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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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13쪽)

노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랑이나 아이를 낳는 일 같은 다른 종류의 헌신에 비해, 조언이나 독려가 될 만한 분량의 글이 없다. 그 일은 마치 예저엥 없던 어떤 일처럼 슬그머니, 마치 한 번도 경고를 받지 못했고 지도에도 없던 암반으로 가득한 해변처럼, 갑자기 당신 앞에 닥친다. (20쪽)

기억이란 지나가는 물고기를 모두 잡는 일은 결코 없으면서, 종종 있지도 않은 나비를 잡아 버리는 그물 같은 것이었다. (25쪽)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영웅이다. 다른 이야기라는 무대에 우리를 세워 놓고 그렇게 작아진 스스로를 보는 것, 당신과 관련이 없는 세상의 광활함을 보는 것도 바라보기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능력을 보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만들고 혹은 그것을 부수기도 하며, 다른 사람에 의해 이야기되기보다는 우리가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이다. (51쪽)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하다.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모두 그러하다. 파괴하는 이, 큰 고통을 일으키는 이는 먼저 자신의 일부를 죽여 없애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볼 수 없게 된다. (83쪽)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 주고 축보해 주는 다른 이야기를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93쪽)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106쪽)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151쪽)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선뜻 돌봐 줄 수가 없다. 당신의 손발이 당신에게서 잊힌다. 반면에 고통은 지켜 준다. (153쪽)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꼐 아파하믕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 역시 전염성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157쪽)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어소가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158쪽)

실제로는 하나가 아닌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많은 사건과 세세한 일이 뒤엉켜 있는 덩어리로부터 불확실한 기억을 더듬어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213쪽)

유한한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 순간부터는 정말로 중요해진다. 이 순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손님은 때로는 안내인처럼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시간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우리를 문밖으로 난폭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반응하고, 그 반응이 바로 그 순간 이후에 살아가게 될 삶이다. (223-224쪽)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엄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는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너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259-260쪽)

누가 당신의 말을 듣는가. 할 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들려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듣는 이의 귀에서 머리까지 이어진 미로를 여행하는 공기의 울림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두운 통로에서는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욕망과 필요 혹은 관심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하여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세상은 삶을 온통 편안한 것과 익숙한 것만 비춰 주는 겨울로 만드렁 버릴 위험이 있고, 그 반대의 세상에도 마찬가지로 위험은 있다.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자. (283-284쪽)

어떤 때는 나의 몸이 하나의 집이 되어, 여러 세입자가 차례대로 살다가 떠나는 곳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들 하나하나가 기억을 남기고, 습관과 상처, 기술, 그리고 여러 기념품을 남기낟. 아주 오랜 후에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뒤에 처져 있곤 한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멸종해 버린 과거의 어머니와 여전히 다투고 있고, 과거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과거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작아졌지만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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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보고 싶다며 친구가 보내 준 책을 이제야 읽다. 그것도 건성으로. 그녀의 마음에 비하면 내용은 가볍다. 모르겠다. 행간의 의미를 곱씹기 보다는 그냥 건너뛰었다. 그후 그녀가 몇번이나 와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어렵고 복잡하고 부럽기까지 한 글들을 읽은 다음에 가볍게 읽거나 또는 몇 권의 책과 섞어 읽기에 좋은 책으로 치부했다.

삶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일상에 대하여, 이름 불러주는 거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앞뒤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거도 있고 앞뒤 문장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끼어 맞춘 느낌까지. 내가 읽은 게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해가 안되면 타인을 탓하는게 속 편한 일이니.  

지난 주 복면가왕에서 들은 Don't Cry를 반복하여 듣는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까지 불었는데 몇번을 수십번을 들어도 이 정도야 약과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고루 실핏줄같은 감정이 고스란이 녹아 있어, 울지말라 하면서도 자꾸 울렸다. 대단한 가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널 사랑해...

첫 사랑이 자꾸 노래에 묻어 나왔다.

그때는 사람을 특히, 남자를 대하는 건 어려웠다.

다섯살 보다도 많은 나이 차에서 감히 넘볼 수 조차 없었다.

나는 단단하지도 않았고 솜털 보송하고 말랑한 꼬마에 불과했다.

함께 한 시기에 말 한번 붙이지 못했고

한번도 제대로 불러 보지 못했고, 허겁지겁 따라 간 게 전부였다.

그때의 계절도 공기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고, 느끼지 못했던,

다만 형을 보고 있는 거에만 급급했다.

이제 이런 봄날을 즐기고 싶다. 부르고 싶고 말도 먼저 건네고 싶다.

성큼 다가도 가고 싶다. 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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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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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15쪽)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에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54쪽)

보고 싶다

첫사랑, 첫날밤, 첫 키스.......
`첫`자가 붙은 말은 언제나 아리고 매콤하다.
그대는 아리고 매콤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움`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라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보지 않고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건, 마음이 썩게 내버려 두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대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봐라.
순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63쪽)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흐름을 멈춘 강이란 이 세상에 없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153쪽)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사람들에게 수평선은 아득한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갈매기들에게 수평선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이란 뜻이다. 무엇이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게 관점이다.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간단하다. 고래는 육지에서의 삶에 지쳐서 바다로 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지치게 하면 그곳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173쪽)

사무친다는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사랑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보다는 편한 게 사랑 아닌가.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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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어디 글만 있겠냐. 사람, 경치, 취미등등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표현할 수 있는 건, 문학이 최고다. 그 중 최고의 정수만 뽑아 한상차린 글을 읽고 있는데, 문장마다 매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어찌 매혹되지 않으랴.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모두 인생, 사랑, 죽음에 관하여서는 동일한 거 같다. 깊이와 너비에 있어. 낯간지러운 표현도 그 옛날 아주 옛날 그들도 표현했더라. 

마음을 사로 잡아 흔드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동일하다. 모양과 무늬만 다를 뿐, 본질과 내용에서는 똑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글을 읽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늘을 사로잡은 것들은, 오랫만에 나간 명동거리를 거닐고, 달달한 단팥죽은 발끝까지 발그레하게 퍼져 그리움을 꽃 피웠다. 광화문 테라로사의 커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고싶음까지 숨쉬기 힘들게 했다. 느릿느릿하게 들어 오며, 강백수가 부르는 주정가에서 원초적인 본능과 그러면서 금단현상까지 일으킨 사랑을 기억하고 취중고백이 진담일까 농담일까 까지, 만약 농담에 그녀가 오케이 했다면, 이런 낭패까지...   

인공지능과 맞붙은 센돌의 승리에 기뻐하고 -사람과의 대국은 상대의 태도, 호흡, 숨소리, 감정, 파장들을 느끼면서 치루지만 알파고는 그게 아니라 세돌의 태도를 완전 다르게 해야하는데라는 나의 걱정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에서 드뎌- 또 복면가왕 음악대장이 부르는 Don't cry를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을 사로 잡고 마음을 줬던 모든 게 다가왔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이밤 지나면 안녕 영원히 널 사랑해... 

그러면서 이런 모든 순간들은 몸에 차곡차곡 쌓일거다.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울수도, 웃을 수도 있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깊이있게 가장 넓게 매혹당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좋은 글을 만나는 순간은 작가의 전생애가 온전히 전부가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맞닿은 문장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찾을 수도 있다. 장석주의 말에 동의하며 오늘도 읽는다. "책읽기에의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7쪽) 책읽기는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78쪽) 독서 외의 다른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거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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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장석주의 문장 예찬 : 동서고금 명문장의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장석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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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을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15쪽)

몸은 오래된 기억들, 너무 오래되어 잊힌 기억들의 창고다. 그 기억들은 대개는 무의식의 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간다. 무의식은 깊은 자아다. 그것을 꺼내 써야 한다. 마치 무의식에 빙의된 것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야 한다. 손끝은 펜촉이다. 그 펜촉을 통해 무의식의 검은 잉크가 흘러나온다. 글은 한없이 흘러나온다. (22쪽)

그는(김현)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의도를 찾아내기보다 제 욕망의 윤리학을 겹쳐 그 시를 읽어 내곤 했다. 그는 시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하나의 생물로 품어 안으며 그것과 교접한다. 그 교접의 현실태는 도취와 공감이다. 그는 시 속에서 행복을 꿈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아무도 그가 했던 만큼의 풍요한 비평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51쪽)

나는 독서를 앎을 추구하고 넓히는 방법으로보다는 인생의 낙으로 즐긴다. 책읽기는 아무리 계속해도 타성의 완고함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면의 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진다......
책읽기의 욕망 저 밑바닥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는, 점점 짧아지는 생명의 금을 늘려 보려는 불가능한 꿈이 있는 것일까? 책읽기가 생자필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
내가 오랜 세월을 책읽기로 보내는 것은 독서 외의 다른 큰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며, 책에서 `덕`과 `지`를 구하려는 마음은 그 다음이다. (78-79쪽)

살아남음은 온갖 위험 요소들을 누르고 없앴다는 뜻이다. 위험의 본질은 곧 죽음이다. 내 살아남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이 아니라 내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한다! 이것이 삶의 조건이다. 생명의 불가침성 따위는 무시해야 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계속 살아남으면서 다른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가? 내면에 이런 물음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짐승들이 사는 곳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온화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밥이 되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밥으로 취했다는 증거이니, 그것은 짓지 않은 원죄의 징표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근거이며, 항상 겸허하게 살아야 할 까닭이다. (102쪽)

좋은 건축은 사람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응답이며, 그것을 넘어서서 미적 이상향을 향한 오랜 꿈의 실현이다. 그때 건축은 취향과 실용적인 기능의 영역이 아니라 숭고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철학적 대상으로 바뀐다. (156쪽)

몰입은 삶의 현재성에 `네`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현재성이 그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86쪽)

고요한 순간을 주목하라. 하나의 생각이 가고 또 하나의 생각이 아직 다가오기 전의 고요한 순간, 대화 중 생겨나는 짧고 고요한 공백, 피아노나 플루트 연주곡을 들으면서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 그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을 주시하라. (188쪽)

아주 긴 시다. 오동나무가 되어 네 무릎 위에서 울리는 금이 되고 싶구나, 했다. 나도 누군가의 무릎 위에서 울리는 거문고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다. 그래서 튕겨져 올리는 음률마다 누군가의 애간장을 끓게 했던가. 마음에 간절한 바는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연애에 빠진 사내의 모습이란 게 이렇듯 제 마음의 갈피를 다스리지 못한 채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고 궁상맞구나, 하며 공허하게 웃는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사랑에 빠지면 공연히 근심하고 마음에 괴로움은 가득해지고 행동은 나날이 유치해지는가? 내 마음도 누군가 그리운 이를 품으면 물렁물렁해져 유치해질까? 분명 그럴 것이다. (236-237쪽)

문드러지고 스민 것도 세월이 가면 바래지고 삭혀져 별일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무등을 보며]의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이다. 떫지도 시지도 않은 사랑, 소태처럼 쓰지도 않고 연시처럼 달지도 않은 사랑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저 혼자 처박혀 빛나는 옥돌 같은 사랑이고, 샘물처럼 천천히 차오르는 사랑이다. (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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