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글을 읽으면, 괜찮다. 괜찮다...라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된다. 그 간의 후회도 실수도 안타까움도 상처도, 그땐 그랬었지. 잠시 눈이 멀었던 거지. 정신을 잠깐 놓았던 거지... 괜찮아. 괜찮아...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붙잡으려 했어도 그건 나의 것이 아니였음을 알게 한다. 담담히 그것을 받아 들이게 해 준다. 아프지 않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너도 아팠구나. 너도 원했구나. 너도 그랬구나.. 그러면서 시간은 가는구나... 무지 덥다. 책만 읽는다... 그늘이 있기에 더 아름답게 보일 거다. 상반된 게 없다면 그 가치를 어찌 알 수 있을까. 아픔과 상처가 없다면 행복과 기쁨을 어찌 알까... 한쪽의 빈 마음을 보고서야 그때의 풍성하고 아름다웠던 마음을 알 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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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구판절판


왜 늦게 알게 하는가. 다 지나가고 난 다음, 다시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원형들을 망가뜨려놓고 난 뒤, 서로 손을 잡고 걸을 수 없게 된 뒤, 왜 그때야 알게 하는가. 이제 정을 주고 싶어도 정을 받을 수 있는 그녀들이 없다는 사실은, 집에 들어가고 싶어도 대문이 잠겨 골목에서 있어야 하는 거와 같았다. -72쪽

내가 너무 내 가까이 있기에 생긴 허물. 사람들은 그 신경질을 용케도 알아채고 내가 나에게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것을 권했던 것이다. 멀어진다는 것. 그녀와 내가 똑같이 봤던 속초에서의 그 바다를 그리워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여기를 떠나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바다를 잊어버린 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이상 생산의 의미가 아니라 해도 내가 태어난 집에 다녀오면 내가 순해질 수 있는 건 이제 그 집에서의 시간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 아닐는지. 남해바다 앞에서 새파란 추억 한 커트를 찾아낼 수 있었던 순간도 멀어졌기 때문에 다시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는지. 멀어졌다가, 멀어졌다가 돌아와서야 그 가까웠던 것의 진실을 남들한테도 말해줄 수 있으리라. -151-152쪽

이제는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시간은 되풀이되지 않지만 지나가는 일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들은 지나가며 생김새와 됨됨이를 새로 갖는다. 나에게 소설은 재생된 새 꼴들을 담아놓을 수 있는 공간이고 시간이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었건 간에 그 지나간 것들은 오늘 여기까지로 오는 길이었으며, 여기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시간 또한 십 년이나 이십 년 뒤 짐작도 못 하겠는 그 시간들로 가는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171쪽

새로운 시간은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오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기쁨과 지금까지의 슬픔을 바탕으로 해서 온다. 아무리 새롭다고 해도 그 바탕 위해서 시작된다. -271쪽

희망 없는 사랑을 해본 사람. 사랑은 정상이 아니에요. 오죽하면 사랑에 빠진다고 했겠어요. 어느 날 정상이 되고 보면 내가 갑자기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냥 여자. 당신도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남자. 그런데도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왔다가 가고, 깊은 무덤이 되고, 노래가 되고.-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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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언어로 심플하게, 깊게, 그리운 것들을 표현한 글, '밤은 선생이다'를 읽었다. 장마가 끝났다는 예보도 있었는데, 하늘이 깜깜해지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다. 그야말로 비오는 밤과 다를 바 없다. 일상을 이리도 깊은 눈을 갖고 쫀쫀하게 볼 수도 있구나... 물질과 몸이 하나가 된 체화된 글이었다... 안타까운 시절과 기억들이 사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는 가슴이 저렸다... 사람들이 밤마다 꾸는 꿈이 조금이라도 실현되길, 한번 읽어 보시길ㅡ 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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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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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건들이 늘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덕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앞에서 놀라지않게 하는 일은 인문학이 늘 내세우는 일이고, 사실 내세워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미래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언제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에도 전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실은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인문학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공부가 많게건 적게건 그 일과 관련을 맺는다. 인문학의 위기는 오래전에 찾아왔고, 그 뒤를 이어 이공계의 위기가 걱정거리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위기고, 대학의 위기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57쪽

어쩔 수 없이 작은 수의 어휘만을 사용하여 교안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외국어 강의는 학생들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옆길로 새나갈 수 없는 강의는 삶과 공부를 연결해주는 온갖 길들을 차단할 것이다. 언어의 깊이가 주는 정서를 학문의 습득과 함께 누리지 못하는 탐구는 모든 지식을 도구화할 것이다. -127쪽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소작농이 수확의 7할을 지대로 내놓아야 했던 것도 당신의 사정이고, 없던 도로가 뚫려 한 마을이 두 마을로 나뉘어 살아야 하는 것도 당신의 사정이며, 그 끔찍했던 입시 공부를 자식에게 다시 강요해야 하는 것도 당신의 사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175-176쪽

권태롭다는 것은 삶이 그 의미의 줄기를 얻지 못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받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반짝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려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192쪽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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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예전에 읽다가 둔, 연필이 가운데 꼽힌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 안의 여러 목소리와 충분한 대화만이 이상적인 부모가 될 수 있고,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가장 많이 듣는 목소리, 가장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말이 곧 내가 원하는 말이고, 나에게 상처를 준 말이다. 내안의 목소리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뭐지?" "이게 말이 되는가?" 상황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불합리한 부분과 아귀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에 특히 도드라지는 나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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