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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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을 왜 읽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무수히 많은 디테일로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충동, 게으름, 타성, 우정, 불안, 고통, 회한, 슬픔, 욕망, 상상력, 기억, 위로, 정체성, 공감, 재탄생, 창조, 이 모든 것에 대해서요. 저는 이러한 디테일을 책을 통해 조금씩 배운 듯합니다. 저는 책을 잃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사랑만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됩니다. 삶은 이 세계에서 내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하겠어?"라며 삶을 수수방관하게 하지 않습니다. -17쪽

소외된 개인은 "내가 이것을 원해도 될까?"라는 '도덕적 질문'에 대해 항상 "이것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다른 것을 해야 했기 때문이야.", "나에겐 선택권이 없어."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합니다. 즉 소외된 개인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해야 했기 때문에 했어."라고 말합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51쪽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기가 무섭게 이 빽빽한 방 안에 칼로 도려낸 듯이 빈자리가 파였다. 한 인간이 이미 마련된 제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72쪽

우린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 같은 중요한 문제를 선택이 아니라 자격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어떤 자격증을 딸 것인가 같은 문제로 착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인맥을 관리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과 떠들썩한 우정을 맺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해야 할 삶과 실존의 문제를 임기웅변이나 처세술,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면서 자존감을 지닌 인간으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79쪽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책 읽기도 형식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에게 책 읽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라는 형식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읽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딜레마, 고통, 슬픔을 표현하려 합니다. 어떤 방식이 될까요? 타협이냐 대결이냐, 망각이냐 묵비권이냐 여러 가지가 있겠죠.-95쪽

사랑은 우리가 결이 진 표면을 어루만질 때, 손이나 입으로 뭔가를 이야기할 때 생겨난다. 입은 어루만지기 위해 이야기를 이용하고, 흩어졌던 결이, 입 밖에 내어 읽을 수 있는 결이 나타나도록 한다. -122쪽

삶 속에는 앎의 자리가 있습니다. 교육이란 것이 하도 이상하게 변절되어서 앎이란 말은 정말 매력 없게 변했지만요. 우리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책이 주는 '앎'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어 공주]를 읽으면서 뭔가를 얻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빨간 망토]를 읽으면서는 세상에 친절한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늑대가 우글거린다는 것을. [아기돼지 삼형제]를 읽으면서는 세상에 내 집을 부서뜨리거나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늑대가 우글거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큘라]를 읽으면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혼이 없으면 남들의 피나 빨아 먹고 살 수밖에 없단 걸 알게 되었고, 신 포도니 따 먹지 말라는 [이솝우화]의 여우 같은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152쪽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 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구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238쪽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뒤의 질문은 앞의 질문과 다릅니다. 책 읽기는 수많은 우회로를 거친 느린 귀향입니다. 새로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몰랐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달라진 자기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239쪽

저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도 돼요?"라고 물었는지 이제 이해합니다. "그렇게"라고 애매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는 저마다의 가습속에 있었던 겁니다.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말고, '살아야 하는 삶', 즉 인간이라면 꿈꾸는 존재라면 "그렇게" 한 번 살아 봐야 하는 삶에 대해 자꾸만 말하게 합니다. 그 말로 우리를 채우게 합니다. 그것이 "그렇게"였습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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