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끼어들면 그때부터 책은 독자에게 더 의미심장한 실체가 되고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다니엘페낙

책을 읽어 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책안의 세계와 밖의 현실 세계와의 일치와 불일치,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파만파를 일으킨다가 맞다. 

책 읽기에서 책을 읽어 주기로 바꾼다면 들어 줄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읽을 책의 범위와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울 때 책 읽어 준 기억이 났다. 순전히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선호와 계획?에 따라 책을 선택하고 강조하여 읽어 줬던 일, 아이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빨리 잠들어 버린걸까...   

3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았다. 서로의 그늘이 다른 네자매의 이야기,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일상의 언어로 쓸 수 있는 일기의 삶, 그냥 그렇게 사는거다. 책 읽기도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책읽기 때문에 좀 다른 삶보다는 지금 여기에서의 상처가 덧나게 하지 않고 의연하게 통과할 수 있는 연고는 된다. 그래서 책을 읽기도 하고 읽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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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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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자 문득 그가 말을 한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사르트르식의 뜨거운 말의 분출이다. 이봐, 인생에 있어서 인간은 항상 자유로워. 항상 혼자야. 하고 싶은 대로 해. 저 좋을 대로 하는 거야. 그러나 그럴 경우 충고는 구하지 말아. (156쪽)

특히 `현실`을 얘기하는 텍스트들만이 정말로 독자에게 먹혀 들어가는 거야. 그 점 확인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를 기쁘게 해주고 그가 생각한 것이 옳았다고 확인시켜 주고 싶긴 하지만 나는 이걸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직업을 실천에 옮겨온 그동안만큼 현실이 내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본 적은 없다. 현실은 내 손가락 사이로 새나간다. 손을 오므려서 거머잡을 수 없는 물 같은 것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한다. 물이라고? 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내가 허구를 두고 하는 말이냐고 묻는다. 내가 그에게 말한다. 아녜요. 절대로 아녜요. 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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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의 노래를 듣고 쓴, 첫 작품을 읽으며 나에게 들리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다. 지금 마음에 부는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성과 감성의 저울에서 지금 마음이 원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한다. 다시 오지 않는 이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여전히 이성의 무게가 더 많이 나아가 자꾸만 제동을 걸고 있다. 바람은 불어와 자꾸만 속삭이는데 지금의 상태에 그냥 머물러 있기를 종용하고 있다. 사서자격증, 권학사 봉사, 영어학원 등록, 피아노 다시 배우기, 사람들과의 만남 등등... 하고 싶은일들은 이성적인 것이 많은 데 왜 자꾸만 제어를 당하는지. 아무 것도 안해도 괜찮아, 금방 피곤해하고 싫증도 잘내고, 무슨 네가 봉사냐. 그걸 배워서 무얼하려고. 시간과 돈에 비해 결과는 형편 없을지도 등등 속삭이고 있다. 이도 저도 못할 때는 두문불출이 된다. 지극히 수동적인 태도를 으랏차차하고 용기 내 떨쳐 내어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한 엉뚱한 일을 시도하고 있다. 되풀이 되는 태도에 화가 날 때도 있고, 한편으론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감정의 돌풍에 감사하기도 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옛날에 불어왔으면 좋았을 바람의 노래를 지금 듣기도 한다. 지금 들리는 바람의 노래를 같이 불러 볼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다르게 해석한 노래를 지금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듣고 싶어도 어쩌지 못하는, 듣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무력감, 절망, 상실이 들어 있다. 그래도 우린 노래를 들은대로 하려고 한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어느 순간 마음으로 불어오는 바람, 무지 좋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날들이다. 움직여야 하는데... 바람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그건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말장난 같지만 바람(wind)과 바람(want)... 둘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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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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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가 어찌 되었든 나는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상대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일본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런 것에 관계없이 늘 그 상대의 마음을(혹은 신체를) 조금이나마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8-9쪽)

내게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주 힘겨운 작업이다. 한 달 걸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사흘 밤낮을 열심히 써도 결국 그 글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쓰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살아가는 어려움에 비하면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기 때문이다. (17쪽)

"있지, 이거 하나만은 잘 기억해둬. 난 물론 술을 너무 마셨고 취하기도 했어. 그래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건 다 내 책임이야." (50쪽)

"하지만 우리 집이 훨씬 더 가난할걸." "어떻게 알지?" "냄새. 부자가 냄새로 부자를 식별하는 것처럼, 가난한 인간 역시 가난한 인간을 냄새로 알 수 있는 법이라고." (88쪽)

"때로는 말이지, 아무한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 가능할 것 같니?" (102쪽)

그렇지만 그 무덤은 지나치게 컸어. 거대함이란 때로 사물의 본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고 말아. 실제로 말이지, 그 무덤은 전혀 무덤처럼 보이지 않았어. 거의 산 같더라구. (130쪽)

모두들 다 마찬가지야. 무엇이든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떨고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모두 다 똑같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그렇다는 것은 깨달은 인간이 다소나마 강해지자고 노력해야 되지. 그런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족해. 이 세상 어디에도 강한 인간은 없어. 강한 척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뿐이지. (132-133쪽)

거짓말을 하는 것은 몹시 언짢은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두 가지 거대한 죄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우리는 곧잘 거짓말을 하고, 심심하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년 내내 조잘거리고 그것도 진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진실의 가치 따위는 없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144쪽)

모든 것은 지나쳐 간다. 아무도 그것을 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고 있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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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아주 촘촘한 채를 가진 그녀의 글은 나의 어릴 때를 떠올리게 했다... 채에 걸린 자잘한 알갱이들은 그녀를 한없이 괴롭혔다.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글에도 나이가 있는 거 같다... 생활의 전체 얼개는 모양을 달리 하지만 반복하여 나타나는 거 같다. 그때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여전한 괴로움으로 남아있고, 불쑥하고 올라오는 감정들도 힘에 부친다. 억제하고 아닌척 하는 게,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고, 맘과 몸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지금 나에게도 생각없이 '느끼기(97쪽)'와 '반추하지 않기(163쪽)'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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