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사장학 - 대한민국 사장들을 위한 생존전략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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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시대를 연 장본인이 강준만이라면 시장에서 통하는 1인 기업가의 그것은 공병호에게 돌려야 할 듯싶다. 그는 보수적 가치를 지선(至善)으로 삼는 대표적 지식인이며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한 전업저술가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자유기업센터와 자유기업원 초대 소장을 거쳐 현재 공병호 경영연구소를 이끌며 연간 300회 이상의 강연과 경영 자문을 하고 있다.

 

그는 변화관리와 경영경제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경험을 살려 60여종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그렇다고 그가 낸 60여종의 책이 변화관리와 경영경제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 그 안에 경영서와 영어학습서, 자기계발서가 망라되어 있을 정도로 그가 글감으로 삼는 소재의 영역이 의외로 넓다.

 

최근 그는 자기계발과 국가적 발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인다. 〈10년 후, 한국〉, 〈공병호의 10년 후, 세계〉, 〈3년 후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공병호 미래 인재의 조건〉, 〈공병호 인생의 기술〉, 〈명품 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책, 〈공병호의 사장학〉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작과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만 조금 다를 뿐 이 책이 경기침체와 경제위기에 민감한 중소기업사장의 고민을 다루고 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전략을 코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부가 개인과 기업의 부의 단순 합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세가 국부와 직접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경제구조 하에서 기업을 진두지휘하는 사장의 선택과 집중이 국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 책 또한 그가 관심을 갖는 영역 밖의 문제를 다룬다고 보이지 않는다. 책은 총 2부 1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장이 갖춰야할 특정자질을 전문성, 판단력, 실행력 등 14개의 주제어에 담고 있으며 2부는 기업 내부의 조직을 효율적으로 구조화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1부는 일종의 리더십 특성의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과 부단히 상호작용하며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현대 기업은 과거와 다른 리더십 유형을 요구받는다. 고전적 리더십은 리더에게는 추종자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자질이 있다는 가정 하에 특정 자질을 갖춘 리더를 찾고 그 아래 추종자들을 일사불란하게 배치함으로써 특정 목적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현대적 리더십은 환경 변화에 가변적인 상황적응적 리더십이 주를 이룬다.

 

현대적 리더십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리더십 유형에 주목하는 바 추종자들을 일방적으로 견인하는 경직적인 태도를 벗고 추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관계중심형 리더십 특성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1부에 적은 리더십 유형은 고전적 리더십이 분류하려고 시도한 리더의 다양한 특성을 14개로 정리했다는 의미 외에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그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경제위기에 직면한 중소기업의 고단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장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상황과 연결 지으면 1부의 내용을 고전적 리더십 유형의 단순한 나열이라는 비판이 터무니없을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때, 이미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 어느 해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사장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가장 큰 목적 또한 여기에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저자가 분류한 리더의 특정자질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경영상 곤란을 타개하기 위해 중소기업 사장에 특유한 자질이라기보다는 어느 조직과 사회든 리더라면 그 정도의 자질은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에 가깝다는 점에서 '분량을 늘리기 위한 단순 삽입'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저자가 같은 서문에 '이미 사업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장들만이 아니라 자기 사업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분들이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낸 것처럼 자기 사업을 계획하는 분들과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마저 파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도 좋다.

 

이 책의 핵심 부분은 2부에 실려 있다. 2부는 '상품과 서비스', '영업', '조직관리', '재무', '인재' 등 기업경영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다. 특장은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감정이입에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에서도 보았듯이 저자는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사장들을 만나며, 피부로 체감한 그들의 고충과 문제점들에 대해 분명한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저자의 그와 같은 노력이 2부에 화려하게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당장 기업경영에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현실을 내밀히 들여다 본 컨설턴트나 기업 관계자가 아니면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의 현실감을 갖추고 있다. 2부의 각 장에 인용된 기업의 성공과 실패사례는 저자의 시장분석과 성공전략에 신뢰를 더해준다. 지루하기 않게 읽히는 장점까지 주고 있으니 일석이조. 저자가 전업저술가의 1인 기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부분이라는 데 후한 점수를 기꺼이 주고 싶다.

 

경제위기의 한파가 여전히 그 세력을 거두지 않은 이때, 특히 중소기업의 부침이 심하다는 점에서 고급정보의 접근성 제한과 전략의 부재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학계와 재계, 그리고 저술가들 사이에 활발히 펼쳐지고 있어 훈훈하다. 이 책이 그런 조력에 일정부분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의 기대대로 이 책이 '이미 사업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장들만이 아니라 자기 사업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분들이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두루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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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매뉴얼 - 위기를 기회로 삼는 부자들의 투자전략 부자학 연구학회 총서 4
한동철 외 지음 / 북웨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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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자 되세요."

 

수년 전 모 탤런트가 CF에 출현해 한 말이다. 당시 그 말은 "건강하세요", "오래 사세요" 등 널리 퍼진 새해 덕담과 자리를 바꿀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평소에도 '부자 되라'는 말을 건네야 제대로 인사치레 하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직장인들 사이에 그 말이 심심치 않게 오고갔다. 그만큼 위세와 파급효과가 대단했다는 얘기. 기세가 한풀 꺾인 요즘이라고 달라지랴.

 

달라진 건 있다. 부자 되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주고받지는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사람들 대부분이 부자 되기를 포기한 걸까? 아니다. 말 이면에 자리잡은 '부에 대한 욕망'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주택 청약에 몰리는 사람들. 고수익이 난다는 펀드를 좇은 사람들. 목 좋은 부동산을 찾는 사람들... 가히 사람들 앞에 부와 관련한 어떤 형용사든 넣어도 말이 될만한 시대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부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세간의 욕망을 무작정 탓할 일은 아니지만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지나칠 정도로 부를 좇는 현상에 대해선 일정부분 선을 그을 필요에 대해선 대부분 긍정하시리라 믿는다. 다만 그 방법과 한계를 분명히 해야하는 문제는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뾰족한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다. 자본주의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 중의 하나라는 편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의 모범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편의 좌우를 기웃거리는 혼란을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십 수년 전 '중심의 괴로움'을 노래한 한 시인이 있었다. 시인은 중심의 괴로움을, '누구나 한번은 생의 중심에 서는 때가 있고 중심으로의 이동은 누가 등 뒤에서 떠미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실현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중심에 서서 구심력으로 그 바깥을 끊임없이 견인해야 하는 위치에서 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선 그 중심을 '부를 욕망하는 사회'에 시선을 맞춰 풀어보고자 한다.

 

'구심력과 중심의 괴로움'의 관계는 '원심력과 중심의 한계'와 같다. 중심에 서면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중심은 외부에서 오는 동력, 곧 원심력에 의해 통제되고 그것에 끌려간다. 부에 대한 욕망이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다 부를 향해 좇아가니 나 또한 따라가는 구조. 그 구조 속엔 성찰도, 반성도, 분명한 계획도 없다. 한참 지나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통탄한다.

 

부나방 같은 삽시간의 쏠림과 몰입, 그리고 몇 사람만의 샴페인 파티와 대다수의 때늦은 후회. 부와 관련된 서적들이 최근 전적으로 부에 시선을 맞춘 데서 벗어나 그 부를 욕망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조금씩 이동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과거 관련 서적들은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독자를 부추긴 후 그 책임을 전부 독자에게 돌린 탓에 비판이 많았다.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지만 무책임하게 책을 쓰고 세간의 호기심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상술로 도마에 자주 오르내렸던 것.

 

그런 비판을 희석할 의도였건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런 변화가 왔건 객체(부)에서 주체(부를 얻으려는 사람)로의 시선 이동은 일견 바람직하다. 다만 그런 변화가 또 다른 형태의 상술과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면 전과 다른 수위의 비판에 직면할 터. 그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이 책, 〈부자 매뉴얼〉도 앞서 언급한 대로 이전의 책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물론 미미한 변화다. 중심 주제는 여는 책과 다를 바 없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접근방식에 있어 두드러진 차이는 이 책의 저자가 '부자학 연구학회'라는 정도다. 학회를 설립하고 '부자학'-과연 부자와 학이 연결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별개로-을 학문적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는 부에 대한 사회적 욕망을 경원시 한다든지 또는 반대로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든지 하는 극단을 벗어나 자유롭게 부를 광장으로 끌어내 연구하고 투자하는 미래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뒷표지 안쪽에 붙은 '부자학 연구학회 소개' 정도로는 학회의 성격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학회가 부에 대한 지나친 욕망과 부에 대한 뿌리깊은 터부의 간극을 메우는 데 기여하길 바랄 뿐이다. 이 책, 〈부자 매뉴얼〉이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면 많이 미흡하다. 정해진 지면에 상당한 분야(주식, 증권, 채권, 펀드, 부동산)를 담으려다보니 어느 한 분야도 세밀하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부에 대한 이론적 토대 마련'과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에 대한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주춤한 인상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로 저자와 독자 모두 위안을 삼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부에 대한 이론적 토대 마련'마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욕망이 결과한 사회적 손실 측면에서 정교한 경제학적 이론과 해박한 실물경제 지식을 갖춘 투자자의 양성에 대한 요구도 시장에 만만치 않게 형성되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저자들 대부분이 현직 교수라는 점에서 그들의 고민이 상당하리라 짐작된다.

 

첫 장을 '투자를 하기 전에 알아야할 사항'에 할애하고 '우리나라의 부의 구성', '인구구조와 부의 변천', '개인재무상태의 점검', '종자돈과 월급에 대한 이해(소제목을 일부 조정)', '투자심리', '자산배분과 리밸런싱을 통한 투자심리의 한계 극복' 등에 상당 지면을 배분한 것은 부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마지막 장, '부자들에게 배우는 투자 전략'에서 부자들의 투자성격과 전략, 특징을 그들의 부에 대한 태도와 생활습관에 초점을 맞춘 것 또한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나머지 3개의 장은 실전 투자 지침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에 대한 추구는 사회구성원의 정당한 심리다. 그렇다고 그 심리가 부에 대한 욕망의 극한으로 치달아 사회 전체적으로 그 부분에 몰입하는 건 좋지 않다. 사회는 전 분야가 균형적인 발전을 모색하고 그 길로 매진하여야 한다. 부의 증진도 그 한 분야다. 다 분야의 약진이 부의 증진을 결과한다는 특징을 아울러 갖고 있다는 것이 타 분야와 조금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안에서만 보면 내가 전력투구하는 분야가 최고인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내가 속한 분야가 성장을 거듭하면 다른 분야 또한 그럴 것이라는 자기 중심성에 빠지기 쉽다. 중심은 바깥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외부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벌어진 각종 위기 상황, 특히 금융위기는 중심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내 분야가 사회 전반적으로 일개 분야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감을 갖추어야 한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기분이야 단연 최고다. 그렇다하더라도 샴페인이 터질 때 주변으로 뿌려지는 파편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회장 주변에 산포된 샴페인은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다. 치우는 일은 주빈의 몫이다. 성장에만 착목하면 그런 부산물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치워야 한다는 것을 놓치기 쉽다.

 

이 책이 실전투자전략과 비법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의사결정권자가 사람이며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이 그에게 있다'(당연한 말임에도 자주 잊혀진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옳다. 투자와 그 투자에 따른 정당한 대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투자를 하기 전에 시장 상황과 개인재무상태 등을 면밀히 관찰하는 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투자는 중심과 주변을 고루 보는 통찰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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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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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등장한 작가의 경악할만한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삼대에 걸친 가족사를 격동의 도미니카사에 녹여냄으로써 외부적 요인에 노출된 개인의 굴곡 넘친 삶을 사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작품 속에서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를 담당하며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줄곧 견인하는 화자 유니오르는 작가 자신이다. 그는 데 레온 가족의 일상을 세밀히 관찰해온 그들 모두의 분신으로 가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부끄럼 없이 쏟아내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도미니카 공화국과 미국 뉴저지에서 자란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작가는 독재와 민주를 두루 경험한 바탕 위에서 특히 트루히요가, 오스카 와오의 조부 아벨라르가 딸을 파티에 데려오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아벨라르를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내내 감정이입적 표현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독재에 대한 조소를 더욱 고도화해간다. 그와 같은 방식은 직접적인 비난 보다 입가에 묘하게 흐르는 비웃음의 강도가 심리적 강도가 크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은 개인의 삶이 결코 시대상황과 분리될 수 없는 교호작용의 자장 속에 놓여 있다는 진리를 격랑과도 같은 삼대 가족사에 녹여내고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본질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고통스런 검증'이자 사적 공간을 최고도로 구현하는 장치로서의 가족조차 시대와 조응하며 그 관계 속에서 진퇴를 거듭하는 '연약한 고리'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오스카와 그의 누이 롤라, 모친 벨리시아, 조부 아벨라르로 이어지는 삼대는 가족이라는 연대감으로 충만하지만 그들 각자가 살아낸 삶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며, 그럼으로써 파편적이다. 아벨라르의 몰락이 가족사에 그늘을 드리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같은 혈통 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 모두 통제불가능한 시대상황 혹은 주변 상황에 부딪히고 저항하며 어두운 가족사의 한켠을 따뜻한 빛으로 채우려 분투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푸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존재라는 점에서 '부득이한 한계'를 말하고 싶다.

 

그 한계란 작품 초반에 등장한 '푸쿠'다. 푸쿠는 저주와 동의어로 쓰였다. 롤라의 '변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이유도 의미도 없이 그를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당연 푸쿠였다. 벨리시아의 비극적 출생과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사랑이 그에게 푸쿠였다면, 아벨라르에게 그것은 가족이냐 권력이냐의 선택의 문제였다. 오스카는 진정한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이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화염에 휩싸였다. 그 또한 푸쿠였다. 각각의 푸쿠 위에 견고하게 드리워진 트루히요라는 푸쿠까지. 그들은 푸쿠를 이고 생의 끝을 향해 무한 질주했다. 마치 그것을 떨쳐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개별적인 삶의 형식을 보면 분명 그들은 후대와 연결됨 없이 푸쿠의 그늘에 갇혀 명멸한 인간이었음에도 그들은 가족이라는 공통의식 속에서 서로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거두려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족의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공통점은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교묘하게 삽입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공통점은 그들이 하나같이 삶을 포기하지 않은 데서 온다.

 

'절망 속의 긍정'은 어느 문학이나 삶에 감초처럼 드러나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들을 빛나게 견인하지만 이 작품에선 그런 법이 없다. 그들은 외견상 모두 실패한 군상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그들을 푸쿠 아래 절망적으로 누인 자들로 기억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기어코 놓지 않은 '사파' 때문이다. 사파는 푸쿠를 피할 수 있는 역주문을 말한다. '평온하게' 화염에 휩싸이는 오스카에게서 그리고 가족을 택함으로써 '자발적으로' 권력을 손에서 놓은 아벨라르에게서 우리는 사파를 본다.

 

그들을 선택했다. 자기결정권을 손에 쥔 그들은 희망이라는 좌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갔다. 그것이 이 작품을 눈부시게 읽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 주노 디아스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해 미국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1996년 첫 단편소설집 Drown을 출간한 후 11년만에 우리 앞에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들고 나타난 그에게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한다. 또 다시 11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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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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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글은 삶의 총량에 비례한다." 수년 전 모 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실린 말입니다. 당시 그 말을 한 분이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짧지 않은 기사를 단지 그 말이 너무 좋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지한 삶은 공감을 동반합니다. 모양새야 가지각색이겠지만 그 속 내용은 대체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 닮아있다는 데 삶의 묘미가 있습니다. 분명히 나와 같지 않은 타인의 삶임에도 그가 살아낸 삶의 이야기가 마치 나를 주인공으로 세워 꾸려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삶이 대체적으로 올망졸망한 조약돌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모가 나고 패이기도 한 돌이 매끄러운 돌로 변하기까지 숱한 바람과 물살의 간섭이 있어야 하듯이 삶 또한 그와 같이 여러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는 동안 다듬어진다는 것을 알아 가는 일이겠습니다.

 

어느 농부는 '짓는다'는 말이 좋다고 책에 썼습니다. 그의 말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짓는다'는 참 좋은 우리말인 것 같다. '만든다'는 말과는 느낌이 다르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듯이 책을 짓는다. 무수히 많은 과정에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기에 '짓는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만든다'는 말은 인위적이라는 냄새를 풍깁니다. '짓는다'는 어감 탓도 있겠습니다만 정감 어리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다. 밥을 짓고 집을 짓듯이 아기자기하게 삶을 꾸려갈 수 있다면 그 삶에서 건져 올린 두레박엔 갈증을 시원하게 해갈할 물이 넘쳐흐르겠지요. 많은 이들이 그 물을 마시며 지나온 길을 회상하고 앞날을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삶을 닮은 글은 또 어떨까요? 글이 글쓴이의 삶을 제대로 반영한다면 그 글은 읽는 이에게 가상체험의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비록 가상체험이 실제 체험에 견줄 때 몸 속 각인의 깊이가 옅을지 몰라도 정신적인 면에선 오히려 앞설 수 있습니다. 실제 체험은 그 일을 복기하기까지 적게는 수일에서 많게는 수년의 시간을 숙성기로 거친 다음에야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즉시 또는 적은 시간 안에 되새김질이 가능한 가상체험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자주 글쓰는 이의 방을 기웃거리게 되는가 봅니다.

 

이 책, 〈한국의 글쟁이들〉엔 여러 개의 방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해놓고 있습니다. 고루 특색을 갖춘 방은 방문을 열 때마다 손님 얼굴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입 꼬리를 좌우로 길게 들어올리는가 하면 눈가에 초승달 같은 주름을 여러 갈래로 패이게 하기도 하고 때때로 고갯짓을 무한 리필하게 만드는 만큼 빨리 둘러보리라는 기대는 되도록 빨리 내려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방 안엔 삶의 향취가 물씬 배여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방의 주인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차에 적은 타이틀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들을 소개하면, 국문학 저술가 정민, 미술 저술가 이주헌, 역사 저술가 이덕일, NGO 저술가 한비야, 동양철학 저술가 김용옥, 변화경영 저술가 구본형, 만화가 이원복,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 민속문화 저술가 주강현, 만화작가 김세영, 건축 저술가 임석재, 교양미술 저술가 노성두, 교양과학 저술가 정재승,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 전통문화 저술가 허균, 서양사 저술가 주경철,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등 그야말로 다채롭습니다.

 

각 분야에서 독특한 저술로 위치를 탄탄히 굳힌 그들은 그 자리에 이르는 동안 땀과 눈물의 수고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자질과 남다른 노력이 쌍두마차의 말처럼 거센 바람을 가를 차비를 차려야한다는 진리를 그들은 그들이 증언하고 있는 말과 말의 행간에 무수히 차려놓았습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등을 쓴 국문학 저술가 정민의 낭독에 얽힌 여담이 이채롭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나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낭독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읽다가 멈추면 멈춘 부분을 고치고 또 멈추면 그 부분을 손질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입맛에 잘 맞는 글이 되고서야 그 일을 멈췄다고 하니 글의 리듬과 어미 각운을 꼼꼼히 따지는 그의 퇴고법이 소중한 삶을 의미 없이 배설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 그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을 쏟아 부어야한다면 삶이라는 등짐엔 얼마만큼의 수고와 노력을 얹어야 할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일기장에 적힌 한비야의 다짐은 또 어떤가요? "머리를 때리는 글이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글을 쓰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등 그의 대표적 여행기 세 권을 읽은 독자들이 서둘러 국외로 나갈 마음에 엉덩이를 한참 들썩인 데는 그만큼 그의 글이 그의 말마따나 독자들의 가슴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옹골차게 밭을 갈고 거름을 주려는 이들의 모습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고는 맺힌 열매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비록 그 때가 아직 멀고 당장 햇빛과 비가 충분치 않다 해도 좋은 밭에 뿌린 좋은 씨앗은 필시 좋은 열매로 화답한다는 믿음만큼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여기 실린 18인의 삶이 그와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돌짝 밭을 종일 수고하여 고른 이들이며, 오래 묵힌 거름을 일일이 퍼내어 밭에 뿌린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글에 배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만만치 않은 무게감'은 남다른 삶에서 온다는 진리를 거듭 관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갑작스런 추위로 움츠러든 어깨를 곧게 펴고 내일을 바라보고 꾸준히 오늘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 겨울에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그와 같은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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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몸에 맞는 옷은 눈보다 기분에 먼저 옵니다. 편안한 기분. 그것은 잘 맞아 보기 좋다는 안목을 앞섭니다. 편안해서 좋은 옷, 그래서 기분이 좋은 옷이 늘 그런 느낌을 잃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해지기도 하고 졸아들기도 해서 어느 틈에 몸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일상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몸에 맞아 편안할 때가 있는가 하면 불편한 그런 것 말입니다.

 

불편이라고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요.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감을 불러내 일에 성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머리로 오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가슴으로 사무친다는 말은 머리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밑으로 퇴적한 깊은 상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생활이 주는 편리함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식주와 문화적 욕구를 실시간으로 채우려는 도시적 욕망은 도시인들을 끊임없이 도시에 묶어놓습니다. 도시를 떠난 어떤 문화와 존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구속. 그런 구속을 도시인들은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속박에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도시인들이 오히려 그 속박에 기꺼이 자신을 넘겨주는 전도 현상을 우린 도심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물론 그런 본질을 목격하는 일은 도시생활의 역기능에 눈을 뜰 때 가능합니다. 태풍의 중심에선 회오리를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도심에서 그 도심 바깥으로 부는 황폐한 정서를 깨닫는 일은 어렵습니다.

 

저자 또한 그런 점에서 도시인이었습니다. 과거형인 것은 저자는 지금 무주에서 천상 농사꾼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 그의 도시생활은 그가 말했듯이 '당위와 욕망으로 가득 차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추락하는 생이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는 말은 비상을 꿈꾸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잉여인간'일 뿐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탈출구 없는 도시생활이 무릎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몸의 고통으로 오자 죽음을 결심한 그는 소주병을 들고 찾은 한강변에서 '마지막 한 번 하고 싶은 것이나 해보고 죽자'는 결심을 합니다. 상주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좇아 마침내 농촌행을 결행합니다.

 

경남 산청공동체를 거쳐 드디어 무주에 당도한 후 저자는 몸으로 하는 일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습니다. 몸의 치유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책은 그의 '도심탈출 성공기'이자 '자기 치유와 자아 재발견기'입니다.

 

책은 저자의 도심 탈출에 이은 농촌 정착을 여정 순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1부는 저자가 피폐했던 도심을 떠나 농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기 긍정과 가족간 화해, 삶을 향한 열정과 조우하며 '스스로를 보듬고 추스르는' 서장입니다.

 

2부는 땅을 일구고 사는 자신과 가족의 일상사를 아날로그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뽀얗게 담았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귀기울이기'라는 소제목을 단 2부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이는 벼이삭 소리를 듣기 시작한 저자가 세밀한 생명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사는 풍요로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부, '결혼 20년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다'는 도심에 살던 내내 변변한 직장조차 없이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하던 남편 대신 가정을 책임진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에 정착하려한 계획에 흔쾌히 동의해준 아내에 대한 존경을 가득 내비치고 있습니다. 저자는 '늘 붙어살지만 서로 신선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부는 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려는 정겨운 마음씨를 담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찢기고 상처를 입은 채 안으로만 파고들었던 그가 비로소 세상으로 난 창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이 일궈낸 힘찬 승리입니다. 소제목은 '새로운 관계, 더 넓은 세상 속으로'입니다.

 

이 책은 도심을 탈출한 한 남성의 농촌 생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남성에게 국한돼 읽히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편과 가장, 직장인의 지위를 지켜내려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남성들의 이야기로 바꿔 읽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비록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을 완전히 벗어낼 수 없다해도 저자와 같이 농촌의 생기를 받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숨통을 틔울 수 있다면 똑같은 삶일망정 이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추억을 일깨우는 일의 소중함을 이 책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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