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장바구니담기


비정규직은 폭주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팽창 속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어차피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다면 기업은 돈 버는 고민과 함께 사람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30쪽

외모 지상주의는 미모의 기준에 미달되는 여성들에게 박탈감을 제공한다. 물론, 이 기준은 우스꽝스럽게도 사회적 합의나 법률적 토대에 기댈 수 없다. 미모의 기준이란 정서와 문화라는 모호한 공작을 등에 업고 권력과 자본이 일방적으로 정한 경우다. 이 때문에 다수의 의견이 마치 정답처럼 판결을 받는데(미스코리아 대회 같은 미녀선발대회가 대표사례다) 그 틈새로 편견과 차별이라는 샛바람이 분다.(중략) 열등은 곧 미천한 것, 나쁜 것, 그래서 무시해도 되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이다. -39쪽

'무한한 자유에 제공된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낮은 임금, 건강과 안전에 대해 거의 전무한 규제, 무한한 자유'라는 표현은 다국적 기업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위법행위를 적발해도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은 단기간에 고소득을 보장한다. 결과는 사냥당한 기업의 헐값 매수와 현지 경제의 파국이다.-45쪽

결국 학교와 사회에서 스펙을 추가하지 못한 계층은 쇠외될 뿐만 아니라 계속 착취당할 것이다. -68쪽

축제가 성공하려면 프랑스 대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자발적이어야 하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며 흥을 동반해야 한다. 굿판에서 엑스터시를 중요시하는 이유도 '자발적 공감과 교감'을 축제의 성공 포인트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엑스터시가 사라진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전시(展示)다. 히틀러 광장과 5.16광장, 김일성 광장이 그렇고 보수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한 축제가 그렇다.-84쪽

어느새 내가 아닌 타인의 희생은 슬프지만 금방 안도하고 조용히 발길을 돌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대신해서 희생할 야만인'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나는 누구인가.-99쪽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복이 아니라 유행 혹은 체면을 구입해 오고 있다. 대중은 이제 제품이 아니라 만족을, 의복에 내포된 의미를 구입한다." -113쪽

종자란 무엇인가. 종자는 한 톨의 밀이거나 쌀, 호박, 포도씨앗이다. 풍부한 과육과 풍성한 영양가, 뒤어난 향미를 가진 음식이 식욕을 돋우지만 그것은 작고 볼품없고 거칠고 울퉁불퉁한 씨앗으로부터 왔다. -148쪽

세상에 뒤쳐지는 것 같아 두려웠고 돈 없는 생활 역시 그랬다.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고독과 번민이 현실과 내면에서 동시에 분탕질을 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시골살이에서 얻을 것은 자연에의 경이와 자족이다. '낮은 태도와 작은 규모와 적은 소유'에 천천히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계절과 사람이 섞이고 순환하는 것을 배우고 현금이 없어도 텃밭에서 채소를 가져와 밥상을 차릴 수 있다. 한 송이 꽃이 힘들게 몸을 여는 과정도 지켜본다. 분투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162쪽

니어링 부부가 추구한 '존재지향적 삶'은 '쓰고 버리는 소비' 행위와 대척점에 있다. 존재지향적 삶은 '시장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여백의 시간을 즐기는 일'이다. 이러면 돈을 못 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지향적이 아닌 존재지향적 삶을 염원하지만 가난은 두렵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돈은 '달콤한 드라큘라'다.-203쪽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아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204쪽

"진정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239쪽

"우리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살아왔고, 또 삶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살아갈 거야. 우린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아직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단다. 그건 어떠한 외부의 힘이나 폭군의 탄압으로도 우리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것이지. 네가 사랑이라 부르고 나는 공감이라 부르는 것 말이다."-272-273쪽

마음이 마음을 고르고 마음이 마음에게 다가가는 것은 연애다. 책도 다르지 않다. (중략) 자갈길을 좀 걸어본 사람이 공감하는 '세월의 냄새' 같은 것. 세월의 냄새, 영혼의 관절염, 마음의 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러면 곽재구 시인 에세이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어야 한다. -298쪽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를 알고 있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30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닷물이 아직까지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슬픔과 같이 차올라, 온 몸이 근질거리고, 짜증이 발끝까지 퍼지면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읽기뿐이니까,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p242)"

"나를 합리화하고, 타인의 잘못을 따지려고."   

더 멋진 대답이 있을 건데, 자꾸 이런 대답이 떠올랐다.

"(나)힘도 얻으려고, 길을 찾으려고, 세상을 배우려고, 외로움과 슬픔을 위로받으려고, 사랑과 기쁨을 나누려고, 새로운 사실로 알려고, 친구도 되고 싶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도 다지려고, 굳은 결심을 하려고, 계획을 세우려고, 도움을 주려고 등등"

"(타인)혼내려고, 무시하려고, 비판하려고, 포장하려고, 부정하려고 등등"

 

그 어떠한 이유로든 책을 읽을 거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책읽는 이유가 충분히 된다. 나의 상황이 어찌 되었든 책이 최고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나아 갈 수 없기에 책으로 포장하여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이랄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한 직접적인 내용으로... 가을이다. 깊은 밤 책과 함께 보내는 일도 꽤 괜찮은 일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자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장바구니담기


그래서 "책을 왜 읽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무수히 많은 디테일로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충동, 게으름, 타성, 우정, 불안, 고통, 회한, 슬픔, 욕망, 상상력, 기억, 위로, 정체성, 공감, 재탄생, 창조, 이 모든 것에 대해서요. 저는 이러한 디테일을 책을 통해 조금씩 배운 듯합니다. 저는 책을 잃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사랑만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됩니다. 삶은 이 세계에서 내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하겠어?"라며 삶을 수수방관하게 하지 않습니다. -17쪽

소외된 개인은 "내가 이것을 원해도 될까?"라는 '도덕적 질문'에 대해 항상 "이것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다른 것을 해야 했기 때문이야.", "나에겐 선택권이 없어."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합니다. 즉 소외된 개인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해야 했기 때문에 했어."라고 말합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51쪽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기가 무섭게 이 빽빽한 방 안에 칼로 도려낸 듯이 빈자리가 파였다. 한 인간이 이미 마련된 제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72쪽

우린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 같은 중요한 문제를 선택이 아니라 자격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어떤 자격증을 딸 것인가 같은 문제로 착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맥을 관리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과 떠들썩한 우정을 맺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해야 할 삶과 실존의 문제를 임기웅변이나 처세술,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면서 자존감을 지닌 인간으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79쪽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책 읽기도 형식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에게 책 읽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라는 형식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읽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딜레마, 고통, 슬픔을 표현하려 합니다. 어떤 방식이 될까요? 타협이냐 대결이냐, 망각이냐 묵비권이냐 여러 가지가 있겠죠.-95쪽

사랑은 우리가 결이 진 표면을 어루만질 때, 손이나 입으로 뭔가를 이야기할 때 생겨난다. 입은 어루만지기 위해 이야기를 이용하고, 흩어졌던 결이, 입 밖에 내어 읽을 수 있는 결이 나타나도록 한다. -122쪽

삶 속에는 앎의 자리가 있습니다. 교육이란 것이 하도 이상하게 변절되어서 앎이란 말은 정말 매력 없게 변했지만요.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책이 주는 '앎'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어 공주]를 읽으면서 뭔가를 얻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빨간 망토]를 읽으면서는 세상에 친절한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늑대가 우글거린다는 것을. [아기돼지 삼형제]를 읽으면서는 세상에 내 집을 부서뜨리거나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늑대가 우글거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큘라]를 읽으면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혼이 없으면 남들의 피나 빨아 먹고 살 수밖에 없단 걸 알게 되었고, 신 포도니 따 먹지 말라는 [이솝우화]의 여우 같은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152쪽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 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구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238쪽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뒤의 질문은 앞의 질문과 다릅니다. 책 읽기는 수많은 우회로를 거친 느린 귀향입니다. 새로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몰랐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달라진 자기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239쪽

저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도 돼요?"라고 물었는지 이제 이해합니다. "그렇게"라고 애매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는 저마다의 가습속에 있었던 겁니다.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말고, '살아야 하는 삶', 즉 인간이라면 꿈꾸는 존재라면 "그렇게" 한 번 살아 봐야 하는 삶에 대해 자꾸만 말하게 합니다. 그 말로 우리를 채우게 합니다. 그것이 "그렇게"였습니다. -2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로 떠난다면 꼭 가지고 갈 필수품, PARIS IN(book)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변산반도. 채석강. 격포. 내소사. 고사포를 다녀왔다. '신사와 호박'에서의 식사는 꿀맛이었고, 내소사의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은 닮고 싶었고, 고사포 바닷가는 맑고 깨끗했다. 조개까지 캤다.  

바람을 쐬었다.

입안이 훨었고 피곤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만, 바람. 바람. 바람은 한꺼번에 해결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ARIS IN - 솔로, 혹은 홀로
이현지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7월
장바구니담기


이건 현실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어떻게 머리를 굴려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왜?"라는 한 단어의 글자뿐이다.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냥" 이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만큼 답답한 일은 없다. 이유를 알면, 그 이유를 해결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도 해결된다. 하지만 이유가 없으면 답도 없다. 단지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새로운 애인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이 식었을 뿐이라는 그의 대답은 그녀를 더욱 화나게 했다. 차라리 새 애인이 생긴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그는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때문이라고 말하니, 이건 정말 답이 없는 문제다. 더 이상 뭐라고 할 말도 없어진 그녀는 일단 모든 정신을 그 자리에서 일어서는 일에 집중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었다. -17쪽

어쩌면 그녀는 그를 잃는 것보다 자신에게 일어난 최초의 실패를 더욱 인정할 수 없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그녀는 두 손을 들고 자신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음과 세상에는 예상하지 못했어도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9쪽

진짜 사랑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힘들고 아픈 것인가, 아니면 헤어지면 슬퍼해야 한다는 공식이 그녀를 슬픈 연기라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인가? 그녀는 문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스스로가 슬프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미 그에게 가슴 떨리는 사랑을 느꼈던 것은 아주 예전의 일, 헤어지기 직전의 그녀는 그가 가져다줄 여유로운 미래와 남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녀 자신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스스로를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녀는 점점 더 마음이 가벼워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음속을 채우고 있던 묵은 감정을 모두 떨쳐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터였다. -82쪽

그와 헤어지면서 그녀를 지켜주고 있던 보호막이 떨어져나간 걸까? 과연 누가 누구를 지켜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가 그녀를 지켜줬다면 그녀 또한 그를 지켜줬어야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막연히 생각했다. 자기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데 남을 어떠헥 지켜준단 말인가? 지금까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대체 왜 자신을 떠났는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그가 날 떠난 건 어쩌면 이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어.'-104쪽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한 모금 들이키자 달다 못해 쓴맛의 뜨거운 초콜릿이 목을 타고 서서히 몸 안으로 퍼져 간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분말 코코아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리얼 초콜릿. 간간히 덜 갈린 초콜릿 덩어리가 입 안에서 씹히느넫 그것 또한 이 쇼콜라의 매력이다. -128쪽

여행은 자고로 어느 정도 외로워야 한다. 조금 쓸쓸하고 조금 외로워야 풍경도 제대로 보이고, 사람도 제대로 보인다. -165쪽

어느 순간,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태어날 때부터 남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듯, 오로지 그 모습으로만 나에게 존재한다. 가령 회사에서의 그의 모습이라든지 슈퍼마켓에서 뭔가를 사는 그의 모습은 전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안다. 어쩌면 애정이 식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었느냐고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이다. 나 나름대로의 형태로 나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 다만 손으로 깨질 것같이 안타깝고 애달픈 모양이 아닐 뿐이다. 아마 남편도 비슷하리라. 나에게 친절하지만 그 이상의 애정을 느낄 수는 없다. 아마 그것이 내 우울함의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225-226쪽

오늘도 이렇게 특별한 무언가는 하지 않은 채 마레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종일 여기저기를 쏘다녀도, 오늘처럼 그냥 산책하듯 다녀도 하루는 생각보다 길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시간은 또 금방 가서 금세 밤이 된다. 일단은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 다시 우울해지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으므로, 그냥 주어진 현재를 묵묵히 즐길 것. 그게 우선은 나의 제일 중요한 계획이자 목표이다.-294쪽

사지 않더라고 예쁘고 좋은 것을 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여자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 -304쪽

시간을 나눈다는 건 이래서 좋다.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말이 생긴다. 우린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깔깔대고 웃으며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315쪽

그게 꽃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어떤 하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정말 아름답다. 이제야 정확히 알았다. 내가 원하는, 또 바라는 얼굴은 이런 거라는 사실을. 다른 말이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에 집중한 얼굴. 첫 번째 꽃집에서 훔쳐봤던 꽃을 배우는 사람들의 얼굴과 두 번째에서 만난 꽃을 만들던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지금 바로 이 남자의 얼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그 무엇. 하나에 몰두하고 집중한 얼굴은 이런 것이리라. 세상 어떤 보석보다, 또 어떤 명품보다도 근사하고 값지다.
난 마음이 꽉 차서 그곳을 나왔다. -3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