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이 닥치거나 책을 읽을 때에야 새롭게 떠오르는 지식들이 있다.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도 그것들 중 하나다. 저개발국가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절박한 문제인 기아에 맞서기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특별 기구를 만들고 구조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자 수가 줄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식량 공급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자본의 횡포가 제일 큰 문제라고 혀를 찰 수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떻게 라는 문제에 답하지 못한다.

우리가 기아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제공자를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기아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방법을 고안하기 위함이다. 그러자면 정치한 분석과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기아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관해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가져야 하고 그 질문에 또한 진지하게 답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적절하다.

“아빠! 우리 나라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나서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도 마구 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일 아니에요?”

의당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질문은, 하지만, 기아 문제의 한 축을 꿰뚫고 있다. 한쪽의 여유가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 비이성적인 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다대한 노력을 고민하게 한다. 아이의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아의 기원과 시장가격의 이면,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 삼림파괴와 사막화, 계속 늘어나는 도시인구, 대안의 실패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구도자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아이의 질문은 하나 같이 어른스럽고 진지하다. 그런 이유로 궁금증을 풀어내려는 아이의 지적 욕구가 전편에 걸쳐 높이 파도치고 같은 크기로 깊이 공명한다.

질문이 예사롭지 않은 터라 답 또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이런 주제의 경우 사변적으로 흐를 위험성이 없잖아 있음에도 이 책은 활동가인 저자의 이력에 힘입어 그런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해가고 있다. 저자는 ‘인도적인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의욕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사회학자이자 현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이다.

책이 소개하고 있는 중앙고원의 한 난민캠프의 사례가 가슴을 파고든다. 배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정맥주사, 비타민제, 프로테인이 충분치 않아 난민에 대해 선별작업을 실시하는데, 살아날 가망이 없는 난민들은 그 곳에서마저 배제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최근 제프리 삭스가 2015년까지 지구상의 모든 가난을 끝낼 야심찬 계획으로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극단적인 빈곤을 제거하는 데 소요될 투자비용을 추산하기 위해 6단계의 접근법을 채택하고 목표달성을 위한 총비용과 각 나라의 정부/가계/기부자들 사이에서 필요한 비용의 분담금을 계산해냈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강제 장치 없이 단순히 국가 이성에 호소하고 있어 그의 제안이 도덕적인 공감은 불러일으킬 수 있어도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아프리카 사하라 남단의 작은 국가인 부르키나소의 젊은 장교 상카라의 실험은 아프리카에 만연한 빈곤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을 만큼 실제적이었다. 인두세 폐지와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 등 개혁정책에 힘입어 부르키나파소는 4년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 가봉, 토고 등 인접 국가들에게 파급효과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프랑스를 등에 업은 정적에 의해 그가 살해됨으로써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비정한 정치 경제적 역학관계 내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국가라는 한계가 폭력적으로 관철된 결과였다.

기아 문제, 곧 넓은 의미에서 빈곤의 문제는 사실상 뾰족한 대안이 없다. 여전히 이성에 호소해야할 만큼 강제 수단도 없다. 그렇다고 손놓고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의 1명 꼴이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 인구의 36퍼센트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외면할 문제가 아니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빈곤을 공통의 관심사로 받아들이고 빈곤을 퇴치할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책무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제의 토양 위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표지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기점으로 전지국적 차원의 관심이 요구되는 각종 사안을 풀어쓴 책들의 출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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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10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푸하 2007-03-18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이 책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굶주리는 셰계>도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원인에 대한 내용이 알차게 들어있는데,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카루스 2007-03-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굶주리는 세계는 2003년에 읽었지만 제대로 읽지 못해 늘 아쉬움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푸하님의 추천에 귀가 번쩍 트입니다. 다시 꺼내 읽어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Koni 2007-03-20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단순한 듯하면서도 인간의 슬픈 현실을 지적하는 질문이네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이카루스 2007-03-2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슬픈 현실' 맞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전 '내 것'만 자주 봐 왔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아비가일 2015-04-2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읽어보고싶네요♡
 
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시와 자기계발의 만남”

삶을 기술(記述)하기 보다 함축하고 있는 시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技術)에 무게를 두고 있는 자기계발이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외에도 경우에 따라 난해할 수도 있는 시를 실제 삶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반신반의로 첫 꼭지(마침내 걸음을 옮겨야 할 때 망설이지 말라)를 닫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이물감도 있었고 그것과 같은 비중으로 호기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전자가 더 컸던 탓이리라. 시와 자기계발이 만나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독자라는 매개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투의 문장이 자주 눈에 거슬리고, 낯선 시가 주는 해독의 문제 또한 뒷덜미를 잡았다. 시가 지역과 시대의 반영이라고 하면 후자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해독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익숙지 않은 시의 선택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그것을 출판사의 문제로 보기는 힘들다. 그렇더라도 ‘어떤 저자의 책을 택해 독자에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출판사의 소관에 속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위에서 제기한 ‘낯선 시와 번역투 문장’이라는 핸디캡이 당초 이 책이 의도한 목적을 전부 폐기할 정도로 두드러진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낯선 지역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아침이 싱그러웠던 것처럼 낯선 시가 주는 독특한 심상과 그것과 어울려 보다 깊은 성찰로 인도하는 저자의 체험적 기술은 이 책이 풍기는 신선한 매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찮은 양말에 대한 파블로 네루다의 헌시(「내 양말에게 바치는 송시」)는 그 발상의 기묘함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공존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또 받는 사물에 대한 별스런(?) 진지함에 대해 전과 다른 성찰에 이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철학적 시어가 담고 있는 역설을 통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사는 현대인이 ‘각자의 삶을 지배하는 척하는 위선’을 당장 그만두도록 촉구하는 메브라나 C. 루미의 「원」은 예리한 메스가 되어 우리의 치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겨누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들여다볼 마지막 선택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위선과 같은 치명적인 고통(자기와 타인에게 끼치는 위선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위선은 독소이자 궁극적으로 고통이다) 피하는 것과 그것에 직면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고통을 직면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극복한 과거일 뿐이다. 영성이 조각처럼 빛나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어두운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그에게 밤은 빛을 담고 있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 밤은 향기로웠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어두운 밤길을 비춰줄 것이라는 기대가 그 밤을 안식하게 만들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우린 때때로 사랑을 주고받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평안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과연 그런가. 십자가의 성 요한의 밤, 곧 그의 어두운 밤은 어둠을 다루는 우리의 방식에 의문의 꼬리를 던지며, 어두움을 파괴적 심상과 연결하는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총 열 편의 시와 각각의 시에서 길어 올린 다양한 인간사와 개인적 체험이 밑그림인 철학적 성찰 위에 여러 색실로 잘 수놓아져 있다.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세세하게 일러주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와 다른 특징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성찰은 되새김을 요구한다. 때로 그것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고, 때로 비현실적이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고 점검하는 침잠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비루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질주하는 삶이 가져다 줄 승리의 기쁨도 필요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으려면 목표했던 바에 대한 성찰은 필수적이다. 이 책이 독자 모두에게 성찰의 서(書)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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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에 기대고 싶다 - 오요나의 디지털 감성 포토 에세이
오요나 지음 / 무한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그림과 글이 한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걸 잠시 밀쳐두고 맛깔스런 글이야 저자가 썼겠지, 하고 다음 생각을 하다 그만 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가 썼으니 책으로 나온 게지, 이 무슨 망발, 아니 망생각.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궁금해 얼른 책를 덮었다. 큰 글씨체는 아니지만 표지 그림 밑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저자가 쓰고 찍고 그렸다.

읽고 보는 동안 아마추어리즘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풀 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그런 것. 이 책, 그래도 희망에 기대고 싶다는 풋풋하다. 아포리즘은 눈부시고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내음은 오래도록 코끝을 간질인다.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한 휴식 같은 책. 이 책은 소개하기 보다 직접 들고 가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어차피 물속이 아닌 바에야
                      공기를 마시고 사는 생물은 모두 같은 중력을 느끼며 산다.
                      꽃잎이 얇다고 그가 가진 생의 무게를 가볍게 볼 순 없다.

 

                                                                       - 꽃잎 네 장으로 떠받친 우주

폭포수가 쏟아 내리면 잠시 자리를 피하는 법이다. 위 글을 읽고 울림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공명되어 흐르는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을 재간이 없다. 어느 누구의 생이라고 가벼이 볼 것인가. 어느새 너와 나를 가르고 지위고하를 가르는 나를 질책하는 언어로 들린다. 그 덕분에 난 오늘 침잠하기로 작정한다.

                      들리지?
                      햇살들의 즐거운 수다.

 

                                     - 즐거운 수다  

창조된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아우성이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햇살에게서 수다 소리를 들은 저자의 귀가 참 맑지 싶다. 사람 소리만 듣고 본 오늘 난 많은 것들을 잃었다. 배가 꺼져라 뛰노는 아이들 곁에 잠시 머문다.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함께 보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 하고
                      마주 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사랑입니다.
               
                                                - 좋은 풍경

이 글을 읽고 시선 처리에 부산을 떨어야 했다. 노안(老眼)을 가지고는 사물과 현상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없다. 따뜻한 시선은, 그래서, 눈을 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활짝 열지 않고는 제대로 볼 수 없다.

풀밭에 한참을 누웠다 일어났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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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서돌 직장인 멘토 시리즈
신시야 샤피로 지음, 공혜진 옮김 / 서돌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예외로 하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조금 더 나은 자리로의 이동을 꿈꾼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체적으로 업무수행능력과 인간 관계적 측면에서 두루 인정을 받고자 하는 열망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반대로 많은 현실 제약 조건을 뛰어넘으려면 그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승진자는 남다른 전략을 구사한 사람일까?

대부분의 경우 승진자는 업무수행능력에서건 인간 관계적 측면에서건 특정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사실은 그것과 다르다. 그는 ‘덫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다. ‘한정된 자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의 입장에선 덫을 설치하고 그 덫에 걸린 사람들을 우선 솎아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살아남은 자들을 대상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비용 대 효익 측면에서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덫을 쳤다고 해서 방식이 치졸하다고 탓할 일일까? 한 명을 뽑는 시험을 예로 들면 그 시험이 탁월한 사람을 단 한 명 만 뽑는다는 뜻도 있지만 모두 떨구고 나서 남은 한 명을 뽑는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후자는 덫을 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덫이라는 용어를 밀실에서 만든 복마전의 일종으로 단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같은 사물과 현상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차이가 존재하는 법이다.

인력개발팀 팀장직과 부사장직을 역임했고 현재 기업 컨설턴트로 맹활약하고 있는 저자 또한 이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기업은 생각하는 것만큼 직원에게 호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은 자사에 우호적인 직원은 어떻게든 붙들어두려고 하는 반면 기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위해를 끼칠 요소가 다분한 직원이라는 판단이 서면 기꺼이 덧을 설치해서라도 그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 문제 소지가 있는 방식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기업이 지닌 우월적인 지위를 십분 활용해서 얼마든지 직원이 제 풀이 꺾여 나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적된 노하우 또한 많다. 현직에서 수없이 그런 모습을 보았고 같은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던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직원들에게도 그들 편에서 보다 공정한 게임을 위해 조언해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더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직원들이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자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읽기에 따라 기업 순응적인 입장에서의 기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전부 수긍할 만큼 기분이 썩 내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힘겨운 싸움을 해서 그 조직을 쓰러뜨릴 요량이 아니라면 기업이 요구하는 바에 맞추는 것이 굴욕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기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기업 가치와 개인의 가치를 동일시함으로써 승진의 기회를 남보다 빨리 잡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직장 생활의 꽃은 승진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남보다 앞서는 것에 누가 탓하고 나설 수 있겠는가. 직장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섣불리 보지 마라. 이 책엔 직장인이 상식 선에서 이해하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사실이 거침없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정직을 모토로 내세우는 기업 이미지에 충실한 나머지 입찰 과정에 참여한 경쟁회사와 정직하게 승부를 겨뤄 결과적으로 수주를 따내지 못한 직원이 있다고 하면 기업이 그 직원을 어떻게 대할까? 그 직원은 기업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가치와 실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기업의 가치는 이윤 추구에 있다. 오래지 않아 그 직원은 밀려났다.

 

인사담당자에게 상사와 관계성에서 오는 곤란과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다. 직원 배치 및 재배치 과정에서 잘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가 승진 대상자가 아니라는 한에서만 유효하다. 정작 그가 승진이 임박한 사람이라면 그런 저런 상담 내용이 그에 대한 안정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에게 자신의 현재 고충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사생활까지 언급했다면 더더욱 승진의 기회는 물 건너갔다고 할 수 있다. 조직은 안정감을 디딤돌로 삼고 있다. 그것은 직원 배치에 있어서도 같은 무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기업과의 관계에서 직원은 늘 수동적인 입장에서 행동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이 점에 대해서도 언급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책상을 어떻게 사용하고 그 위에 어떤 책들을 두며 옷은 외모는 어떻게 갖춰야 하는 지, 실수나 실패를 어떻게 하면 품위 있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 호감도를 최고조로 올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한다. 시시콜콜하게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일리 있는 구석이 없지 않다. 내게 사소한 것으로 비치는 것이 타인에게는 내 전부를 규정해 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잘만 활용하면 저자의 말대로 기업을 상대로 한 전략적 지침서를 갖게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선정적이긴 하지만 책 제목처럼 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비밀 수십 가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예비 직장인 모두 두고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을 쥔 당신은 더 이상 고만고만한 상대가 아니다. 회사는 어떤 자리에든 당신을 앉히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가 내준 자리에 덥석 앉지 마라. 당신의 가치는 이미 최고조로 올랐다. 당신은 이미 칼자루를 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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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볼 만하지만 잘 받아들이기 바라는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26 13:56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 신시야 샤피로 지음, 공혜진 옮김/서돌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6일 읽은 책이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아 술술 읽혀 내려간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해봤던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보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면서 고개를 끄덕 거릴 수도 있겠다. 회사가 표방하는 가치 이면의 숨겨진 얼굴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여주는 듯 하는 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만약 그런 고발들로만 이..
 
 
 
피드백 이야기 - 사람을 움직이는 힘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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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들어 자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개인이 원자화, 파편화된 사회일수록 반대 급부적으로 이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듯하다. 소통.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인간소외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간 것 또한 그만큼 현대사회가 어떻게 소통 부재의 현실을 타파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결과일 것이다.


빚더미에 나 앉은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과 기러기 아빠의 상실감 등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소재 또한 맥락적으로는 소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의 부재는 고립감을 가져오고 고립감이 고조되면 극단적인 선택 주위를 기웃거릴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사회를 진단하는 리트머스 시약이 되기도 한다.

 『피드백 이야기』는 저자가 직장이라는 무대에 한정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우리 주인공에게 교육 명령이 떨어진다. 처음과 달리 호기심이 발동한 주인공은 강사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부하 직원과의 관계에서 그가 그동안 보여 온 의사소통의 문제를 하나둘씩 발견해 간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피드백된다. 업무 성과가 높았던 직원이 급격히 의욕을 상실해 간 이유와 타인과 다를 바 없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발견한 것은 상대방의 고통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던 자신의 과오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었다. 시선이 자신에게서 타인에게로 돌아갈수록 문제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아울러 해결책도 드러났다.


이 책에서 피드백은 업무 성과를 높이는 기제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관계 중심적 툴로 기능하는 한편 변화를 이끌어내는 무기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피드백을 잘 활용하면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직장 내 관계가 2차적 관계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하루 종일 부대껴 사는 한 관계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직장인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일은 어렵지 않다.", "관계가 문제다." 일은 아무리 많고 힘들어도 야근을 하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한번 망가진 관계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관계망이 구축되면 일의 성과는 자연스럽게 끌어올려진다는 것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특정 계층이 담당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소통의 통로 역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적극적인 소통이 살아나야 조직은 활력을 얻는다. 구성원을 생각하는 조직 문화와 소통의 문이 활짝 열린 조직 내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회사와 구성원이 공히 이기는 윈윈전략이 될 수 있다. 기계화가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사람의 중요성은 감소하지 않는 법이다. 소통의 문제에 직면한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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