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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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사라진 모든 것-제도, 가치, 금기, 이데올로기, 신념-이 계속 은밀히 살아가면서, 음험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대의 신들이 기독교 시대에는 마귀의 형상을 취했듯이 말이다. 사라진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기에, 흔히는 드러내 놓고 우리를 지배했던 권위보다 더 위험스럽다. 관용과 투명성의 우리 시대에, 금지와 통제, 불평등은 하나씩 사라진다. 그러나 그건 정신적 영역 속에서 더 잘 내재화되기 위한 것이다. (33쪽)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제한의 기술 발전 덕분에 모든 것이 실재성의 과잉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면, 인간이 자신의 극단적 가능성에까지 갈 수 있게 되면, 인간은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을 추방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존재의 속성은 자신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 기술의 본질은, 전체에 대해, 그리고 전체에 반대하여 자신의 가능성들을 철저히 전개하고 불태우는 것이다. 그 전체 속에는 조만간 자신의 사라짐을 내포하고 있는 인간도 포함된다. 어떤 점에거 현실의 최고 단계인 완벽하게 객관적인 세계로 인도하는, 이 저항할 수 없는 과정의 최후에 이르면, 더 이상 그 세계를 바라볼 주체도 없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계는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우리의 재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더 이상 가능한 재현도 없다. (45쪽)

세상을 세밀하게 직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의미와 외양들을 모두 헤아릴 능력이 없기 대문에, 그걸 보충하기 위해 시리즈적이고 디지털적인 이미지는 엄청난 자가 증식을 통해 그 공허를 채워 나간다. (71쪽)

모든 과학은 세사오가 인간 자신으로부터 인간의 멀어짐과 사라짐의 대가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인간적인 것의 제거, 인간이라는 주체의 제거, 그리고 물론 신의 제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것들의 사라짐과 함께 공허가 시작된다. 의미와 가치의 사라짐, 인간적 재현의 사라짐이 있고, 사라지면서만 탄생할 수 있는 객관적 현실, 그리고 인간이 있다. 존재는 사라짐이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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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은 에브리데이와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지난 날을 돌아보며,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 후회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년에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젊었을 때 인생의 소중함을 그때 알았더라면, 아버지가 에브리맨이라는 보석상으로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자식들에게 남겨 줄 무언가를 이룬 거에 비한다면, 주인공 그는 자신의 욕망으로 지나 온, 한 때의 황홀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옆에 두고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135쪽)"를 중얼거린다. 결국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거지만 "미리 알 도리는 없다(167쪽)"는 거, 내가 누군가를 애도하듯, 누군가도 나를 애도 할 것이라는 거... 평범함 속에 귀한 것이 들어 있고, 평범함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인 거 같다. 어느 순간 치열한 삶이 슬픔으로 바뀌는 노년은 누구에게나 올 것이고, 죽음 또한 누구나 겪게 된다. 주인공의 이름이 없는 '에브리맨'은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각각의 우리다.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가면 된다.(191쪽)" 우리가 일하는 평범한 매일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이 되니까. 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힘이 아주 없을 때, 가장 큰 후회가 밀려오고, 죽음을 앞두고 잘 살았다고 큰소리칠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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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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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몇 분이 안 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種)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23쪽)

이 차분하고 분별력 있는 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모의 이혼으로 생긴 어려움들을 되새기면서 반평생 이상 품고 살았던, 부모의 화해라는 사라지지 않는 환상을 고백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는 작은 소리로 말하며 딸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품 안의 그녀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83쪽)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되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이 부끄러웠다. (96-97쪽)

"뭐든지 견딜 수 있어." 피비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설령 신뢰가 깨져도 말이야. 솔직하게 말만 한다면,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파드너가 되겠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남는 건 가능하단 말이야. 하지만 거짓말이라니...... 거짓말은 정말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값싸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거야. 다른 사람이 수모를 겪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거짓말은 아주 흔하지만, 당하는 쪽이 되어보면,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거야. (126-127쪽)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할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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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만, '카페에서 책읽기'를 가볍게 챙겨들고 떠났지만, 가방 깊이 그대로 있었다. 계획되지 않은 떠남은 난감한 그 자체였다. 그냥 떠나면 되지 뭐. 발 닿는 데 가서 놀면 되지 뭐. 어디 가당치나 한지. 발을 어디에 닿아야 할지. 그래서 계속 달리고 달려 간 곳은 늘 가던 곳이었다. 일을 하지 않을 때 쉼을 원할 때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잘 말해 준 기간이었다. 놀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책만 읽기도, 구경을 다니기도, 먹기만 하는 거도, 누군가를 만나는 거도, 모두 치우침없이 균형잡혀야 한다는 거다... 그래도 나의 장점, 어디에나 자리 잡고 책읽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만 했다... 나이들어 북카페가 나의 워너비다. 카페에서 책읽기를 죽을 때까지 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떨린다...랄라라... 카페에서 책읽기라, 읽는 이는 정작 주변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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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책 읽기 - 뚜루와 함께 고고씽~ 베스트컬렉션 39 카페에서 책 읽기 1
뚜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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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과 들을 말들을 모두 쏟아내고 북극의 그들처럼 이제야 겨우 혼자가 되었다. 나는 가끔 우울하고 고독하고 그립겠지만 그럴 때면 그들의 허풍에 깔깔거릴 거다. 그것이 진실이건 허풍이건 상관없이. 어차피 인생은 진 반 농 반 아니겠어. (p67)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마.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없다거나 그 어떤 것의 지배도 받지 않으면서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어. 사랑은 정신적일뿐 아니라 동시에 물질적인 것이라는 게 정답이다. (p90)

맙소사,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완전한 인간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에브리맨! 당신은 오히려 반대로 완전하지 못한 노년에 대해 분노하고 있군요! (p104)

악몽 같은 그날의 시작은 '아주 작은 규칙 위반'에 지나지 않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p164)
'사소한 일로 운명이 좌우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p165)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사소한 것들을 지키는 대단한 실천에 있다. (p168)

"이것 봐. 그렇게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을 필요 없어. 사랑이란 두사람이 서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거라네. 바둑판은 실은 정사각형이 아니야. 가로 42.5센티미터고 세로는 그것보다 3센티미터 더 길지. 그러니까 보는 거와 달리 바둑판은 정사각형이 아니라 직사각형인 거야. 왜 그런 줄 아나? 그건 바둑을 두는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지. 심리적 거리랄까. 사랑이라는 건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흰 돌과 검은 돌로 각자 자신의 집을 짓는 거야. 흰 돌과 검은 돌은 결코 섞일 수 없는 거라네. 세상에는 얼마나 변수가 많은가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면, 그 정도의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p180)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지배도 제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길고 긴 내 인생에서 거듭 확인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그 두 가지는 바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걸." (p204)

나는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 나는 나를 너무나 깊이 그리고 너무나 오랜 침묵 안에 싸두었던 탓에 어떤 말로도 나라는 짐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단지 다른 식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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