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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섬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진도(珍島) -

진도는 정이 붙은 섬이더라
진도는 정이 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더라
진도는 정이 흐르는 흙이요 물이요 산이요 들이요
개울이요 집들이요 마을들이요 농토들이요
정이 출렁거리는 바다에 싸인 섬이더라

- 조병화 시 ‘나도 이곳에 살고 싶어라’ 중에서 -

진도는 섬이다. 진도대교를 건너야만 갈 수 있다. 이 다리 덕분에, 진도가 섬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는다. 해안도로를 달리지 않는 한, 섬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차안에서는 바다냄새가 맡아지지 않으니 더더욱 그런 모양이다.



진도여행의 시작은 진도대교에서 시작한다. 진도대교를 한눈에 보려면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바다의 폭은 대략 300m 내외. 남해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이 해협을 울돌목이라 부른다. 이순신 장군의 그 유명한 명량해전의 현장이다. 물살은 거칠고 사납다. 흰 갈기를 휘날리는 물살에선 눈보라 소리가 난다. 현대식 기선들도 이 물살을 거슬러서는 나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진도대교를 지나면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펼쳐진다. 여기서 지산면 세방리까지 10㎞미만의 거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짧은 거리지만 몇 차례 차를 세우고 절경에 취해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왼쪽에 무성한 숲을 두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풍경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이국적인 정취까지 풍긴다. 특히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은 장관 그 자체다.

일몰로 유명한 곳은 세방리. 진도 앞바다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생김새도 제각각인 올망졸망한 섬들이 해무에 지워졌다 불쑥 나타나곤 한다. 이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떨어지는 낙조가 신비롭다. 떨어지는 낙조를 보고 있노라면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나를 두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섬 사이사이로 조금씩 몸을 낮추고 있는 해를 보면서 진도아리랑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진도는 땀이 기름지기로 유명하다. 한 해 농사를 지어 삼 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겨울에도 대파, 배추, 무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튼실하게 자라고, 봄에는 들판이 온통 보리밭으로 물결을 춘다. 바닷가를 끼고 있어 사시사철 해산물이 풍부하고, 진도 특산 홍주는 여행객의 군침을 삼키게 한다. 예전에는 밭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일하는 아낙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날은 잘못 택한 탓인지 도통 밭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볼 수가 없다. 인근 촌부에게 물어보니 농사가 기계화되고 노래방이 들어서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아, 여기까지 자본문명이 침투해 옛것을 뺏어 갔구나” 부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을 터. 그렇게 장강(장강)의 물은 계속 흘러갈 수밖에.

차를 운림산방으로 돌렸다. 운림산방은 진도 여행의 백미이자, 남도 화풍의 정신적 근원지다. 추사와 초의선사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해남 윤씨 집안의 윤두서 화첩을 보고 그림 공부를 했던 소치 허련이 37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소치는 당대의 대학자인 추사 김정희로부터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 라는 극찬을 들었던 화가. 그는 50세 되던 1857년에 귀향하여 작은 초가집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고독을 마주보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의 운림산방은 옛 멋이 없다. 집 앞은 너무나도 잘 꾸며놓았고,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변했으며, 그 옆으로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단출한 원형에서 자연과 벗삼아 삶을 유유자적했던 선인들의 생각을 후손들이 저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대신 집 앞 연못이 사람의 시선을 자꾸 끈다. 쌍계사와 이웃해 ㄷ자로 지은 집 앞에는 흰 수련이 핀 연못이 놓여있고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는 배롱나무가 훌륭하게 자라나 운치가 있다.

진도는 여행객에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소설가 김훈은 “내 보편적 고향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고 칭송했다. 진도의 신명에 홀려 천릿길을 오르내린 지 9년째 접어든 사진작가 허용무씨는 “진도는 한반도의 엄지발가락 같은 섬이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앞쪽으로 내밀어진 땅”이라고 했다.

정겹고 야트막한 산과 그 산허리를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싸고도는 바다. 푸르름을 더해 가는 들과 기름진 황토, 그리고 점점이 박힌 초여름 들꽃들. 그 곳이 진도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영산강하구언→삼호면 용앙삼거리(49번 지방도)→금호방조제→해남 문내(18번 국도)→진도대교→진도 작성 날짜 : 200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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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07-1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도에 입찰보러가던 생각납니까? 나는 그날 운림산방엘 가고 싶었는데 무식한? 노가다사장들이 소치의 이야기를 어찌 알겠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진도를 그냥 떠나왔지요. 맘만 애가 탔지요. 코드가 같어야 한다니까. 코드가. 젠장 코드라고.

청포도사랑 2004-07-1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화가난다오!
아침부터 출발해서 오후 4시에야 점심먹고
그~먼길을 되돌아 올때 밤길에 초행에 정말 긴장 되었지요!!!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