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르는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
이근화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는 삶을 재구성하는 ‘옳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5쪽)

다름과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후속 세대나 자식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기 어려운 것 같다. 관대함은 자신을 지켜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115쪽)

이전 세대 예술가들의 용기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을 구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보지 않고 내게 달린 두 개의 눈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133쪽)

당신의 눈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욕망을 채우려는 시선과 몸짓에서 온몸이 구멍이 되는 폭발적인 감정을 아시는지. (144쪽)

공기와 같아서 매 순간 호흡해야 하는 가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미래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기반으로 한 분배와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다 같이 조금씩 배워야 할 때이다. (181쪽)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오가는 혁명가로서 네루다의 작품을 우리는 꽤 소비해왔다. 문득 우리 사회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수사와 비유를 이해하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구사할 줄 아는 정치가가 왜 그리 적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공동선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바람일까. (236-2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방으로는 택도 없고, 터무니 없는 곳에서, 그 책방이 심리적인 기차역이 되면 안되는 걸까를, 애쓴 시인의 이야기다. 산문인거 같은데 시처럼 읽힌다. 

한 때 친구와 한 카페가 떠올랐다. 여덟명이 4잔을 주문하여 일인 일주문을 크게 써 붙이고, 알러지 있는데 봉숭아 가지고 와 씻어 달라는, 앞에 앉아 달라는 남자들 등등의 진상들이 기억난다. 우리의 카페 목적과는 한참이나 먼 현실에서 어쩔 줄 몰랐고, 어디까지 흘러갈지도 모를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덕에 작년 말에 닫았다.  

부모님 동반으로는 모임이 가능하다 하여 전원주택에 사는 동생 집에서 세배하러 모였다.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시켜도 먹고, 게임도 하고, 별채 노래방 기계로 노래도 부르고, 사위의 바이올린, 손녀들 콘트라베이스, 첼로 축가 연주도 듣고, 성가대하면서 불렀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할렐루야 등을 목청높여 같이 불렀다.

90세가 되신 아빠의 감회를 들었다. 83세가 된 엄마는 요즘 자신이 좀 성숙해진 거 같단다. 

여섯마리 강아지들과 같이 뒹글고 먹고 마시며 잠자면서 이박삼일이 금방 지나갔다. 18년 된 두눈이 멀고, 치매를 앓는 강아지를 보면서 노년의 삶을 고민했다. 우리 네 자매는 근처에서 모여 살자고... 

동물들을 싫어하는데 강아지들과 같이 보낸 자신에게 깜놀한 동생은 지난 해 할머니가 되어 많은 게 달라졌단다.

난 몸무게가 45킬로 넘어서면서, 커피도 많이 줄어들면서, 무척?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모두 나이가 들면서 전반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 

어찌됐든 아직도 나의 워너비는 북카페이다.   

시인의 여러가지 힘든 고단함이 아주아주 컸을지라도, 그 곳은 분명 누군가에게 등대가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지음 / 열림원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내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몸이 뜨겁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기분을 잃어버리고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13쪽)

나는 항상 무리하는 편이다. 진짜로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티는 미련함이란. (32쪽)

나는 느릿느릿하게 행동하며 근엄하고 완고하며 검소하고 쌀쌀맞을 정도로 간결한 말투로 대답하는 노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무가치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82쪽)

우리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존재의 방황처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이토록 가망 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무력하고 고독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138쪽)

사람이 사람을 기다리는 일, 눈이 오고 바람이 불 때 멀어진 이가 돌아와 친밀감을 회복하는 일, 내가 울면 같이 울던 이를 기다리는 저녁이 온다. (175쪽)

바람직한 삶을 아직 잘 모른다. 그저 바람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있는 일이 최소한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를. (223쪽)

나는 상대방을 나의 감정과 해석으로 끌어당겨 실패한 적이 많다. 나와 분리된 존재 자체의 빛과 감각 그리고 습성까지,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를 그 자체로 발현되도록 두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인지. (238쪽)

나는 사람이 만든 모든 공산품 중에서 책값이 가장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이토록 아름다운 창조물인 책이 적정 가격에 정가로 유통되면 좋겠다. (30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사람이 등을 돌리고 관계를 끊을 때, 유배를 가기 전이나 유배를 간 뒤나,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끝까지 곁에 있어 준 '우선 이상적'에게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세한도]를 보낸다. 논어에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다. 

이러한 사람과 관계가 그립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저자 박철상은 김정희에 대한 최고의 연구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사를 천재라도들 하지만, 사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19세기 최고의 학자로 우뚝 서게 된 배경에는 강력한 정보력이 있었다. 그는 그 정보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21쪽)

숱한 고초를 겪으면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도 황산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황산은 추사의 희망이었고, 그로 인해 추사는 머지않아 이 힘든 제주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랬기에 추사는 황산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황산이 죽었으니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기막히고 억울한 심정을 이제 누구에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제 믿을 건 이재밖에 남지 않았다. 이후 추사는 오로지 권돈인과의 우정으로 여생을 지탱하게 된다. (86쪽)

추사에게 그들(예찬과 황공망)은 시론에서의 두보와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황솔한 느낌이 나는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황솔함이란, 거칠고 간략하고 메마른 느낌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잎이 다 져버린 고목만 홀로 서 있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나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필묵법의 문제로 귀결된다. 붓과 먹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추사가 늘 강조하던 건필과 담묵, 그리고 적묵법의 사용과 연결되어 있다. (127쪽)

추사 자신이 제주도로 유배되기 전에도 이상적은 자신에게 너무도 잘 대해줬다. (중략) 그런데도 추사는 이상적에게 그다지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잘 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머나먼 바다 건너 제주도로 온 뒤 사람들은 추사를 이전처럼 잘 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식을 끊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중인데도 이전과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어렵게 구한 책들을 보내주었고, 청나라의 새로운 소식을 끊임없이 전해주었다. 추사는 여기서 깨달았다. 공자가 왜 겨울이 되어서야 잣나무와 소나무의 잎이 시들이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는지 말이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영원히 푸르다는 것을 깨닫듯이, 유배객 신세가 되어서야 이상적의 의리를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우선! 그대는 진정 송백과 같은 사람이구나. (175-176쪽)

이상적은 13명의 문사들로부터 [세한도]제영을 받은 후 장목의 제첨을 받아 1차 장황을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감상했던 [세한도[에는 13명의 제영만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세한도]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중략) 이후 김준학에 이르러 2차 장황을 하면서 16인의 제영이 포함된 형태로 꾸며졌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1949년, 손재형은 세 사람에게 [세한도]를 보이고 그들의 발문을 받았다. (중략) 이렇게 만들어진 세 사람의 발문은 16인의 청나라 문사들이 남긴 제영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한도]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4-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