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내관의 재미있는 왕릉 기행 쏭내관의 재미있는 기행 시리즈
송용진 지음 / 지식프레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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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서 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의 기준 중에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조물 유형, 건축적.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이어야 한다"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항목은 마치 조선왕를을 일컫는 말처럼 딱 맞아떨어집니다. 조선왕릉은 1408년 조성된 태조대와의 건원릉을 비롯해 1926년 순종황제의 유릉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예술관이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공간 구성과 석물 등이 갖고 있는 예술적 독창성이 뛰어난 건축물입니다. 더욱이 한 조형물이 500년의 역사를 지나며 계속해서 보존된다는 것은 수백 층의 건물을 짓는 일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아닐까요?-14쪽

조선왕실은 42기의 능과 13기의 원 그리고 64기의 묘가 있습니다. 영릉, 광해군묘, 그리고 영회원의 예를 통해 무덤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영릉은 세종과 그의 부인인 소현왕후의 무덤이죠. 이렇게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왕위에서 쫓겨나 일반 왕자(군)이 신분으로 강등된 인물들의 무덤은 '묘'라고 합니다. 광해군은 임금 재위 시절에는 주상전하라고 불렸겠지만 반정으로 인해 쫓겨나 광해군(임금이 되기 전에 불리던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그의 무덤 역시 능이 아닌 묘가 되어 광해군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왕의 자손들(대군 또는 공주, 옹주)이나 후궁들의 무덤도 이처럼 묘를 붙이게 됩니다. 영회원은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왕세자였던 소현세자의 세자비 강씨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소현세자는 다음 왕위를 물려 받을 왕세자였지만 왕이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이처럼 왕이 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뜬 세자와 세자빈의 무덤을 '원'이라고 합니다.(소현세자의 묘는 '소경원') -33-34쪽

정종의 능인 후릉은 개성에 있습니다. 왕릉의 위치만으로도 조선왕조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왕릉은 도성(한양)으로부터 80리 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국법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은 개성으로 정해집니다. 게다가 늘 관리가 되어오던 다른 왕릉에 비해 마치 후손 없는 무연고 묘처럼 후릉의 상태는 오랜 세월 방치한 처량한 느낌마저 줍니다. 후릉은 봉분을 둘러싼 곡장이 이미 파손되었고 뒤의 병풍석도 없습니다. 마치 힘없는 허수아비 왕 정종의 정치 인생처럼 말이죠. 하지만 정종은 시대의 흐름을 아는 동생 이방원보다 한 수 위의 정치가였는지 모릅니다. 상왕으로 물러난 뒤 남은 생을 가족들과 함께 편하게 즐기다 승하하셨으니 말이죠.-82-83쪽

선조는 조선이 개국되고 첫 후궁 소생의 임금으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처럼 자신은 왕이 아니지만 아들이 왕이 되어 신분이 상승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대원군이라 부릅니다. 당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던 덕흥군은 아들(선조)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역시 조선 최초의 대원군 지위를 받아 덕흥대원군이라 불리게 됩니다. -182쪽

숙종은 이렇게 철저하게 신하들의 정치적 대결을 이용해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한 편을 들어주지 않고 왕권의 힘을 강화시켜 나갔습니다. 심지어 사적인 왕비 책봉에서도 이런 환국정치를 이용했으니 말이죠. 재위기간 45년 동안 이런 왕권 강화에 힘입어 숙종은 국방, 외교 등 많은 업적을 쌓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숙종의 치세 중 하나가 역사 바로잡기입니다. 숙종은 비운의 왕 노산군을 복위해 단종이라는 묘호를 종묘에 올렸으며, 억울하게 서인으로 강등된 후 시아버지 인조에게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 빈 역시 복위시켜주었습니다. -228-229쪽

유릉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일제 36년의 치욕과 그 책임을 유릉의 주인공 순종황제에게 떠넘기면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치욕의 역사도 분명한 역사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치욕의 역사를 살펴 그 치욕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선의 마지막 왕릉, 유릉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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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까지 가는 길은 햇님과 소나기가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그래도 햇님이 힘이 셌다. 열다섯시간의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오롯히 나의 감정에 초점을 두고, 서로의 역동으로 치유가 되었다. 나의 주된 정서, 쓸쓸함과 외로움의 근원에 다가가 위로했다. 아직까지는 놓고 싶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는 나의 바램을 리더는 인정해주고 보호해 주었다. 더이상 다가 올 수 없게 만드는 나의 모습,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의 높이와 폭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 조금씩 틈을 만들어 가고 있고, 집단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참여했다는 자체를 대견하게 여겨줬다. 함께 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마치고선 바로 시흥으로 달려갔다. 교감직무연수에서 강의를 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 몇일을 고민하여 만든 자료는 하나도 못쓰고 질문과 대답으로 두시간이 흘렀다. 그들의 감정, 발령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걱정 뿐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후회와 자책을 고스란히 받아줬다. 리더의 자리까지 가기 위해 노력했던 그네들의 지치고 고단한 마음과 몸에서, 그래도 상담자라고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에서 내 마음 속에서는 여러가지의 감정들이 오갔다. 우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듣기와 말하기를, "자~ㄹ"하도록 당부하고 돌아왔다. 감정의 바다 위에 떠있는 인지라는 배(船), 곧 감정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는 집단상담의 리더말씀이다. 늘상 생각이 먼저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감정에 많은 생각이 머무른다. 감정, 느낌, 정서... 뭘까? 예비교감선생님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그러면 교사들도 학생들도 행복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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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역할 훈련 토머스 고든의 '역할 훈련' 시리즈 3
토머스 고든 지음, 장승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즉, 집단 구성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리더를 따르는 것이 그들의 욕구가 충족될 것이라는 약속을 의미할 때만, 리더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획득하고 유지한다. -37쪽

온건한 것으로부터 주체할 수 없이 강한 것까지 생겨나는 온갖 종류의 감정들, 즉 초조, 분노, 낙담, 실망, 고통, 공포, 허망함, 절망, 미움, 비통, 의기소침 등. 이런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해롭다. -113쪽

리더는 자신의 집단을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집단으로 키우려는 노력의 초기 단계에는 집단을 통제하거나 지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것을 억제하지 않도록 전면에 나서는 것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의 의미는 리더는 이런 게임의 초기에는 자신이 기여하는 바를 단지 수용하고 그리고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언어적인 응답에만 국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리더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은 적극적 듣기, 소극적 듣기, 말문을 열게 하는 말, 동의적 응답이다. 집단 구성원들이 리더에게 의존하는 것이 줄어들기 전이나, 리더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전에 리더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199쪽

즉 효과적인 리더는 집단 구성원들의 욕구와 리더 자신의 욕구를 상호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다양한 기술을 언제 어디서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유연성과 감수성을 반드시 얻도록 해야 한다. -244쪽

요약하면, 효과적인 양방향 의사소통은 일치성(명확한 발신)과 적극적 듣기(정확한 수신)를 필요로 하며 두 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노출되는 위험성과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위험성. 이것이 바로 효과적인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내적 안정과 개인적 용기를 요구하는 이유이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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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습한 바람이 불더니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렸다. 오는 길은 그야말로 앞이 깜깜했다. 아주 조금씩 움직여 겨우 왔다. 처음 차를 끌고 나간 날이 꼭 이러했다. 그때는 눈까지 내렸다. 살면서 이런 때가 가끔씩 있다. 혼자만 남아 있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 주변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 가득했다. 길위의 차들은 아주 조심조심,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조심이 필요한데. 인도(人道)가 차도(車道)보다는 우선되어야 하는데. 사람은 간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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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품절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대중들이 생각한 인문학은 인문학자들의 생각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중들은 좀 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피부에 와 닿는 인문학을 요구한다. 문화유산과 역사 인물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감하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얻으려 한다. 인문학은 그러한 콘텐츠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문학자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과 소통하는 자세과 필요하다. -8쪽

퇴계를 비롯한 유교의 지적 거장들이 추구한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의 삶, 혹은 성(誠)과 경(敬)의 공부 자세는 인간의 건전한 삶에 대한 희구와 염원의 표출이다. 그것을 유기적으로 고려하는 인간 사회와 우주의 색깔은 다양하다. 그것은 유교 사회가 지향한,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정신의 지시에 의해 드러난다. 이 중에서도 함양과 체찰의 공부, 그것이 걸어가려는 길은 '죽임'보다는 '살림'이요, '답답함'보다는 '시원함'이며, 이 땅 위의 '푸름'을 향해 삶의 약동을 구가할 수 있는 미학과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17쪽

그런데 요즘은 안타깝게도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없다. 그저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차도만 있고, 인도가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능과 기술만 중시하고,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다. 인간의 걸어가야 할 길을 버린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인간의 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58쪽

"추사와 그의 시대를 읽어 보면,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과 광기 어린 삶을 만나게 됩니다. 청나라로부터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개혁하려는 북학파인 추사를, 지긋지긋하게 탄핵하고 공격해 죽이려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이 땅의 어떤 거대한 보수집단하고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저는 '추사와 그의 시대 이야기'를 통해 그 반복되는 슬픈 일을 나 스스로 각성하고 경계하고 싶었습니다."-104쪽

사의재에서 쓴 다산의 글은 그의 성정을 뚜렷이 드러낸다. 다산이 말하는 4가지 의로움이란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을 가리킨다.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서 귀양가 살던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음이 있거든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음이 있거든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음이 있으면 서둘러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음이 있음이 있으면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했다. 마땅하다(宜)는 것은 의롭다(義)는 뜻이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면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게 마련이러서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란 것이다. -108쪽

서울이라는 말은 높이 올라간다는 뜻의 접두어 '솟'과 너른 들이라는 뜻의 '벌', 또는 울타리라는 뜻의 '울'이 합쳐진 말이다. -177쪽

강이나 하천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재화와 문물, 문화의 Input과 Output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할 때이다. 즉, 두 요인의 균형이 상실되어 Output의 단순한 통로로서 존재할 때,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은 상실된다. 고려.조선의 두 왕조 기간 동안 이 지역에 금강 일대의 세미(稅米)를 집적하는 조창(漕倉)이 설치된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이 중앙으로 보내졌다. 금강으로 상징되는, 하천과 강이 지니는 문명과 물질,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 역할은 고려왕조가 성립된 10세기 이후부터 근대 20세기까지 상실된다. 특히, 일제는 군산항을 개항해 한반도에서 생산된 미곡을 일본에 대량으로 유출시켰다. 강과 하천이 지니는 이점을 상실한 채 Output의 단순한 통로로서 기능한 구체적인 예다. -244-245쪽

실존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 존재는, 항상 자기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가? 저기 어제 내가 지나간 길이 있다. 그 길을 오늘 내가 지나왔다. 이길은 같은 길인가? 내가 늘 바라보는, 저기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정말 항상 그 모습 그대로인가? 저기 푸른 소나무는 항상 그 소나무일런가? 어쩌면 이런 물음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 대답은 이미 응답이 아닌 또 다른 물음이다. 내 존재의 길조차도 항상 흐늘거리며 바뀌었다 돌아오곤 하는데, 무슨 '항상' . '늘' . '그러함'이 있으랴! 인생무상(人生無常)! 그것은 부정정 시각의 허무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요, 진실이요, 자연이다.-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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