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관계를 못하는 내게 동일한 일이 되풀이 되고, 그리하여 잠을 설치고, 다크써클 내려오고, 연필 꽂아 둔 책을 펼쳤다. 뒷 표지에 "일도, 사랑도, 관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답은 가족에게 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 온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에는 분명 가족의 목소리와 가족사와 연관이 있다는, 그렇다. 현재 나의 모든 행동에는 원가족과 관련이 있다. 상처받기 쉬운 부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것도, 가족은 삶의 원동력도 되지만 상처도 된다. 그래서 삼대까지 가계도를 그리다 보면 전부 보인다. 이 어처구니 없는 나의 행동까지 이해하게 된다.

요즘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 상황에 자꾸 집착하고 상기시키니, 상대도 그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하게 되는 거 같다.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게, 그 어떤 기미도 없이 연결 점과 선에서 뚝 끊어진, 사라진 느낌이 감당하기 힘든다. 그래서 관계를 잘 못하고 연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근한 예로 분명 연락이 와야 하는 데(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쓴다. 누가봐도 연락이 와야 하는 상황) 오지 않을 경우, 이 막막함을 견디기가 아주 어렵다. 대부분 관계를 파기해 버리는데, 내 마음이 많이 가 있는 아주 괜찮은 사람일 경우는 두세배로 어렵다. 충분히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 아기일 때 잃어 버릴 뻔 했다며 가슴을 몇번이나 쓰다듬으며 해주신 엄마의 말이 기억에 남아서일까. 벤치에 포대기에 쌓여 누워있는 한달도 안된 아기의 공포가 몸에 새겨져 있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의 자그만하고 그냥 있을 수 있는 거절이나 잠깐의 단절도 견디기 힘든 걸까. 그 사이 내가 없어지고 사라진 느낌이 드는 걸까. 암튼, 그러한 상황에서는 공포에 가까운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다잡아 부탁하고 부탁하려 한다. 진짜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상담과 분석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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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사랑, 관계, 불안, 벗어날 수 없는 나와 가족의 심리 연대기
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반복의 매듭에 구속되어 있거나,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탓에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정체성 위기, 관계의 어려움, 심리적 혹은 심신증적 질환 발병, 중독,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은 많은 경우 이처럼 충족되지 못한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사실 이와 같은 생활 패턴은 이미 여러 세대 전에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16쪽)

부모의 요구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자녀는 그것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이라고 여기며 수치심을 느낀다. 부모가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소망을 접고 자녀의 약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녀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부모가 충족되지 못한 기대에 집착할수록 자녀는 부모의 애정이 조건부이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소망이 고스란히 복사된 존재로서 사랑받을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녀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감정을 점점 키워가게 되며, 이런 검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부족해. 너는 가치가 없어.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신념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76-77쪽)

대부분의 경우 사랑에 빠진 초기에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가치가 얼마만큼의 중요도를 갖고, 과거의 규칙이 어느 정도까지 유효성을 가지며,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유연하고 분리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극단적 충성심을 요구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빈번히 파트너와의 새로운 시작에 실패하고 원가족에 대한 충성심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기 못한다. (163쪽)

부모의 트라우마적 경험은 자녀의 감정 세계로 침투한다. 부모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입 밖에 내지 않더라고 그렇다. (205쪽)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고 다른 길을 보여주는 좋은 부모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반드시 가족의 일원일 필요는 없다. (247쪽)

변화로 나아가는 길은 어렵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최선의 부모가 되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자신의 부모와 아무리 다르게 행동한다 하더라고 과거는 시시때때로 원치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52쪽)

여기에는 "곧은" 길도, "평탄한" 길도, "올바른" 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분명하다. 자기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가족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오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끈을 약간 느슨하게 푸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박한 과제다. 끈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보다"([심연들]). (303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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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는 지금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연결 고리"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다면, 그 막막함과 보고 싶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좋은 봄날, '어머니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17쪽)'이 든다면, 그녀는 말을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까지, 한 여자로서의 모습과 자신과의 연결된 부분을 가감없이 모두 보여 주고 있다. 친척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삶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분노한다. 딸은 어떻게든 어떤 모습이든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고, 계속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는 것을... 엄마의 모습이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엄마는 나를 이 세계로 보내준 통로이기에. 나의 엄마, 애보다는 증이 더 많은, 그 엄마를 다시 떠 올려본다. 어제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동생과 살고 있는 아가씨의 문병을 갔다. 혼자서 스스로 병수발을 하고 있다. 그녀의 심정을 조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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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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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 (15-16쪽)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 (19쪽)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유년기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치 어떤 다른 어머니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딸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62쪽)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리고 교양을 갖추려는 욕망과 실제로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63쪽)

나의 어머니는 이 세계에 대해, 훌륭한 교육과 우아함과 교양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찬탄과, 자시느이 딸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과, 겉으로는 절묘한 예의범절을 보여 주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72쪽)

초기에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행복했다. 졸지에 장사꾼으로서의 삶이 끝이 났다. 더불어, 지불만기에 대한 불안, 피로, 그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왕래와 그들과의 대화, [자신의] 돈을 번다는 자부심 역시, 그녀는 이제 [할머니]일 뿐이었다. 시내에 나가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말할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계가 우중충해지고 졸아들었으며, 그녀는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이것도, 자식네에 얹혀산다는 것, 그것은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생활 방식(친척들에게 하던말, [걔네가 아주 살산다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77-78쪽)

내가 청소년기에 [우리보다 더 나은 환경]에 놓였을 때 느꼈던 불편함, 그 감정을 그녀가 내 집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마치 [열등한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차이점들로 힘들어한다는 듯이). (79쪽)

그녀는 마침내 계절이 없고, 늘 적당히 따뜻하고 은은한 향내가 나는 그 공간으로 마침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1년 내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저 먹기, 자기등의 기능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100쪽)

그녀에게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 소유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101쪽)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105쪽)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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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지만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글이다. 가볍다고 하기에는 듣는 이들을 우습게 여기는 꼴이 될 거 같고, 남녀노소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서는 수많은 고민을 통해 나온 글은 틀림없는 거 같다.-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한 글을 묶은. 그러나 [한 여자], [이것이 인간인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책에서는 눈이 바짝 뜨였다. 읽고 싶은 책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 세 부분의 글은 읽기가 편하고 구미가 당겼다. 어찌 되었던 청취자들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꼭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본다. 각자의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한번을 읽든, 두세번을 반복하여 읽든,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책 읽어 주는 라디오 코너가 생기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 주는 이는 누군가가 그 책에서 감명을 받고 그의 생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기를 바랄 거다. 변화라는 건 나쁜 쪽이 아니라 점점 좋은 쪽으로, 삶을 좋다 나쁘다로 규정하는 것도 요즘 생각해 보면 부질 없는 거 같다. 누구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니, 특히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바라는 대로 산다면 좋은 삶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책을 소개할 때는 그 누군가가 어떤 책이라도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게 하는 부분이 가장 큰 목적이 될 거 같다. 아마도 청취자들 중 꽤나 많은 분이 읽어가겠다고 마음먹고 지금까지 책을 읽고 계시리라 믿는다.  

최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쥴 앤 짐] 영화를 보았다. 영화 또한 책 못지 않게 많은 여운을 남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이러다 나의 머리가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다. 균형잡힌 머리와 가슴이 되어야 하는데. 강추한다. 보러가겠다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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