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그림 앞에서, 그림 뒤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겹쳐보면서 수많은 감정의 결들을 하나씩 글로 옮겼다는 김혜리의 에세이를 읽다. 그녀의 글은 또 다른 그림같다. 내가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과의 차이 때문이리라... 로저스학회에 갔다. 수많은 로저리언들이 바라는 'Congruence,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Empathy'와 겹친다. 일치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그리고 공감이다. 살아있는 현실속의 글을 읽고 쓰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그대의 말을 수용하고 공감하면서도 온전히 내가 될수 있는 말과 글... 가식과 꾸밈없는 단순하고 담백하게. 그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비트겐슈타인[토끼-오리]         펠릭스 발로통[거짓말]   오귀스트 로댕[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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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그림산문집
김혜리 지음 / 앨리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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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수수께끼로 우리 안의 탐정을 자극한다. 두 남녀 중 거짓말을 한 쪽은 누구일까? 남성 작가 줄리언 반즈는 미술관에서 [거짓말]의 유화판을 처음 봤을 때 무심코 여자가 거짓말쨍이라고 인식했다고 2007년 [가디언]지 칼럼에 썼다. 여자가 속삭이는 모양새인데다가, 남자의 표정과 다리 포즈가 꾸밈없다는 것이 근거였다. 여인의 유난히 풍만한 실루엣을 보고 "배 속의 아기는 당신 아이에요"라는 대사까지 상상했다고 한다. 남여의 차이일까? 여인의 자세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남자의 얼굴에서 유혹자의 득의양양함을 읽고 반대 결론에 이르렀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거야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이 따로 없지 않는가. 피해망상을 거두고 다시 그림을 본다. 마침 프랑스어 사전이 'mensonge', 즉 거짓말이란 이 단어는 '착각'도 의미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니 줄리언 반즈와 나는 다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사랑할 때 상대를 나를, 인간을 신으로, 기도를 율법으로 착각한다. -110-111쪽

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술은 행복과 불행, 섹시함과 분노를 모두 부풀리기에, 아주 잠시나마 삶이 꽉 차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155쪽

타인의 몸이 아주 가까워져 마침내 나와 그의 거리가 제로, 나아가 마이너스가 될 때 인간의 육체는 홀연 하나의 장소로 변모한다. 자건거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코를 묻은 아빠의 등은 너른 평야이고, 최적의 자세로 포옹한 연인에게 서로의 품은 경건한 성당이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도입부에서 거대한 사막의 능선을 보여주는데, 잠시 후 변화한 카메라 앵글은 그 풍경이 여인의 벗은 몸이었음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상대의 몸을 극접사로 더듬는 이의 시각과 촉각에 감각된 연인의 겨드랑이는 그 어떤 바다보다 완벽한 곡선을 지닌 만灣이며, 쇄골에 패인 웅덩이는 애틋한 해협이다. 타인의 육체만이 아니다. 심한 통증이 엄습하면 우리는 갑자기 몸을 하나의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자궁은 동굴이 되고 내장은 협곡이 된다. 격심한 감정은 혈관을 달리며 전신에 메아리친다. 영혼과 의식이 거주하는 우리 안의 차원 없는 공간이 불현듯 실루엣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59-160쪽

닿을락 말락한 [대성당]의 두 손은, 남은 생을 공유하기로 결단한 연인에게 선사할 만한 이미지다. 타인과 손바닥 전체를 깊이 맞대면 처음에는 흡족해도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촉감이 둔해지고 결국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심지어는 땀이 배어 불쾌해질 때도 올 것이다. 손을 잡는 행위로 구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결혼을 통해 서로의 몸과 영혼을 구석구석 탐사한 다음, 노년에 이르면 다시 가볍게 손을 잡고 산책하게 되리라.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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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발전하려면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의 생산이 향상되어야 하는데, 서비스업에 치중하게 되었다. 서비스부문은 제조업부문보다 속도가 느리고 국제 교역도 어렵다. 또한 국가의 적절한 규제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범위와 경우의 수를 줄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필요하다. 복지는 실업자에게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것과 다름없고 부자들에게 부를 창출할 동기까지 잃게 만든다. 부자와 빈자의 출발점이 적어도 동일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금융부문과 실물부분의 시차를 줄여야 한다. 보이는 돈과 보이지 않는 돈의 차이를 실감할 정도의 시간간격이 필요하다. 모든 조직은 물질적인 면만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 상호간의 연대, 정직, 신뢰가 바탕이 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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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이 책에서는 자유 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 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야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즉,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14쪽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보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 나라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55쪽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투자와 성장을 위축시켰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졌어도 우리는 대부분 진정한 경제적 안정을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과 노동 시장의 자유화는 금융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해서 불안정한 세상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정책이 약속했던 이른바 '성장 촉진'마저 실현하지 못했다.-93쪽

정리하자면 미국 평균 소득의 구매력이 높은 것은 많은 수의 미국 시민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견뎌 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의 생활수준을 비교할 때 노동 시간의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나보다 50퍼센트 돈을 더 많이 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일하는 시간이 내 두 배라면 생활수준이 나보다 더 높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50쪽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과학 인프라,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갖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 회사법 및 기타 상거래 관련 법률, 이들이 설립한 회사에서 고용한 엔지니어, 경영진, 노동자 등을 양산한 교육 시스템, 회사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던 금융 시스템, 새로 개발한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특허법과 저작권법 등이 모두 그 예이다.-220쪽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런 조직화의 결과는 보잉이나 폭스바겐과 같은 거대 기업일 수도 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많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일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리스크 감수를 장려하는 일련의 제도가 필요하다. 유치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교역 정책,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본'을 제공하는 금융 시스템, 제대로 된 파산법으로 자본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좋은 복지 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는 제도, 연구개발과 노동자 훈련에 관한 공공 보조금과 규제 정책등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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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i 2012-01-0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싶네요 !
 

사람, 사물, 상황에 대한 개념 또는 정의에 대한 글을 읽으며, 눈앞에 드러내고 있는 아이콘의 의미는 무얼까. 이게 이러하다라는 개념을 갖기까지의 절차랄까, 그러한 내용들을 해체시켜 하나씩 알려주었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들을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의 매뉴얼이라 하지만, 어렵다. 다만 말을 할 때 상황과 대상에 맞게 정확한 개념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또한 상대의 말과 행동에서도 추측과 억지를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나와 그대의 아이콘에 초점을 맞추어 세상을 읽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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