드리는 보춘화입니다.

불과 삼 년 전만 해도 저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디에 보춘화가 지천에 깔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그 곳을 서너 번 찾아갔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가만히 두면 지천에 피어있을 꽃들을 괴롭히고, 잠시 소유하다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2004 김민수
보춘화의 꽃말은 '소박한 마음'입니다. 보춘화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티가 나고 준수한 데다가 국수발같이 실한 뿌리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그 생명력이 끈질길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외향적으로는 귀공자 같으면서도 그 내면에는 소박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서민들 같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보춘화는 관상적인 가치 이외에 약으로 쓰기도 한답니다. 꽃을 차로 다려 마시기도 하고 뿌리나 잎을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몸의 기운을 다스리고 피를 잘 돌게 하며 눈을 밝게 하는 등 여러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군자(四君子)는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의 총칭이며, 이 4가지가 초목이나 꽃 중에서도 기품 있고 고결한 군자와 같다 해서 붙여진 호칭입니다. 매·난·국·죽의 순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순서에 맞추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고고한 품격과 향을 품고 있는 매화,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다가 꽃을 피워 깊고 그윽한 높은 인격의 향을 풍기는 아름다운 난초, 늦가을 서리 속에 피어 더없이 아름다운 향을 뽐내며 늦가을 정취를 더해주는 지조 높은 국화, 추운 겨울에도 그 푸름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인 것이죠.

ⓒ2004 김민수
난(蘭)에 관한 시하면 고교시절 외우고 또 외웠던 가람 이병기 님의 '난초'라는 시조가 떠오릅니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제주오일장에 갔더니 꽃집마다 보춘화가 지천이었습니다. 꽃대까지 올라온 춘란 서너 촉이 불과 이천원이니 야생의 상태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 서너촉을 사왔습니다. 화분 두 군데 나눠 심어 하나는 지인에게 선물을 하고 하나는 춘란의 자생상태와 비슷한 곳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두었는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바람이 심하게 불어 연약한 꽃대가 다 부러질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거실로 들여왔는데 이게 실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이파리며 꽃이며 전부 축 늘어졌습니다. 춘란을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를 해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밖에 내어놓으니 사흘이 못되어 다시 꼿꼿하게 이파리를 세웁니다. 참 고맙습니다.

ⓒ2004 김민수
그런데 난 한 촉에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것이 있고 이것도 모자라 한 촉에 1억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대략 작은 난 화분에 서너촉이 한 작품을 이루니 족히 화분 하나에 몇 억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독점이나 이런 식의 꽃 사랑은 소유하고 독점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춘란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소박합니다.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봄을 알려줍니다. 풍족함으로 자신의 생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가운데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더하고, 삶을 강인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 그 사람들이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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