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만드는 일로 분주하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은 까실대며 까끄럽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밀려오다, 그까이껏하는 마음까지 오간다.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사람들 사이를 오늘도 많이 오갔다. 글자 하나까지 서로의 의견이 다르니... 어찌되었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협조공문을 보내고.. You might as well enjoy the pain that you can't avoid.. 중얼거리며 출장을 나왔다. 재미가 있어 술술 넘어가는 '살인의 해석'에서 햄릿의 대화(to be or not to be - 보통 '죽느냐 사느냐'로 번역함)와 오디푸스 콤플렉를 다시 해석해 보게 되었고, 밤 늦게 책읽는 나를 꿈속에서도 보게 되었다.(책읽다가 졸고 있는 내모습을 깜짝 깨어서 알게 된 것) 내가 지금 하는 일과 내 모습, 관련된 사람들을 다시 해석해 보는 것,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지요. 오디푸스콤플렉스든, 미해결과제든.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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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품절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 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 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의처럼 자신들을 감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9쪽

사람의 욕망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갈망하는 데서 시작된다. -287쪽

"알겠네. 그렇다면 환자의 신경증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겪고 있는 갈등이겠죠. 그게 무엇이든 신경증 환자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 환자 자신이 직면해야만 하는 삶의 과업이 원인입니다."-353쪽

모든 감정은 고통스럽다.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가장 큰 기쁨도 마음을 찌르는 가시이고, 사랑-사랑은 영혼의 위기다. -388쪽

햄릿은 연극, 곧 보이는 것의 영역에 빠져듭니다. 햄릿에게 '있을 것이냐 있지 않을 것이냐(to be or not to be)'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의미가 아니었어요.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일 것이냐(to be or to seem)'를 뜻하죠. 그게 햄릿이 해야 할 결정입니다. '보이는 것'은 행동하는 겁니다. 거짓으로 꾸미고 배역을 연기하고, 이게 햄릿의 모든 문제, 모든 이의 코앞에 놓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있지 않음은 가장이 되고, 가장은 행동이 되는 거죠. 그러므로 '있음(to be)'은 '행동하지 않음(not to be)'이 됩니다. 여기서 햄릿의 마비가 옵니다! 햄릿은 겉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건 행동하지 않음을 뜻하죠. 햄릿이 그 결심을 지킨다면 다시 말해 그냥 있기로 결심한다면 행동해선 안 되죠. 하지만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기로 한다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는 실재보다 가장을 선택해야만 하죠."-441쪽

모든 가정생활은 심리적인 손상이 가장 큰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되게 마련이지.-455쪽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진짜지만, 그 모든 서술부의 주어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콤플렉스는 더 심해진다. 딸은 곧 어머니가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음과 미모를 갖추고 대적하게 된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라잡게 되고, 아들이 커감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밟고 지나가는 세대교체의 거센 물결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신을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놓고 말하겠는가?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질투한다고 인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들에게 투영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신이 아들에게 은밀한 살해 욕망을 품은 게 아니라,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갈망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꾀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이 질투가 더 강렬해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항해 더 파괴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국 아이들이 자신들을 적으로 보고 달려들게끔 만든다. 그들이 두려워하던 상황이 이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자체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 프로이트 박사는 오이디푸스를 오독했다. 오이디푸스의 욕망은 아이의 마음속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속에 있었다-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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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엉망이 된 일본을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렀을 때, 눈에 띈 책이다. 가만히 거닐던 그곳으로 문득 다시 가고 싶다. 교토는 가만히 거닐기에 딱좋다. 그 곳에서 다시 걸어볼 수 있을까. 눈에 띌듯 말듯한 사람들, 오래되고 낡은 창문을 아침마다 닦던 그네들, 전통이 묻어나는 작은 우동집, 깨끗하고 조용한 그곳, 그들은 들끓는 지금에도 보이지 않는 걸음으로 움직인다. 가만히 움직이고, 가만히 생각한다. 눈이 아플 정도로 깨끗하고 마음이 베일정도로 친절하다.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 그때의 그길을 걷고 있는데.   

White day! 연애할 때, 만날 때마다 받았던 가나초콜렛, 10년간 받았다. 오늘 또 받았다. 커다란 장미한다발까지... 피아노위에 장미다발이 늘어간다. 몇년을 지나면 장미이파리들은 예쁜 유리병으로 들어간다... 가끔씩 거꾸로 매달린 장미꽃들을 쳐다보는 것도 재밌다. 꼬리표를 달고 있는 리본은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여전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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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절판


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고 그것이 '간사이'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간사이는 한 시간 남짓만 날아가면 도착한다. 소담스러운 일상이 어울리는 간사이 지방의 풍경이 나를 이끈 것이다. -25쪽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54쪽

당신과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당신이 슬며시 떠오른 까닭은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 자주 당신을 기다린 탓인 듯하다. 기다리는 내내 당신을 떠올리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던 반복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65쪽

철학자의 이름은 단지 종이 위에 쓰인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만으로 사색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러했다. 실개천을 곁에 두고 2킬로미터 가량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은 이름만으로 사색과 명상을 하기에 적합한 산책로였다. 나무가 우거져 풍경이 고즈넉하고 실개천이 흘러 호젓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은 부과적인 수식어에 불과했다. 나는 이제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에 맞는 사색과 명상을 하며 산책을 하면 될 터였다. -148-149쪽

모 대학 사진과 수업 중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 팔을 잃어도 자신을 '나'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잃어도 여전히 자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잃는다면 그때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팔이 내 팔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팔을 내 팔이라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160-161쪽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빛은 풍경들을 조용하게 어루만진다. 나는 빛이 어루만지는 그 풍경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후 네 시의 빛은 적당히 기울어져 주목받지 못한 풍경들까지 닿을 수 있고, 그때 풍경에 번지는 연한 미소를 훔쳐볼 수 있다. 나를 어루만지는 연한 손을 기억해본다. 이내 입가에 번지는 내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버린다. -197쪽

이 기분.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내부를 통해서 외부를 바라보는 일, 혹은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일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의 산책은 특별했다. 걸음걸이의 속도, 산책의 속도, 여행의 속도, 삶의 속도... 속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서 놓치고 사는 것보다 느리샇게 여운을 남기고 사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뭔가 대단한 결심이 서거나 인생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오랜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이따금씩 나를 토닥여 준다면, 그거면 족하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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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뜻하다. 툇마루대신 벤치에 앉아 봄바람을 맞았다. 이곳이 병산서원 만대루라면, 영호루누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 아이스크림, 초콜렛을 먹으며 조잘조잘, 소근소근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덕무산문은 어렵기도 하다. 각주를 찾느라 책장을 계속 뒤적였다. 각주를 페이지 아래에 적어줬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간간히 한문이 빠져 있는 이유는 모르겠다. 아는 만큼 읽었다. 그 시절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구해서 읽고 베꼈을까. 궁하면 통하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걸까. 오로지 책읽기에만 전념했던 간서치, 이덕무의 글은 맑다. 그의 품성은 더 맑다.

봄, 지하철 안이 덥다. 사람들에게서 봄내음이 나는 거 같다. 울긋불긋 등산복이 봄꽃같다. 무늬는 봄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나의 숙제다. 숙제를 제때에 마치지 못하고 계속 밀린다.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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