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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사람은, 그 호오와 상관 없이 이 작가의 책 한 권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이 작가의 시간은 늘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무시하고 지나가기가 더 힘든 작가기도 하다.

  나 역시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어 이후 여러 작품을 접했다. 이 작가는 워낙 다작하는 작가답게(?) 작품별로 편차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흡입력만은 굉장하다. 일단 한 번 이 작가의 책을 잡으면 놓기 쉽지 않다. 몰입까지 걸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이 책을 막상 잡아보면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되지만, 그 두께가 무색하리만치 빨리 읽힌다. 일단 한 챕터가 시작되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잠들기 전에 읽기 위한 책으로는 최악의 책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새벽 내 읽고 포스팅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테니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뛰어났고, 오랜만에 독서하는 즐거움을 흠뻑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추리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지만, 이 책은 추리소설적인 요소는 없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현대판 동화라고 해도 될까? 고아원인 '환광원'과 이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기 쉽다고 이야기가 쉬운 것은 아니어서, 여기에는 좀도둑 이야기, 올림픽을 앞두고 갈등하는 선수 이야기, 아무리 해도 뜨지 못하는 가수 이야기, 호스티스를 하려는 여자아이 이야기, 야반도주를 앞두고 있는 소년 이야기 등이 있다. 이야기는 따스한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들은 차갑도록 현실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깊이 인상에 남은 이야기는 네 번째 이야기인 '묵도는 비틀즈로'였다. 비틀즈가 일본에 내한하던 때, 그것을 보며 눈물까지 글썽이던 사촌형의 영향으로 고스케는 비틀즈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다. 형에게 이렇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 그룹에 대한 호기심으로 듣게 된 음반은 고스케를 흠뻑 빠지게 만들었고, 이후 고스케는 비틀즈의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고스케는 어느 덧 야반도주를 앞두게 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나미야 잡화점 고민 우체통에 편지로 써서 넣게 된다.

  이 이야기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건, 고스케가 야반도주를 하루 앞두고 아버지를 졸라 본 영화, Let it be와 비틀즈 해체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Let it be를 보는 고스케의 감정들의 묘사는 한 줄 한 줄 가만히 줄을 그어놓고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그 영화를 보면 비틀즈 해체의 이유를 알게 된대' -- 친구들은 영화에 대해 그렇게 떠들었다.

자막을 열심히 눈으로 따라잡았지만 어느 누구의 진심도 읽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감지되는 것은 있었다. 마음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도 직접 다투거나 하지는 않는다. 연주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네 사람은 눈앞에 덜어진 과제를 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창조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들 이미 알고 있다....... 그런 식으로 보였다.(중략) , 등으로 노래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 연주에서 열정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비틀스로서는 마지막 라이브 공연인데도 맴버 어느 누구도 감상에 젖는 기색은 없는 것 같았다.

(중략) 들려오는 말로는 이 영화를 보면 비틀스가 해체한 이유를 알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서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실질적으로 이미 끝나버린 비틀스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고스케는 그걸 알고 싶었다.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pp.268-269

 보면서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진한 회한같은 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나도 알고 싶다. 나도 고스케처럼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대개 이별의 순간이 오고서야, 그 마음이 끊기고 나서야 뒤늦게 마음이 끊긴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미 끊어진 조각을 붙들고 무력하게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지만,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고스케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고아원에 들어가고, 목공업자로 성공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낸다. 이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까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될 때 보게 된 같은 장면은 고스케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굉장히 뻔한, 반전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반전이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쩐지 멍해져서 잠시 책장을 덮고 감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따지자고 보면 죄다 비현실 투성이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소개한 고스케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야반도주하는 도중 도망쳐버린 소년이 나중에 기술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도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걸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읽어갈수록 느끼게 되는 건, 결국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 바로 그것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진정한 기적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쉬워보이는 일, 들어주는 일 그 자체가 기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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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8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이 좋은 생각을 부르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봐요...

이카 2013-02-19 08:28   좋아요 0 | URL
맞는 이야기입니다^^ 늘 좋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어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 처음 이 소설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띠지와 이 책의 선전문구 때문이었다. '바텐더 vs 5선 의원'이나, 책 뒷표지에 적힌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어서는 안 돼!'라는 문구는 내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었다. 나 역시 착한 사람이 손해보는 세상은 싫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손해를 본다. 적어도 소설 속에서만이라도 좋으니까 통쾌한 소설을 보고 싶었다. 박씨부인전같은 거 말이다. 책 후미를 보면 작가도 그런 작품을 쓰려고 한 것 같은데, 다 읽고 난 뒤의 이 찝찝함은 뭘까.

  나는 애초에 이 소설을 읽을 때 어떤 기대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시민 판타지 같은 거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보통 사람드르이 복수극'이라니 얼마나 구미 당기는 말인가! 차마 대적해보기도 힘들 것 같은 거대한 조직이라거나 세력에 맞서는 개인의 승리같은 거 말이다. 그래, 그러니까 '에린 브로코비치' 같은 거.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나의 기대에 제대로 어긋난다. 물론, 나는 소심한 소인배지만, 작품이 내 기대와 다르다고 화를 내는 그런 종류의 소인배는 아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작품은 영 찝찝하다. 애초에 사건의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이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준페이는 어느 날, 뺑소니 사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뺑소니 사건의 범인이라 자수한 사람은 자신이 목격한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준페이는 이 사건의 진범을 찾아 협박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 덕(?)에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이 얽히고 섥힌다. 잠깐, 준페이의 행동 역시 범죄 아냐? 소설 속에서 준페이 스스로 '우리의 행동도 범죄 아니냐'는 말을 언급한다만, 그럼에도 준페이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벌도 받지 않는다. 도리어 뺑소니 사건의 진범의 처지를 알게 된 준페이는 그를 감싸주려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 그 사람은 준페이를 도와주기도 하고... 이야기가 뭐 이래 싶게,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데, 나는 그게 참 마음에 들지 않더랬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저거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로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일을 강요한다. 저 말로 작은 비리를 덮고, 저 말로 작은 부정에는 눈을 감아야 하고, 상사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지금은 나도 사회 물이 적잖이 들었는지,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눈 감고 귀 막고 일하고 있다만, 아직도 머리까지 다 바꾸지 못했는지 덜 막힌 입에서는 불평불만이 궁시렁궁시렁 새어나오곤 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까지 내가 이런 '좋은 게 좋은 거'를 봐야 해? 준페이와 도모키의 협박은 유야무야 없던 일처럼 되는 거고, 결국 미나토 게이지의 형은 (본인이 선택한 거라고는 해도) 아무런 죄도 없이 교도소에 있고, 미나토 게이지 본인은 부활 무대를 제대로 치뤄내고,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도모카는 미나토를 미워하지도 않고? 뭐가 이래.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저렇게 덮어놓은 사건들은 나중에 곪아들어가 악취를 뿜으며 터져나올 것이다. 결국, 죄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축제에 휩쓸려 취한 것일 뿐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언젠가 같은 죄는 반복된다. 뺑소니를 보고 순간적으로 협박할 생각을 가진 그 사람. 생각 뿐이 아니라 그걸 실제로 옮기기까지 한 그 사람 말이다. 세상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옳게 된다고, 오히려 자신이 옳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더 옳은 사람이겠지만, 옳지 못한 사람이 된다며, '그래서'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그래서' 그 의심을 멈추고 옳다고 주장하며 전진할 뿐이다.

  .....후련한 이야기에는 독도 들어있는디(p.545)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억울할지 몰라도 아주 작은 것까지 꼬투리를 잡힐 게 없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결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람이 만드는 세상은 이전과 같은 세상일 뿐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남는 사건은 야쿠자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도산하자 그 회사를 또 다른 야쿠자 그룹이 싸게 인수한 사건, 아주 작은 그 사건이다. 착한 사람이 손해보는 세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이 책에는 착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손해를 보지 않더라. 아니, 착하지 않아서 손해보지 않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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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이 되었습니다. 2월이 되면, 이제 곧 봄이 오겠다는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번 겨울은 살을 에는 듯한 혹한도, 겨울같지 않은 따스함도 공존하던 계절이었던 것 같네요. 겨울의 절정은 곧 겨울의 끝이 나가온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런 시점에서, 주목 신간을 꼽아보고자 합니다.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 김진준 (옮긴이) | 문학동네(출판)

 

 : 이미 잘 알려진 소설입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의 롤리타에 눈이 가는 이유는 뭘까요.표지에 실릴 사진을 공모하기도 하는 등, 출간 전부터 큰 관심을 받던 소설 롤리타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자연스레 이 책에 시선이 쏠리게 되네요. 이런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누구나 홀로 죽는다

- 한스 팔라다 (지은이) | 이수연 (옮긴이) | 씨네21북스

  : 이 책은 베를린의 한 노동자 부부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저질렀던 '불법 행위'에 관한 게슈타포의 기록을 바탕으로 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에서 아들이 무의미한 죽임을 당하자, 노동자 부부 오토와 안나 크방엘은 나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엽서에 반히틀러 메시지를 적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건물에 놓아두는 것이었지만, 2년 동안 뿌린 276통의 엽서는 18통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게슈타포의 손으로 들어갔고, 결국 부부는 투옥되고 맙니다. 그들은 고작 18통의 편지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된 셈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의 일은 늘 제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인간성은 늘 한숨과 경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거든요. 아무리 이 시기를 그린 책을 많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하네요.

 

끝까지 연기하라

- 로버트 고다드 (지은이) | 김송현정 (옮긴이) | 검은숲

 : 책을 직접 보지 않고 인터넷 상으로 책 고르기를 할 때 줄거리만큼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바로 관련 리뷰입니다. 그렇기에 알라딘도 TTB라거나 Thanks to라거나 이런 신간평가단을 운영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은 줄거리 자체는 딱히 끌리지 않습니다. 표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만, 줄거리는 아주 많이 흥미롭지는 않아요. 그런데 리뷰들을 보니 이거,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일 것 같은 기운이 물씬물씬 풍깁니다. 이 책에 달린 리뷰들의 평이 상당히 좋은데다가, 그 평들이 또 상당히 괜찮아서, 믿고 기꺼이 추천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절망노트

- 우타노 쇼고 (지은이) | 정경진 (옮긴이) | 한즈미디어

 : 여기 왕따를 당하고 있는 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그 것을 기록하고, 그 일기를 '절망노트'라 명명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신'을 만난 후부터, 아이가 노트에 적은 사람들이 하나 둘 죽기 시작합니다. 경찰은 그 모든 살인에 얽혀 있는 아이를 의심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에 어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만으로도 눈이 가는 작품이지만, 소재 역시 눈이 갑니다. 왕따는 이미 흔한 주제일지 몰라도, 우리가 왕따의 존재에 익숙해진 것이지,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그 사실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경우

-  미나토 가나에 (지은이) | 김선영 (옮긴이) | 비채

 :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익숙해진 '교차 서술' 방식을 아직도 구사하고 있다는 건, 이젠 놀람을 넘어 '이게 작가의 방식이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합니다. 이 소설 역시 두 여자의 서술이 교차되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밝혀진다고 합니다.

 

 적어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은 흡입력만은 보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야행관람차나 왕복서신에서 보여준, 인간에의 이해가 이 소설에서도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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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 -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샬럿 로건 지음, 홍현숙 옮김 / 세계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이미 유명한,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온 라이프보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퍽 의아했던 게, 이 소재로 씌여진 소설이 지금까지 과연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에피소드로 나오기 전에도, 이미 이 사건은 유명했고, 이와 유사한 사건 역시 있었으니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972년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 사고로 조난당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인육을 먹고 살아남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최근에 개봉한 '라이프 오브 파이'도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파이가 식인을 했을지 모른다는 암시 역시 깔려있다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이 책에 직접적인 모티브를 준 사건은 그 유명한 1884년의 미뇨네트 호 사건이다. 4명의 영국 선원이 구명보트에 올라탄 채 남대서양을 표류하고 있었다. 미뇨네트호는 폭풍에 침몰했고, 통조림 두 캔 뿐 마실 물도 없이 표류하던 네 명은 가장 어리고 약했던 리처드 파커를 죽여서 먹으며 생을 유지했고, 구조될 수 있었다는 사건이다.

  이미 독자는 이 사실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워낙 사건 자체가 흥미롭고, 작가의 필력이 괜찮기 때문에 책장은 쉬이 넘어간다. 나처럼 이 책을 자기 전에 잡으면 졸음과 애써 싸워가며 밤새 읽어버릴 수도 있겠다. 특히, 새벽에 은근한 배고픔과 겨울의 추위까지 겹치면 묘하게 배 안의 상황이 은근히 실감이 나며 더욱 책 속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워낙 유명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보니,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은 별로 없다. 남은 것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 정도인데, 이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를 기대해 볼 법도 하다. 워낙 소재 자체가 흥미롭다보니, 그 덕을 본 것도 많지만,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소재로 책을 끝까지 흥미롭게 끌고가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재앙-혼란-공포 그리고 분노 - 진실, 이렇게 네 챕터로 되어 있는데, 특히 3번째 챕터인 공포 그리고 분노에서 마지막 챕터인 진실로 넘어가며 의도적으로 시점을 과거에서 현재로 바꾸며 궁금증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은 '이것봐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처녀작이어서 욕심을 낼 법도 한데, 그것을 잘 절제하는 모습에는 슬쩍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실화 자체가 자극적이다보니, 그 과정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갈 법도 한데, 식인 사건을 제비뽑기를 통한 살인 사건으로 의도적으로 약화(?)시킨 것 역시 이 작가의 앞으로를 기대되게 만드는 점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호는 침몰했고, 구명보트에 탄 39명의 사람은 이제 생존을 위한 운명 공동체가 된다. 당연한 수순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될수록,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러 유형으로 갈리게 된다. 이 중에서도 처음부터 강력한 리더쉽을 자랑하던 선원 하디, 끝까지 신앙을 이야기하던 부제와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던 싱클레어, 하디와 대립하며, 입으로는 도덕을 말하고 자상해 보이지만, 실은 냉정하고 차가웠던 그랜트 부인과 해나, 나약해서 늘 울부짖고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던 메리 앤과 마리아, 아들만 보호하려고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안야 정도가 중심 인물이라 하겠다. 빼어난 미모로 좋은 남편감을 잡아 결혼(?)하여 뉴욕으로 가던 주인공은 사건 한 가운데서 이 모든 사람들을 지켜보며, 이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 소설은 두 가지 면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주인공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통해 보게 되는 인간의 면면들을 보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굉장히 흥미롭다. 특히 이후 권력의 양 축을 형성하는 하디와 그랜트부인의 대립이 본격화하면 할 수록, 사람들의 개성은 도드라진다.(주로 나쁜 의미로 그렇다) 사실 여기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생존'이다. 그것도 모두 함께 생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만이 생존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3~4명도 아니고, 39명이나 되는 인원이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아 살아남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되며,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동들인 듯 싶다. 하디는 객관적 수치/자료를 들이밀며 냉혹해 보일만큼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리더쉽을 보여주고, 그에 비해 그랜트 부인은 보다 영악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위안을 주고, 여자/남자 대립을 은근히 조장하고, 여론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강조하며 사람들에게 빌붙는 메리 앤이나 마리아의 모습은 짜증스럽기는 해도,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가정 하에선은 효과적일 수 있을 것도 같다.(읽으면서 내내 짜증스러워, 주인공이 메리 앤인가 마리아에게 '지금 죽는 게 낫다'고 속삭일 떄는 나도 모르게 동조했지만...) 주인공 역시 한없이 순한 피해자만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돈 많은 남자에게 접근해서 남자를 낚아 채 결혼을 하고, 결혼했다는 증거를 확보한 뒤 화려한 생활을 즐기려고 했던 사람이며, 오히려 보트 내에서 가장 영악했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가능한 눈에 띄지 않음으로써 보트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출륭하게 생존해냈다.

  그런데 오히려 주인공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면 생각해 볼 수록, 이 소설의 텍스트를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이후 재판을 받게 되면서 과거 라이프보트 사건을 회상하여 쓰는 기록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재판과정에서 강해 보이던 대령마저도 (주인공 입장에서는) 완전히 엉뚱한 증언을 확신에 차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장 주인공과 주요 인물들간의 증언도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강렬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극한 상황에서의 기억은 왜곡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된다. 따라서 주인공의 '서술'이라는 형식을 빌고 있는 한, 라이프보트 내의 사건은 절대 객관적일 수가 없다. 게다가 주인공은 약혼녀까지 있는 남자를 꼬시기 위해 일부러 그 며칠 동안 굽이 부러진 구두를 신고 그 남자 주변을 얼쩡거렸을 정도로 영악하고 머리가 좋은 여자이다.(물론, 처음에는 돈을 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했어도 나중에는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글쎄다) 메리 앤이 줄기차게 주장한대로, 주인공은 정말로 남편을 통해 돈을 주고 라이프보트에 탑승했을 수도 있고, 주인공은 자고 있었다고 주장한 그 때 정말로 깨어 있었을 수도 있다. 주인공에 비하면 끝까지 아무런 연기나 연출 없이 강한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결국 유죄 판정을 받고 마는 그랜트 부인이나 해나 부인의 모습에서 일말의 진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할 정도다.

  결국 이 소설은 어떤 것이 진실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어찌되었거나, 하디는 의도적으로 살해되었고, 일부는 생존했으며, 또 일부는 죽었다.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감춘 부분은 끝내 드러나지 않고, 드러낸 부분에서도 모호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장이 엇갈리는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엇갈려 있다.


 "저 없이 선생님이 답을 찾으셔야 할 거예요."
그는 내 말에 좌절한 나머지, 만년필을 너무 세게 내리눌러서 그가 강박적으로 메모를 했던 작은 공책에 큼직한 잉크 얼룩을 만들고 말았다. 다행히 콜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남아 있었기에, 모든 것을 명확히 밝히고 싶어하는 그의 욕망과 순진함, 그리고 모든 것을 알려고 드는 어린아이 같은 욕구를 큰 소리로 비웃지는 않았다. - p.333

 

 이 소설의 결말은 어찌보면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결말 이후의 생각은 결코 단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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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본적으로 싸움이나 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지, 온라인 상에서는 이야기를 아끼는 편이다.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하면, 쉽게 감정이 격해지고, 말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주말에 대한 예의를 지킨답시고 어제 밤새도록 책을 읽고 새벽에서야 잠들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알라딘 서재에서 또 난리가(?) 났다.(라고는 하지만, 평소보다 관련 글이 조금 많은 정도) 어찌된 일인가 찾아보니, 한기호 소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khhan21/110157930257)



  솔직히 관련 글까지 쓴 내게 이 발언은 상당히 기분 나쁜 발언이다. 이 사람이 혹시 말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어 이 사람 블로그 목록을 띄워보니, 이 사람, 상당히 호전적이다. 어떤 '쓰레기들의 합창회’, 외톨이가 되어가는 알라딘, 알라딘에 대한 출판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알라딘은 강도이자 양아치인가?, 교보문고의 ‘지식과 지혜의 샘’은 ‘악취 나는 오물 구덩이’에 불과하다, 막나가는 교보문고 -- 등등. 개인적으로 아무리 일개 네티즌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어떤 발언에 대해 조롱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좋게 보지 않는다. 하물며, 무슨 소장 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이러고 있는 것은 상당히 보기 안 좋다. 아, 말투로만 비판을 하는 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될 수 있기에 잠깐 자제하고 글을 읽다보니, 이 사람이 논리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사람을 호도한다는 것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서 언급한 중고서점에 대해서는 또다시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접어두도록 한다.

  이미 링크한 '들어가보지도 않았는데, 알라딘 알바들 다수가 활동' 운운부터 이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화가 나고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아무리 모 연예인이 기분 나쁘고 자기 눈에 쓰레기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말은 연예인에 한정되어야 하지, 그 팬들까지 조롱과 비난을 퍼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직 정가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나, 알라딘을 탈퇴하지 않고 꾸준히 책을 사고, 활동하는 사람까지 '알바'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알라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독자들에 대한 공격이고, 그 독자들의 선택에 대한 조롱이다. 심지어 이를 지적하는 댓글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진영논리'라 부른다. 진영논리 - 내가 속한 진영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객관성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같은 편이라는 것만으로 받아들이며, 대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논리성/객관성이 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그것이 상대방 진영의 주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반박하는 행위인 이 '진영논리'는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 정도 되면 링크한 글 말미에 '알라딘에서 일하는 노동자' 운운은 그저 가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서도 댓글에 '아직도 알라딘 탈퇴 안 했느냐'라고 하거나, 공공연히 '출판사들을 돌면서 알라딘에 책을 공급하지 말라고 하는 중이다'라고 한다거나, '적을 많이 만드는 것도 내 운명'이라며 피해자인 양 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벽'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알라딘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알라딘 알바'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다른 댓글에는 '미안하다'는 투의 댓글을 달긴 했지만, 27일 오후 2시56분 현재, 아직도 글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의 뉴스 중 일부다. 이것이 아마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내가 출판사들이 알라딘에게 출고 정지를 한 게 일종의 '파업선언'과 같은 행위가 아니라, 강자에게 약하고 (상대적) 약자에게는 강한 횡포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교*같은 온/오프라인 1위 업계가 알라딘과 같은 행동을 했어도 당당하게 보이콧 할 수 있었겠는가. 정말 그들은 독자들을 위하는 것인가. 내 눈에 알라딘을 보이콧했다는 출판사들이 생존권을 위해 투장한다기보다는 괜찮은 먹잇감이라며 일단 물고 뜯고 보는 비열한 행위로 보이는 게 단지 기분 뿐인가.

 

 뭐, 한기호라는 사람은, 이런 나도 알바로 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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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빌어요......

이카 2013-01-28 01:0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논쟁은 소모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그 소모적인 논쟁 속에 독자들은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