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6.28을 아시나요?
출처 I 냉정과 열정 사이 > 최민식- 인간
< 6.28을 아시나요 ? >
- 6.25도 모르는 세상인데 6.28을 아냐고 ? -
전에는 6.28도 있었고, 6.28이 되면 무슨 이야기도 신문에 나오더니 이제는 정말 역사 속에 파 묻어버린 이야기가 되었다. 남의 나라 6.28을 알고 이야기해도 우리나라에 있었던 6.28은 모르고들 있다.
1950년 6월 25일, 나는 통일이 되는 줄 알었다. 공산군도 몰랐고 38선이 묺어졌다고 하니 그러면 통일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철없는 국민학교 5학년때 이야기다.
6월 28일, 한강물은 흙탕물로 넘실거렸다. 언제 비가 왔었는지 모르나 그렇게 기억된다.
한강은 매년 원효로를 잠기게 했고 우리 집은 옛날 할아버지의 별장이였던 관계로 집이 좀 높고 한강물이 잘 보였다.
그날 6월 28일날 아침, 우리집에 손님 한분이 찾어 왔다. 내가 2학년때 담임 이시던 김○○ 선생님이였다. 이 선생님은 이북에 고향이 계신 분으로 월남하여 서울에서 결혼도 하시고 사셨는데 6.25전쟁이 나고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니까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사모님은 친정으로 보내고 선생님은 우리집으로 피신을 온 터였다.
그 당시는 완고한 집안이라고 하나 한때 선생님이였던분이 위기에 빠지셨다고하니 그럼 저희 집에 계시라고 하였는데 저녁때가 되니 불안하셨는지 댁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북한공산군이 서울을 진주하고 학교엘 나오라고하여 학교에도 다니고 무슨 무슨 노래도 배우고 하다가 폭격이 심해지고 해서 외가집으로 어디로 피난을 했다.
그 당시에는 폭탄을 손으로 집어던지는지 한강 다리를 끊으려고 던지는 폭탄이 용산구 일대가 온통 쑥대밭이 되기도 했다.
우리 집도 밑에 재목점으로 세준 그 터에 시한 폭탄이 떨어져 피난을 갔다가 돌아와 보니 직경 5.60cm나 되는 돌덩이가 한개는 안채 지붕위에, 두개는 마당에, 또 두개는 사랑 지붕위에 또 한개는 사랑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 - 김○○선생님은 이북에서 월남해서 온 원죄?때문에 무슨 무슨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험을 모면을 했는데 서울이 회복되고 나서 부역죄로 또 잡혀들어가 고생을 하게 되었다.
더 비극적인것은 그런 일때문에 이혼까지 당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우리 5학년 담임선생님이던 홍○○선생님은 김선생님의 손위 처남이였는데 김선생님이 부역한 일을 용서할 수 없다고 이혼을 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다. 홍선생님은 그리고 일약 군문에 자원하여 어느날 육군 대위가 되어 돌아 온것을 뵐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김선생님이 이혼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가 친일을 했느니 부역을 했느니 하면 좀 동정이 생긴다. 6.25 당시 서울에 있던 사람들, 고관 대작이 아니면 전부 서울에 있었는데 과연 이 어른들이 부역을 안하고 숨었던 분이 몇이나 될지 모른다. 민초들은 매일 끌려나가 끊어진 한강다리를 보수한답시고 잡혀 나갔고 우리들은 겁 먹은채 학교에 나가 무슨 장군님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 모두가 엄밀하게 말하면 부역이다.
6.28 ! 서울이 적에게 함락당한 날이다. 그리고 우리의 비극도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비극은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혼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고 가족이 뭉그러진 사람도 있고 풍지박산된 가족도 있다.
이제는 적에게 적개심을 갖으면 안되게 가르쳐야 한다는 퍼런? 기와집 어느분의 말씀이 보도되는 그런 때이다. 그래서 서해 교전으로 목숨을 바친 윤영하 소령등 6명의 희생은 그져 가족만의 비극인양 높은 분들은 추도식에 나타나지도 않고 그 가족들은 이런 놈의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이민을 기획한단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 저녁 놀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6.25보다 6.28이 더 가슴에 닿는 날이기도 하다.
한강다리가 폭격 당하던날, 그 폭탄이 터지는 소리는 끔찍했고 사면은 온통 깜깜한채로 몇시간?을 암흑속에서 엎드려서, 엄마 손, 동생 손을 잡은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 검은 연기가, 화약 냄새 가득한 연기가 살어지도록 있었던 기억.
집안은 몇십년 묶은 굴뚝에서 떨어져 나간 끄림으로 해서 화약 냄새에 섞여 메케했고 서서히 사러지는 검은 연기가 하얀 연기로 변해질때 얼굴은 온통 시꺼멓고 우리 모두는 공포와 끝간데 없는 불안으로 짐을 꾸려 시내에 사시던 외가댁으로 피난을 갔다. 거기도 근처에 폭격이 있자 길 건너 편 이모한테로, 그곳엔 또 이모댁 시집 친척까지 얽히고 설켜 적도 3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모두는 모두에게 의지하고 살었다. 그때 이종형은 날라온 파편을 맞어 팔에 박히고 또 누구는 다리에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면 누구는 구급함에서 약을 꺼내와 치료를 해주고 붕대를 감어주고......
9.28은 그런 사연을 뒤로하고 찾어 왔다.
6.28을 아십니까? 그럼 6.25는 아십니까? 그러면 2002년 6월 29일에 있었던 서해 교전은 아십니까?
주적에게 적개심을 가져서는 안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