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방 - 심리치료소설
조용범 외 지음 / 더트리그룹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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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신호예요. 감정이 없으면 우리는 소통할 수 없어요." (74쪽)

"감정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려줍니다.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게 유도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기에 우리 몸을 숨기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은 어떤 장애물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하지요." (75쪽)

인간이 가진 ‘기억‘이라는 능력은 학습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억에만 얽매이면 몸은 현재를 살지라도 마음은 계속 과거를 살게 됩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우리를 괴롭힐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 충실하려 노력한다면, 지나간 과거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시간은 과거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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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설, 촌철살인으로 미소가 나오다가도 씁쓸한. 그래, 그 까이 껏, 이까지 꺼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 많다는 것. 일의 경중이나 부피를 누구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을까마는, 글을 읽으면서, 뭐 그리 바둥하게 살 일이 있을까, 쉬이쉬이 그냥 흘러가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될 거 같은 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눈비비고 드려다 보면 하나같이 무겁고 옮길 수 없는 발등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었다. 이걸 어쩔거야, 웬만해선 눈깜짝도 안하는 우리들, 아무렇지 않게 마비된 마음들, 그럼 어떤 일에 눈이 깜빡여지고,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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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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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최 형사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노트북 전원을 켰다. 봄이니까. 봄이니까. 최 형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또 한 번 난분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24쪽)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나도 눈높이를 좀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26쪽)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이번엔 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또 혼잣말을 했다. 달은 좋겠다. 다음 달에도 그냥 달이어서...... 그는 그러고선 침낭 속에서 허리를 잔뜩 웅크렸다. 서서히, 잠이 올 것 같았다. (132쪽)

아아아아, 아이는 그제야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제 엄마의 목소리가 그냥 장난 같은 거였구나,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계속 비명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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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은 곧 '삶의 연습'이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뒷 표지 글)

엄청 불편하고 답답한 주제, 죽음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끝을 알 수 없다가 가장 우울하다. 그리고 명징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부분도, 온갖 의료기의 도움으로 알 수 없는 상태로 있을 수도, 적어도 죽는구나하는 순간에서 죽고 싶다. 여기서 적어도라는 바램은 아주 큰 복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죽는 순간도 모를 수 있는데 죽은 후의 모습이 자꾸만 걱정거리로 다가오니, 이는 죽음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리라. 온전한 정신에서 깨끗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죽는다는 막연한 생각까지 생각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죽음은 절대로 그렇게 오지 않으리라...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니 그분들과 연결하여 읽게 되었다. 많이 아프시다면, 간병의 일과 병원 투병, 돌아 가시면 등등이 진하게 와 닿았다. 나의 경험은 이십대 이후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두세번 쓰러지고 한번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정도까지 가본 나로서는 늘 지금 이순간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모든 것을 zero로 만들어 살고 있다. 죽음에 둘러 쌓여,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나날, 그래서 삶의 연습이 죽음연습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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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 잘 늙고 잘 죽는 것을 넘어 잘 사는 것에 대한 사색
이경신 지음 / 동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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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젊은이에게는 시간이 넘쳐나는 듯해서 시간의 소중함이 경시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젊은이는 시간보다 공간에 집중할지도 모른다......반면, 노인들에게는 공간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미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니 얼마나 시간이 소중할까? 닥쳐올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픈 마음, 남아 있는 시간을 무한히 늘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하기만 미래의 시간은 과거만큼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더는 미래를 위한 계획도 힘들기만 하다. 오히려 미래라는 시간에 무관심함으로써 죽으므이 불안을 견뎌낼 힘을 얻는 쪽을 노인이 택한다고 해서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 즉 이미 생기를 잃은 과거가 그가 소유한 시간의 거의 전부가 된다. 세상이란 공간을 잃은 늙은이라면, 미래의 등을 돌리고 과거를 추억하면서 자꾸만 자기 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41쪽)

그는(스캇 펙)죽음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기 존재의 영원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자의식의 영원한 각성 상태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이 영원히 잠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분면 두려워할 만하다. 그러나 죽음이 영원히 평화롭게 잠든 상태인지, 죽음 이후에도 인간 개인의 자의식이 깨어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124쪽)

그 누구도 자신이 소장하던 물건을 남김없이 써버리거나 빈틈없이 정리해두고 죽음을 맞지는 못한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153쪽)

생명체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데, 죽음을 통해 삶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는 믿음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설사 죽음 이후 다른 삶이 계속해서 주어지지 않은들 어떠리. (209쪽)

죽은 사람을 기릴 유족이 없다면 장례식 절차가 다 무슨 소용일까? 적어도 고인을 기억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장례식의 존재 의미가 잇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은 죽은 자가 마지막까지 개인적 욕망을 투사하는 자리가 되기보다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애도를 시작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 맞는 듯하다. (232쪽)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떠내려가는‘ 것과 닮은 것이 바로 죽어가는 자의 곁을 지키는 사람의 일상이다. 그렇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불침번‘이다. (244쪽)

아무리 직업이 좀 더 자유롭다고 해도 죽어가는 사람의 동반을 전적으로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면 어딘가에서 ‘돌봄‘을 쥐어 짜내야 한다. ‘돌봄‘이 나오는 자리는 심장처럼 부드럽기보다는 못이 박힌 발바닥처럼 딱딱할 것이다.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돌보아야 하고, 그 일을 하면서는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오언스, [잠들지 못하는 밤], (어머니를 돌보며)

이토록 ‘돌봄‘을 쥐어 짜내야 하는 시간 동안, 유감스럽게도 병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소위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동행해야 할지에 대해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247쪽)

적극적 안락사를 향해 도덕적.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반대할 수 있다. 의료적 연명치료에 대달리는 노인에 대해 발악을 한다면서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생의 마지막에도 개인적 선택을 존중받길 원한다고 해서 특별히 놀라운 것은 아니다. 자시느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간섭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까? 죽는 그 순간까지 연명치료를 받건, 인격이 붕괴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적극적 안락사를 선택하건, 그 선택은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어차피 우리의 삶 자체가 완벽하게 도덕적이지도 않은 마당에 죽음만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할 까닭도 없다. 아니, 도덕적이기 어렵다. 각자의 죽음은 각자의 삶과 닮아 있을 따름이다. 제삼자는 도덕적 삶, 도덕적 죽음을 조언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맞다. (304쪽)

왜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위험한 사회인지 물어봐야 한다. 왜 사회적 약자가 더 병들고, 더 위험한 노동에 종사해야 하고, 더 위험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죽음에 더 노출되어야 하는지, 왜 이통록 위험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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