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수수께끼로 우리 안의 탐정을 자극한다. 두 남녀 중 거짓말을 한 쪽은 누구일까? 남성 작가 줄리언 반즈는 미술관에서 [거짓말]의 유화판을 처음 봤을 때 무심코 여자가 거짓말쨍이라고 인식했다고 2007년 [가디언]지 칼럼에 썼다. 여자가 속삭이는 모양새인데다가, 남자의 표정과 다리 포즈가 꾸밈없다는 것이 근거였다. 여인의 유난히 풍만한 실루엣을 보고 "배 속의 아기는 당신 아이에요"라는 대사까지 상상했다고 한다. 남여의 차이일까? 여인의 자세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남자의 얼굴에서 유혹자의 득의양양함을 읽고 반대 결론에 이르렀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거야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이 따로 없지 않는가. 피해망상을 거두고 다시 그림을 본다. 마침 프랑스어 사전이 'mensonge', 즉 거짓말이란 이 단어는 '착각'도 의미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니 줄리언 반즈와 나는 다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사랑할 때 상대를 나를, 인간을 신으로, 기도를 율법으로 착각한다. -110-111쪽
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술은 행복과 불행, 섹시함과 분노를 모두 부풀리기에, 아주 잠시나마 삶이 꽉 차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155쪽
타인의 몸이 아주 가까워져 마침내 나와 그의 거리가 제로, 나아가 마이너스가 될 때 인간의 육체는 홀연 하나의 장소로 변모한다. 자건거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코를 묻은 아빠의 등은 너른 평야이고, 최적의 자세로 포옹한 연인에게 서로의 품은 경건한 성당이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도입부에서 거대한 사막의 능선을 보여주는데, 잠시 후 변화한 카메라 앵글은 그 풍경이 여인의 벗은 몸이었음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상대의 몸을 극접사로 더듬는 이의 시각과 촉각에 감각된 연인의 겨드랑이는 그 어떤 바다보다 완벽한 곡선을 지닌 만灣이며, 쇄골에 패인 웅덩이는 애틋한 해협이다. 타인의 육체만이 아니다. 심한 통증이 엄습하면 우리는 갑자기 몸을 하나의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자궁은 동굴이 되고 내장은 협곡이 된다. 격심한 감정은 혈관을 달리며 전신에 메아리친다. 영혼과 의식이 거주하는 우리 안의 차원 없는 공간이 불현듯 실루엣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59-160쪽
닿을락 말락한 [대성당]의 두 손은, 남은 생을 공유하기로 결단한 연인에게 선사할 만한 이미지다. 타인과 손바닥 전체를 깊이 맞대면 처음에는 흡족해도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촉감이 둔해지고 결국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심지어는 땀이 배어 불쾌해질 때도 올 것이다. 손을 잡는 행위로 구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결혼을 통해 서로의 몸과 영혼을 구석구석 탐사한 다음, 노년에 이르면 다시 가볍게 손을 잡고 산책하게 되리라.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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