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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몸에 맞는 옷은 눈보다 기분에 먼저 옵니다. 편안한 기분. 그것은 잘 맞아 보기 좋다는 안목을 앞섭니다. 편안해서 좋은 옷, 그래서 기분이 좋은 옷이 늘 그런 느낌을 잃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해지기도 하고 졸아들기도 해서 어느 틈에 몸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일상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몸에 맞아 편안할 때가 있는가 하면 불편한 그런 것 말입니다.
불편이라고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요.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감을 불러내 일에 성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머리로 오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가슴으로 사무친다는 말은 머리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밑으로 퇴적한 깊은 상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생활이 주는 편리함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식주와 문화적 욕구를 실시간으로 채우려는 도시적 욕망은 도시인들을 끊임없이 도시에 묶어놓습니다. 도시를 떠난 어떤 문화와 존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구속. 그런 구속을 도시인들은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속박에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도시인들이 오히려 그 속박에 기꺼이 자신을 넘겨주는 전도 현상을 우린 도심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물론 그런 본질을 목격하는 일은 도시생활의 역기능에 눈을 뜰 때 가능합니다. 태풍의 중심에선 회오리를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도심에서 그 도심 바깥으로 부는 황폐한 정서를 깨닫는 일은 어렵습니다.
저자 또한 그런 점에서 도시인이었습니다. 과거형인 것은 저자는 지금 무주에서 천상 농사꾼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 그의 도시생활은 그가 말했듯이 '당위와 욕망으로 가득 차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추락하는 생이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는 말은 비상을 꿈꾸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잉여인간'일 뿐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탈출구 없는 도시생활이 무릎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몸의 고통으로 오자 죽음을 결심한 그는 소주병을 들고 찾은 한강변에서 '마지막 한 번 하고 싶은 것이나 해보고 죽자'는 결심을 합니다. 상주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좇아 마침내 농촌행을 결행합니다.
경남 산청공동체를 거쳐 드디어 무주에 당도한 후 저자는 몸으로 하는 일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습니다. 몸의 치유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책은 그의 '도심탈출 성공기'이자 '자기 치유와 자아 재발견기'입니다.
책은 저자의 도심 탈출에 이은 농촌 정착을 여정 순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1부는 저자가 피폐했던 도심을 떠나 농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기 긍정과 가족간 화해, 삶을 향한 열정과 조우하며 '스스로를 보듬고 추스르는' 서장입니다.
2부는 땅을 일구고 사는 자신과 가족의 일상사를 아날로그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뽀얗게 담았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귀기울이기'라는 소제목을 단 2부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이는 벼이삭 소리를 듣기 시작한 저자가 세밀한 생명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사는 풍요로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부, '결혼 20년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다'는 도심에 살던 내내 변변한 직장조차 없이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하던 남편 대신 가정을 책임진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에 정착하려한 계획에 흔쾌히 동의해준 아내에 대한 존경을 가득 내비치고 있습니다. 저자는 '늘 붙어살지만 서로 신선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부는 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려는 정겨운 마음씨를 담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찢기고 상처를 입은 채 안으로만 파고들었던 그가 비로소 세상으로 난 창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이 일궈낸 힘찬 승리입니다. 소제목은 '새로운 관계, 더 넓은 세상 속으로'입니다.
이 책은 도심을 탈출한 한 남성의 농촌 생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남성에게 국한돼 읽히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편과 가장, 직장인의 지위를 지켜내려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남성들의 이야기로 바꿔 읽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비록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을 완전히 벗어낼 수 없다해도 저자와 같이 농촌의 생기를 받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숨통을 틔울 수 있다면 똑같은 삶일망정 이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추억을 일깨우는 일의 소중함을 이 책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