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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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이 세 개인 집에서 어떻게 서로를 피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는지 생각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서로 다른 층에서 보냈다......그녀가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던 데 언제인지, 혹은 잠들기 전 여전히 서로의 몸을 갈구하는 드문 경우에, 이름을 나직이 속삭여준 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생각했다. (20쪽)

그때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 마침내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바보처럼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먹는 것보다 사랑을 나누는 것을 더 갈구했다. (27쪽)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실망시킨 소소한 일에 대한 고백을 주고받았다. (38쪽)

편지의 끝에 그는 우리 가족의 환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제 `고맙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말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 잔을 치켜들며, 그제야 비로소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여러 달 동안 아내와 딸들을 그리워했듯이. 그는 우리에게 돌아올 이유가 없었고, 부모님이 바르게 예측한 것처럼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74-75쪽)

남자가 섹시하다고 말해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의 속삭임이 그녀의 몸속을, 피부 아래를 떠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52쪽)

"그림 그려주세요."
그녀는 파란색 크레용을 골랐다. "뭘 그리면 좋을까?"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이게 좋겠어요." 아이는 거실에 있는 소파, 감독 의자, 텔레비전, 전화기 같은 물건들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하면 기억할 수 있어요."
"뭘 기억한다는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낸 날." 아이는 다시 쌀 과자를 집었다.
"왜 기억하고 싶은 거니?"
"우린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요."
그 표현이 정확해 깜짝 놀랐다. 약간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168쪽)

소문은 창문 빗장 사이로 전해져, 빨랫줄을 타고, 옥상 난간에 들러붙은 비둘기 똥을 건너서 멀리 퍼졌다. (256쪽)

하지만 이곳에는 소음을 피할 수 있는 배의 갑판도 없었고, 영혼을 설레게 하는 반짝이는 대양도, 얼굴을 식혀주는 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278쪽)

나는 그녀에게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내 옆에, 내 식탁에, 내 침대에 있는 그녀의 존재에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낯설었다.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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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카프카(앞표지)"

사생활이란 일상이다. 일상을 얼마큼 잘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 천재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삶을 올곧게 살아 가는 사람들. 특히, 박수용감독의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라 가슴이 먹먹했다. 인생을 쿨하게 사는 모범적인 답을 보여줬다. 어린시절 소를 몰고 그 긴 시간과 먼 거리를 다닌 그의 경험과 시베리아호랑이와 교감하기까지의 긴 기다림과 죽음까지 넘어선 그 무엇에 관한 그의 말은 살아 꿈틀거려 가슴이 두근거렸다.(60~62쪽) 한참이나 갔다. 이도 저도 아닌 이 어중간의 삶도 일상이라 한다면, 여기서 그들처럼 잘 보고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행동하여 일상을 바꿔보도록, 아울러 그들도 갈등하고 불안하고 주저앉고 싶고 흔들리는 일상을 드러내었다는 거, 특히 남에게 보여주기가 아니라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에 마음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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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지음 / 봄아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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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통이나 행복, 배신, 서글픔을 확대하고 그곳에 주저 앉긴 쉬워도 바로 그곳에서 출발해서 자신을 확장시켜나가기는 너무나 어려워, 고통을 통한 확장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축소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거야. (14-15쪽)

인간은 수많은 사람으로 태어나 한 사람으로 죽는다는 말이 있지. 우리 안에는 우리가 쓰지 못한 힘, 탐험하지 못한 모습, 발견하지 못한 보물, 미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한 자아들이 넘쳐나고 있어. 우리는 그중 최악의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끄집어낼 수 있게 서로 도와야 해. 우리 자신이 자신에게 남은 단 한 가지 모습을 협오스럽게 보지 않도록 서로 도와야 해. (22쪽)

우리는 (아직 존재해본 적 없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로 그 사람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치열하지도, 창조적이지도, 타인에게 영감을 주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36쪽)

우린 오솔길을 걷듯이, 마치 호랑이가 그런 것처럼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노동하고 먹고삽니다. 그러나 자아 속의 소통이 없다면 노동만 하고 살게 되고 맙니다. 자아 속의 소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왼발을 든 채 정지 상태로 5분을 참든 것과 같습니다. 요가나 명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고 구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긴 흐름 속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입니다. (68쪽)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실제로 내가 아닌 것이 되어 생각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와의 거리 두기입니다. 이 거리 두기에서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포기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이 위기의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구경꾼, 평가자, 심판자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자기 비하 없이 바당들이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점에서 유일한지도 알아야 하고 인간 공통성도 알아야 합니다. (115쪽)

우리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필연성을 우리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어떤 행동인가를 할 때뿐일 겁니다. 우린 대체로 과거에 필연성을 부여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일어난 과거의 일은 필연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당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합니다. 내가 원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행동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행동 때문에 신념이 만들어진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53쪽)

자기 것에 사로잡혀있지 않거나 자기 것을 갖고 있지 않아야 딴 걸 볼 수 있습니다. 생물은 매일매일 인풋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잘 먹는 사람도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먹고 일주일 동안 뱃속에 저장한 것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생물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게 있습니다. 들어가고 나오고 또 채워지고 비워지고 정체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이디어의 원천인 셈이고, 이 흐름이 표현의 의지를 키우고 생명력이 됩니다. (169쪽)

미루기는 우리를 이중적으로 아프게 합니다. 현재에 우리가 누려야 할 행복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래의 행복을 이루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우린 현재를 수단에 바칩니다. 우린 수단만 있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목적지는 자꾸만 뒤로 멀어져갑니다. 너무 많은 수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단이 너무 많으면 반드시 목적을 잊게 됩니다. `내가 대체 이 수단들로 뭘 하려는 거지?`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의미로 물들이고 우리의 애타는 시간을 빼앗아버립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자기주장을 할 수많은 권리와 수단을 갖고 있는데도 그 권리로 자기 처지와 삶을 개선하지는 못하는 시대, 그 어느 시대보다 수많은 재능을 갖게 되었지만 그 재능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린 아픕니다. 우린 사랑과 도움을 청하는 아픈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에 떨며 공격적이 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린에겐 경쟁력이란 말이 헌신이나 우정 같은 말보다 훨씬 더 익숙합니다. (227쪽)

체험은 남과 나눌 것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경험이란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게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입니다.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인 경험에는 이야기를 전수해주고 전수받는 타자가 있어야 합니다. 경험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 세계와 무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너와 내가 없으면 전수를 원하는 사람도 전수를 갈수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경험은 전적으로 관계의 문제입니다. 경험이 죽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소비입니다. (247-248쪽)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중요성을 차지했던 것을 최대한으로 생각해보고 최대한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최소한으로 한번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왜냐하면 윌에겐 미뤄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능의 자리로 한번 불러보는 겁니다. (298-299쪽)

불평등한 재능으로 서로서로를 판단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오로지 우리가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만 자신이 존재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서 우린 서서히 자기 존중감을 잃게 됩니다. 자신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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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기 위하여 그 간 노력한 실패와 성공에 대한 솔직담백 좌충우돌 고군분투한 서민의 글쓰기 분투기를 읽으며 글을 쓴다는 거에 대한 나의 목적을 생각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하여 여러가지 동기가 있겠지만, 삶을 바꿀 수도 있다로 말한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내가 뭔가를 끄적끄적 하며 글을 쓰는 이유가 뭐지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거 같다. 몇번이나 블로그를 닫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 온 건 일말의 위로가 있기 때문인데, 그 위로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우선 나아가 보기로 한다. 글쓰기는 분명 삶에 영향은 준다, 주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이때껏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면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까.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노인들의? 지혜같은 건 아닐까. 책 때문이 아니라 가끔 그런 생각도 들지만, 만약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 독서가 나에게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이 읽은 책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도, 그러면 엄청 큰 변화를 바랐는가 그거도 아닌데. 잴수없는 측정불가능하고 주관적인 만족감의 정도는 어디까지여야 하나. 등등은 제대로 된 목적없는 독서였을 수도. 변화를 원하는가. 글을 잘 쓰기 위한 것인지. 글쓰기를 통해 변화를 원하는지는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을 수도.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가 같이 맞물려 고민과 생각할 재료가 떠오르는 게 마음을 한뼘씩 넓혀 가는 변화라고 위로한다. 굳이 글을 잘 쓰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 쓰다보면 스스로에게 위로되는 거로 만족하면 안될까. 그렇게 노력해서 글을 잘 쓰게 된 서민의 글에서 나도 노력해서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같은 느낌이 들어, 잠시 우울했었다. 그래도 블로그를 하는 목적과 동기를 다시 고민할 필요는 있다. 

"글쓰기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할 수도 있다에 유의해야 하지만. 바꿀 수도 있다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믿는다. 분명 바꿀 수 있다. 태도든. 글쓰기든. 잘사는 삶이든, 어느 쪽으로든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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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6-04-0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의 목적과 동기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책에 대한 선호가 가장 큰 이유이고, 좋은 데 무슨 이유가 있겠나. 책읽기가 나의 생필품이라면. 글쓰기는 차후의 일이고. 더불어 글을 잘 쓸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냐마는. 블로그는 예전부터 독서 후에 공책에 끄적대는 것을 여기로 옮겨 쓴다는 의미로. 가끔 내밀한 부분을 가려야 하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블로그에 대한 이유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쉬운 점은 없어야 하는데.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들어가는 듯. 그런데 스마트한 세상에서 전혀 스마트하지 않고,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태도로 보여주고 그렇게 사는 듯. 밍밍하고 심심한 나의 삶에 블로그가 조금의 일탈이라고 여기면 될까. 당분간 읽고 끄적끄적 하는 것에 만족하련다. 찾아와 읽어주는 이에게는 그저 감사하고, 좋아요 또한 감사하고. 좋아요다.
 
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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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다는 것이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되 그걸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을 뜻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쉽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92쪽)

글을 잘 쓸 마음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글을 잘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종이신문 읽기를 권한다. 신문 속 사건들은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신문에 실리는 사설과 컬럼은 그 자체가 글쓰기 교본이다. (130쪽)

글을 쓸 때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재료와 관점이다. 재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재료를 모으기 귀찮다면 기존 재료를 가지고 관점을 바꿔서 쓰는 방법도 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려면 한 사건을 가지고 여러 관점으로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하라.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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