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과 표지를 보고 황지우로 착각하고 구입하여, 그렇게 알고 읽으면서도 황지우가 참 많이도 변했구나하면서 저자를 다시 확인하니 황동규였다. 이럴수가... 순전히 겉모습에서 착각을 하였다... '기다림이 없으면 끄트머리도 없지요(p38)',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것이 마음 설레게 하는군요(p54)'가 오늘의 화두다. 오해와 불통으로 자의든 타의든 관계를 끊어야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긴 시간의 감정의 찌꺼기까지 올라오면서 남의 차를 긁기도 하고, 버스와 부딪힐 뻔한 일까지, 하루가 무척 길었다. 겨울밤 0시 5분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다리면서 결국 사라지게 될 혜성까지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래도 온다면야 희망이라도 있지, 과연 올까를 마음 속으로 재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이유는 뭘까... 기다림이 없다면 끝이 없으니까. 막차가 온다는 걸 안다는 건 설레게 하니까. 결국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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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0시 5분
황동규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3월
구판절판


비릿한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맘때가 정말 마음에 든다.
황혼도 저묾도 어스름도 아닌
발밑까지 캄캄, 그게 오기 직전,
바다 전부가 거대한 삼키는 호흡이 되고
비릿한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中-10쪽

있는 것과 가는 것이
서로 감싸고도는 고요,
때늦은 수국과 웃자란 풀들이 마음대로 시들고
사람들이 목젖에서 끄집어내며 여미는 소리
문득 빈 말이 된다.

-이런고요 中-12쪽

세상에 헛발질해본 사람이면 알지,
저 소리,
밖으로 내놓지 않고 마냥 안으로 끌어만 당기는
저 음성.
'이 저녁 견딜 만하신가?'

-늦가을 저녁 비 中-14쪽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이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했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겨울밤 0시 5분 中-21-22쪽

이 세상 뜰 때
제일로 잊지 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무병(無病) 맛이 아니라 앓다가 낫는 맛?
앓지 않고 낫는 병이 혹
이 세상 어디엔가 계시더라도.

-삶의 맛 中-29쪽

그냥 초록도 아니고 빛나는 연초록도 아닌
그 둘을 보태고 뺀 것도 아닌
초록 불길 속에서 막 나온 초록 불길 같은,
슬픔마저 빼앗긴 밝은 슬픔 같은,
이런 색깔이 이 세상 어딘엔가 있었구나.

-안성 석남사 뒤뜰 中
-67쪽

그래 그 가을의 문턱에서 지금 뭘 해?
여름내 속으로 미워한 자 하나
내처 미워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
그 할까 말까가 바로 피 말리는 일,
아예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 미워하는가
마음에서 슬쩍 지워버리는 거야.
아니면 어느샌가 바위의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저녁,
바위의 피부를 간질이는 가벼운 햇볕,
볕이 춤춰, 하면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가만히 춤추다가
생판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한번 헛헛하게 웃든가?

-헛헛한 웃음 中-112-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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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비오는 길위엔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참을 걸려 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 위한 연수... 동일한 주제로 강사만 다르다. 늦게까지 책읽은 덕에 강의내내 졸다가 낙서하다가 황지우의 시를 읽으면서 다섯시까지 있었다. 난 원하는 게 이런 것이고, 너가 원하는 건 이런 것인데, 서로의 눈으로 보면 한참이나 다르다. 상대적이다. 우린 원하는 걸 얻지 못하거나, 채워지지 않으면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다. '공중그네'에는 우리의 페르소나 뒤에 감춰진 얼굴들이 고스란히 나오고 있다. 경계와 강도强度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한 순간에 무너져 어쩔 줄 모르는 우리들이 나온다. 정신과의사 이라부의 종횡무진한 처방으로 요절복통하며 낫게되는 과정이 유쾌하다. 개인의 삶이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나의 의지와 선택, 타인의 호의와 예민함과 인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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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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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라, 이라부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세이지의 인생은 고슴도치 그 자체였다. 열두 살 때부터 어깨에 힘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고, 이날 이때까지 상대를 위협하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정학을 먹어 더 이상 나팔바지를 입고 활개 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마치 발가벗겨진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지금도 기성복 양복에 카롤러(도요타의 인기 차종)를 타면 똑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하기야, 야쿠자는 모두 그렇다. 자기뿐만이 아니다. -31쪽

"중요한 건 훈련입니다. 지상 5센티미터 높이에서 건너는 평균대를 지상 10미터에서도 건널 수 있느냐, 그게 일반 사람과 서커스 단원의 차이니까 넘어서야 할 건 기술이라기보다 오히려 공포감이라고 해야겠죠."-79쪽

뻔뻔스러운 인간은 그 뻔뻔스러움을 주위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게 만듦으로써, 점점 더 뻔뻔스럽게 변해간다. -151쪽

자유라는 건 분명 자기 손으로 붙잡는 것이다. -162쪽

"선생님, 자꾸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강박증 치료도 생각 좀 해보세요."
"맞다, 그렇지." 머리를 긁적거린다. "구토증하고 근본 원인은 같으니까, 다른 걸로 분출해버리면 좋을 거 같은데."
"다른 거요?"
"정작 토해내야 할 감정들을 쌓아두고 있으니까, 위 속에 든 음식이 대신 나와버리는 거잖아. 강박증도 그 연장선상이지. 한밤중에 베란다에 서서 허공에 대고 다른 사람 욕이라도 실컷 떠들어보면 어떨까?"-273-274쪽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신에게 감사하자.-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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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빵을 만들었다. 맛있는 냄새와 즐거운 음악이 진동을 한다. 행복하다... 사물과 현상을 예민한 촉수로 바라보고 느끼면 무지 달리 보인다고요. 얕게 보지 말고 깊게, 오래동안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얼어붙은 마음을 깨뜨리는 도끼들, 즉 책들에서 마음을 울렸던 글귀들을 또 다른 말로 들려주고 있다... 어젠 서울대공원 산림욕장길을 걸었다. 불과 몇일 전까지도 빨갛게 물들었던 그 길이 이젠 낙엽만 있다. 갈색뿐이다. 봄.여름.가을이 지나갔을 그 곳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출구로 가서 입구로 내려왔다. 가파르게 시작해서 완만하게 내려오는 길, 그제서야 주변이 제대로 보이는 여유가 생긴다... 대책없는 긍정과 낙관이 밀려왔다가 지나간다, 좋은 게 좋다, 이건 아닌데, 에잇, 어쩌라고, 오늘만은 이 행복감을 그냥 느끼고 싶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는 도끼가 된 책이 자신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려 잠을 깨우고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는데...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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