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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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들엔 `열명`과 `덧없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열망이란 무엇입니까.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이자 결연한 단절이며 치밀한 계획이자 무모한 도전이지요.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방점이 놓이는 작품들입니다. 그 열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속엔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덧없음`은 실패와 이어진 감정이 아닙니다. 활활 영원히 타오를 것처럼 이어지던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짧은 침묵이 찾아듭니다. 그 침묵엔 많은 것이 담기지요. 어찌할 수 없는 이별, 잊히지 안는 고통, 그리움, 부끄러움이 한순간 밀려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음을 디뎌 나올 때의 헛헛함이라고나 할까요. 멀리서 들려오는 굶주린 짐숭의 울음에도, 긴 꼬리를 지우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궤적에도 인간으로서의 덧없음이 얹히지요. (8쪽)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113쪽)

실험실에서 잠시 쉴 때마다 옛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와 나눴던 대화들, 바라봤던 풍경들, 가졌던 희망들이 어둠을 뚫고 프리모 레비를 휘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그를 마난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존재와 부재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프리모 레비를 괴롭힙니다. 그때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인간만도 못한 삶을, 죽지 못해 이어가는 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 이하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 안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씁니다. 그것은 프리모 레비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 그를 비롯한 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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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나의 이야기를 지켜 내는 것이 결정되는 경계, 혹은 한계가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라고 솔닛은 말한다.(379쪽)'

이 봄날이 새롭다. 나에게도 새롭게 씌여질 이야기가 있나보다. '멀고도 가까운(리베카솔릿)'과 '사랑에 관하여(안톤체홉)'를 번갈아 읽다가 봄맞이를 다녀왔다. 가까이 있어도 먼 당신도 있지만, 멀리 있어도 가까운 당신도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왜 그녀가 나 아닌 그 사람을 만났는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발버둥쳤습니다.(체홉,198쪽)'  어떤 일이 분명 일어났지만, 왜, 무엇 때문에라고 묻다 보면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주 멀리 있는 당신이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나의 삶은 나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불분명한 기억의 한계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주변의 이야기와 섞여 새로운 이야기로 변용되고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람을 보고 있지만 제각각의 시선으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고 달리 들리기도 한다. 살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보태어 지는 사건은 사라졌다고 믿어의심치 않은 과거와 연관된 일이 많다. 부모와의 일, 가족들, 친구들과 학교등등에서 전리품도 있었지만 희생도 많았다. 특히 희생과 상처에 대한 부분은 아직까지 지금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어떤 일은 여전히 그때의 어린아이로 만들어 꼼짝 달짝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 아직까지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 이야기에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안아픈척, 고통이 없는 것처럼 몸과 자아의 경계를 허물게 한 부분도 있다. 겨우 무지 아파서 도저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을 이제야 조금씩 하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기로 한 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 새로운 부분이 더해진다는 의미이리라.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는 순간 상처받은 과거의 마음보다 더 많이 애리고 아프다. 이제야 듣게 되지만, 그래서 주의깊게 잘 들어야 한다.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통하여만, 그사람에게서 왜, 무엇 때문에라는 답을 얻게 된다.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너의 감정을 알게 되고, 진정 너와 연대한 모습이 되어 보면, 단절되었던 그 굵고 선명한 금을 쓱쓱 지울 수 있게 된다.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341쪽)" 과거에 집착하고 머물러 있으려는 나를 용서하고 먼저 나를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웬지 나에게 덧입혀 씌여진 나쁜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봄날이 될 거 같다. "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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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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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13쪽)

노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랑이나 아이를 낳는 일 같은 다른 종류의 헌신에 비해, 조언이나 독려가 될 만한 분량의 글이 없다. 그 일은 마치 예저엥 없던 어떤 일처럼 슬그머니, 마치 한 번도 경고를 받지 못했고 지도에도 없던 암반으로 가득한 해변처럼, 갑자기 당신 앞에 닥친다. (20쪽)

기억이란 지나가는 물고기를 모두 잡는 일은 결코 없으면서, 종종 있지도 않은 나비를 잡아 버리는 그물 같은 것이었다. (25쪽)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영웅이다. 다른 이야기라는 무대에 우리를 세워 놓고 그렇게 작아진 스스로를 보는 것, 당신과 관련이 없는 세상의 광활함을 보는 것도 바라보기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능력을 보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만들고 혹은 그것을 부수기도 하며, 다른 사람에 의해 이야기되기보다는 우리가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이다. (51쪽)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하다.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모두 그러하다. 파괴하는 이, 큰 고통을 일으키는 이는 먼저 자신의 일부를 죽여 없애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볼 수 없게 된다. (83쪽)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 주고 축보해 주는 다른 이야기를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93쪽)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106쪽)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151쪽)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선뜻 돌봐 줄 수가 없다. 당신의 손발이 당신에게서 잊힌다. 반면에 고통은 지켜 준다. (153쪽)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꼐 아파하믕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 역시 전염성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157쪽)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어소가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158쪽)

실제로는 하나가 아닌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많은 사건과 세세한 일이 뒤엉켜 있는 덩어리로부터 불확실한 기억을 더듬어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213쪽)

유한한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 순간부터는 정말로 중요해진다. 이 순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손님은 때로는 안내인처럼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시간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우리를 문밖으로 난폭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반응하고, 그 반응이 바로 그 순간 이후에 살아가게 될 삶이다. (223-224쪽)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엄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는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너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259-260쪽)

누가 당신의 말을 듣는가. 할 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들려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듣는 이의 귀에서 머리까지 이어진 미로를 여행하는 공기의 울림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두운 통로에서는 더 많은 일이 벌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욕망과 필요 혹은 관심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하여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세상은 삶을 온통 편안한 것과 익숙한 것만 비춰 주는 겨울로 만드렁 버릴 위험이 있고, 그 반대의 세상에도 마찬가지로 위험은 있다.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자. (283-284쪽)

어떤 때는 나의 몸이 하나의 집이 되어, 여러 세입자가 차례대로 살다가 떠나는 곳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들 하나하나가 기억을 남기고, 습관과 상처, 기술, 그리고 여러 기념품을 남기낟. 아주 오랜 후에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뒤에 처져 있곤 한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멸종해 버린 과거의 어머니와 여전히 다투고 있고, 과거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과거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작아졌지만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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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보고 싶다며 친구가 보내 준 책을 이제야 읽다. 그것도 건성으로. 그녀의 마음에 비하면 내용은 가볍다. 모르겠다. 행간의 의미를 곱씹기 보다는 그냥 건너뛰었다. 그후 그녀가 몇번이나 와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어렵고 복잡하고 부럽기까지 한 글들을 읽은 다음에 가볍게 읽거나 또는 몇 권의 책과 섞어 읽기에 좋은 책으로 치부했다.

삶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일상에 대하여, 이름 불러주는 거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앞뒤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거도 있고 앞뒤 문장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끼어 맞춘 느낌까지. 내가 읽은 게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해가 안되면 타인을 탓하는게 속 편한 일이니.  

지난 주 복면가왕에서 들은 Don't Cry를 반복하여 듣는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까지 불었는데 몇번을 수십번을 들어도 이 정도야 약과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고루 실핏줄같은 감정이 고스란이 녹아 있어, 울지말라 하면서도 자꾸 울렸다. 대단한 가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널 사랑해...

첫 사랑이 자꾸 노래에 묻어 나왔다.

그때는 사람을 특히, 남자를 대하는 건 어려웠다.

다섯살 보다도 많은 나이 차에서 감히 넘볼 수 조차 없었다.

나는 단단하지도 않았고 솜털 보송하고 말랑한 꼬마에 불과했다.

함께 한 시기에 말 한번 붙이지 못했고

한번도 제대로 불러 보지 못했고, 허겁지겁 따라 간 게 전부였다.

그때의 계절도 공기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고, 느끼지 못했던,

다만 형을 보고 있는 거에만 급급했다.

이제 이런 봄날을 즐기고 싶다. 부르고 싶고 말도 먼저 건네고 싶다.

성큼 다가도 가고 싶다. 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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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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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15쪽)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에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54쪽)

보고 싶다

첫사랑, 첫날밤, 첫 키스.......
`첫`자가 붙은 말은 언제나 아리고 매콤하다.
그대는 아리고 매콤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움`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라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보지 않고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건, 마음이 썩게 내버려 두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대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봐라.
순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63쪽)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흐름을 멈춘 강이란 이 세상에 없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153쪽)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사람들에게 수평선은 아득한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갈매기들에게 수평선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이란 뜻이다. 무엇이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게 관점이다.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간단하다. 고래는 육지에서의 삶에 지쳐서 바다로 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지치게 하면 그곳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173쪽)

사무친다는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사랑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보다는 편한 게 사랑 아닌가.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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