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치고 있다. 울고 싶다. 쉬고 싶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좌절될 때, 인정받지 못할 때, 비교 당할 때, 부러움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같이 있을 때, 바보 같을 때, 무력할 때, 모가지 위까지 올라오는 목소리를 눌러야 할 때, 엉덩이를 덜썩 들고 일어나 걸어 나가지 못할 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비합리적일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여러가지 많기도 하다. 이게 나의 모습이다. 또한 방어, 외재화, 투사, 동일시, 역전이로 점철된 모습이다. 때론 생뚱맞게 울고 싶기도 하고, 다운되어 우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타인에게 끌려가지 않기, 가만히 머물러 있기, 모른 척하기가 필요하다. '하던 일 하지 않기' 와 '하지 않던 일 하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난 아직도 도상(道上)에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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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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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은 '정신분석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working-through)'을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이다. 훈습은 유식 불교(唯識佛敎)에서 따온 용어로, '지각과 의식을 통한 경험이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배어들어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정신분석 작업은 '분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과 저항을 철두철미하게 극복하여 치료에 성공하는 것'을 뜻하므로 훈습보다는 '철저 작업'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미국 심리학자 스콧 펙은 그 과정을 '훈련'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훈련 과정을 통해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절제력, 정의감, 용기 같은 가치를 위에 책임감을 발달시킨다고 제안한다. -8쪽

프로이트는 [끝낼 수 있는 분석, 끝낼 수 없는 분석]에서 훈습과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훈습은 우리가 외면해 온 것을 되찾는 작업이며, 부정했던 것을 수용하여 온전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과거에 묻힐 뻔했던 것을 현재가 되게 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경험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마크 엡스타인은 [붓다의 심리학]에서 훈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이 아닌 정서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면 단기간의 성취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회피하려 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감정에 매인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26-27쪽

사랑한다느 것은 의존 욕구가 있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애착이나 원망의 감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리되고 자립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74쪽

입장차이, 진실 부재, 자기 이익. 세상의 모든 갈등은 그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갈등의 삼 요소는 틀림없이 나르시시즘과 불안의 심리 위에 꽃피는 현상으로 보인다. 정신분석가들의 기법 중에 '모르는 채로 머룰기, 불분명한 지대에 머물기'가 있다고 한다. 내담자의 혼란스럽거나 단편적인 일상 이야기 속에서 무의식적 진실에 도달할 단초를 발견할 때까지 모르는 채로, 불분명한 상태로 기다린다. 이해되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 소통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의미를 인식할 준비가 될 때까지 혼돈 속에 머문다. 내담자의 무의식이 떠올라 분석가의 무의식에게 말을 걸 때까지.-112-113쪽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존성, 결핍감, 시기심, 자동 강박 반복 추구와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불안, 분노, 공포, 방어기제 등의 감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자유다.'는 인정 지지 욕망, 존재 증명 시도, 내면의 감독관 등과 관련된 문장이었다. 세 범주의 감정들은 인간이 고통받는 내면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고 있었고, 유아기에 잘못 만들어 가진 생존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150쪽

치료란 어린 시절에 위험하다고 느껴 억압하고 회피해 둔 감정을 다시 느끼는 일이고, 그것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1쪽

투사적 동일시와 역전이가 어떻게 다른지도 경험 속에서 구분하게 되었다. 역전이가 상대방의 감정을 다만 거울처럼 비추는 작용인데 반해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의 감정이 아예 이쪽으로 건너 오는 것 같았다. 역전이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상대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헤어진 후에는 서서히 흐러졌다. 투사적 동일시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면에 별다른 동요가 없지만 헤어진 다음 날 아침 내면에서 올라오는 낯선 감정과 맞닥뜨리곤 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역전이보다 열 배쯤 강한 강도로 느껴졌고, 구체적 에너지처럼 건너오는 힘이었다. -207쪽

유아기 전쟁 트라우마를 처리하지 못해 노년이 되어서까지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망상을 짓는 노인들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이유 없이 분노와 불안에 처하게 된 젊은이들을 보는 일은 더욱 안타깝다. -221쪽

진정한 이타 행위가 가능하려면 내면의 결핍과 요국들이 철저히 점검되어야 한다. 결핍감이 있는 상태에서 행하는 이타 행위에는 보상을 기대하는 무의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행위 뒤에 좌절과 분노를 만나기 십상이다. 심지어 타인의 선행에 대해서 의심하고 비난하게 된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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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서울 곳곳의 역사'를 생생하게 목도한 이야기를 담담히 읽었다. 알면 알수록 분통과 무력감이 동시에 올라온다.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아니 핑계에 불과할 지 모른다. 과거와 맞물려 현재에 머물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곳을 제각각의 이익에 편승되어 윤색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꾸 되물어 아닌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무늬만 있다. 

-동창회에 갔다. 더도 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된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 자체가 그저 즐거웠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엇갈린 기억들, 추억들을 꺼내어 다시 맞춰보았다. 소박한 모습들, 만날 때마다 주름과 흰머리는 하나씩 늘어나 있지만 우린 사십여년전의 그 얼굴로 만났다. 그래서 헤어지면 늘 아쉽고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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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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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죄는 미워할지라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며 점잖은 충고를 하기도 한다. 나아가 "지금에 와서 문제를 제기하면 자칫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으니 용서하는 것은 어떨까"라고도 한다. "예술가의 위대함은 그것이 선의든 악이든 해당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고 설파한 드골의 전후 프랑스. 그들은 해방 직후 다른 어떤 분야보다 해악이 크다는 이유로 나치스에 부역한 예술가들을 말끔히 청산하지 않았던가. 물론 4년여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나치스 지배를 받은 프랑스와 40년에 가까운 지배를 받은 한국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애초부터 용서나 화해라는 것은 진실규명과 반성이 있은 후에야 가능한 것이지 무턱대고 용서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은 불순하다. -72쪽

해방의 그날까지는 항일의병과 항이지사를 잡아 가둬 일제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보루였고, 독재가 판치는 시절에는 정권의 안녕을 위해 기능한 서대문 형무소. 그러나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대 한민족'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대결 구도를 전제로 모든 것이 꾸며져 있다. 우리 안의 여러 모순은 등한시한 채 극우적 민족주의와 반민중적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데에만 집중해 복원된 것이다. 내키는 내키지 않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남아야 한다. 단순히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나머지 절반'도 기록해야 마땅하다. 제국주의와 독재체제의 잔혹함과 위험성을 알리는 곳으로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 세력 전반에 대한 민중의 투쟁을 기억하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외부'에 대한 집단적 불만표출을 통해 '내부'의 문제를 감추고 있는 서대문 형무소. 그 금기를 깨는 것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 80년의 역사를 올바로 보듬는 길이다. -170-172쪽

독립문이 탄생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국의 전통적 종주국 지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조선의 독립 운운한 것이었다. 그리고 독립협회 인사들도 청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정녕 조선을 위한 일이라는 일본의 생각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독립문의 '독립'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종속되기 위해 청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사대의 상징을 헐고 '또 다른 사대의 상징'을 세운 셈이다. -181쪽

말하자면, 국가의 명령을 따르다 죽은 이들을 무조건 '아름다운 죽음'으로 호도하고 숭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젠가 또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애꿎은 희생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장래에의 다짐과 같다. 앞으로 있을 국가 동원에 대해 미리부터 '국가를 위한 희생은 위대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심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얼핏 보기에는 '과거의'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의' 국가 동원을 위한 무시무시한 논리가 숨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관리 주체가 국방부라는 데서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군인 유해 발굴단은 상시 운영하면서도 정작 충북 영동 노근리와 경남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전남 나주와 함평에서, 제주의 이름 모를 오름들 사이에서 떠도는 '학살당한 영혼'은 보듬지 않는 국가. 시도 때도 없이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대는 우리의 현실이 그래서 더 무섭다. -195쪽

언제부터인가 '기억상실'이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 어두운 역사라는 것은 덮어버린다고 해서 잊혀지는 게 아니다. 부끄럽고 슬픈 역사도 분명 우리의 역사다.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이유는 그러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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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홍대리'가 말해 주고 있다. 코도 헐고 기침도 나지만 책을 읽는 이유가 있다. 몸을 위해서 삼시 세끼의 밥을 먹으니까, 마음을 위해서도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책을 읽고 있다. '닉혼비'는 읽은 책에 대해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무슨 책을 샀고, 어떻게 읽었고, 재미가 없었고, 어떤 것은 아닌 척하고 평을 썼다고까지... 그렇게 계속 되풀이 되는 내용에서 멈췄다. 런던스타일의 책읽기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도 난 책을 놓지 않을거다. 책 읽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잠자는 건 아깝지만.

-고려산에 다녀왔다. 진달래가 있다던데, 막 피려고 준비 중이었다. 강화도를 지나 오는 길이 멋졌다. 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볕아래서 책읽는 것도 괜찮을 거같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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