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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문지혁 옮김, 노경실 글 / 가치창조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고단했다. 네덜란드의 브뤼셀, 헤이그, 앙베르와 프랑스 파리, 아를에 이르는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쫓아 그가, 몇 군데를 제외하곤 누렇게 앉은 흙먼지가 채 털리지 않은 도시풍의 구두를 신고 구부정한 허리와 앞뒤로 하릴없이 흔들리는 손에 의탁한 채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을 그 길을 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길 위로 일렁이는 짙푸른 밤하늘과 어지럽게 날리는 별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상파와 일본판화 작품의 영향으로 색채가 더욱 강렬해진 그의 그림은 햇빛이 밝게 쏟아지는 아를과 한 몸이 된지 오래인 듯 했다. 거리엔 사람들로 북적였고, 저 멀리 언덕 위로 갖가지 꽃들이 제 흥에 겨워 앞다퉈 피고 질 때도 고흐란 사내의 눈은 겨울 들목의 11월, 그것도 스산하리만치 차가운 바람이 들녘을 따라 세차게 불어닥칠 기세로 몸을 터는 늦은 가을의 짙푸른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런 탓에 그의 눈마저 짙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쏘아보는 듯한 그의 눈은 그 기세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발작과 진정이 반복되는 혼란한 생은 그가 마지막 했다고 전해지는 말 한마디에 집약적으로 모아진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것 그 자체다." 발작이 멈추면 그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시력이 약한 탓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정교하게 그려진 별빛과 달빛의 파문은 혼란한 심상의 반영이었을 것이며, 어색한 구도와 빠르게 흐르는 하늘의 움직임은 언제 다시 발작이 올지 모르는 불안 심리를 투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자기 생이 줄 수 없는 안정감을 그렇게 반대급부적으로 욕망하고 다시 배설하는 그의 지향은 짙푸른 하늘도, 그렇다고 농부의 한가로운 낮잠도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끊임없이 밝은 빛을 표현해냈으며 태양이 직접 묘사되지 않은 작품 속에서도 쉽게 그 빛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대상을 밝게 그려냈다.
그는 이카루스가 태양을 욕망하듯이 그렇게 빛을 향해 질주해간 몽상가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아챈 그는 결국 자신을 향해 붉은 총탄세례를 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빠르게 피었다 사라지는 마지막 불꽃, 그것은 그의 생사와 닮았다.
책을 읽는 동안 고흐의 심장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불규칙하게 박동하는 심장은 때론 가파르게 언덕길을 넘어갔고, 때론 숨죽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잦아들었다. 이 책이 그림과 글로만 읽히지 않은 이유다. 한 사내의 고독과 열정을 선 굵게 담아낸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