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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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11쪽)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71쪽)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넘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 (91쪽)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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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공간, 동네와 세상에서 일상의 틈새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부당한 일들,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 이름들, 공간들, 건축들 등등을 지나치지 않고 보고 있다. 지나치지 않고 섬세한 마음으로 보고 기록한 글이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손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리고 지나가 버린 일들이 많다. 앞으로는 하기 전에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지금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개인에게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지금의 욕망이 이성을 넘어서는 일이 왕왕 있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이기에. 그래서 자꾸 타인에게 투사를 한다. '너나 잘하세요'를 들으면서 나하나 잘하면 되는데도 그게 어렵다. 

비가 많이 많이 온다. 어디가 넘쳤다고 한다. 매년 넘치는 곳이 지금도 넘치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고 아직도 그러고 있다... 그리고 햇님나면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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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사람 사이 - 건축가 이일훈, 카메라로 세상을 읽다
이일훈 글.사진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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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벚꽃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건만 꽃놀이 광경은 어디서나 소란과 소음의 마당이다. 왜 그럴까. 주최하는 이들이 벚꽃을 즐기는 방법 대신 사람 모으는 방법만 찾기 때문이다. 구경꾼들은 서로 떼밀릴 뿐이니 꽃이고 사람이고 정신없긴 마찬가지다. 모든 축제를 동과 양의 축제로 몰고 갈 필요가 있을까. 꽃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정과 질의 놀이가 아니던가. (31쪽)

30~40년 전에는 무슨 신기술이라도 되는 양 도시의 물길을 콘크리트로 다 덮더니 요즘은 생태, 친환경을 앞세우며 다시 뜯어내느라고 난리다. 공사할 때 돈 들이고 뜯느라고 더 큰 돈 들인다. 거리의 나무도 심었다 뽑았다, 보도블록도 깔았다 걷었다......, 무엇 하나 깊은 생각이 없다. 삶터에 고일 시간이 없으니 환경은 늘 어수선하다. 역사 깃든 피마길은 버리고, 광장도 공원도 아닌 이상한 그림 같은 유원지, 광화문에 새로 만드니 그 역시 어설프다. (87쪽)

구멍가게 간판부터 정치까지 광고 행위의 본질은 꼬드김이다. 꼬드긴다라는 말은 연날리기에서 쓰는 말로, 연이 높이 올라가도록 연줄을 잡아 젖히는 것을 말한다. 연줄을 무조건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과 세기를 잘 살펴 젖히는 요령이 필요하다. 꼬드김만 계속 한다고 연이 잘 날지는 않는다. 머릿살과 허릿살의 균형이 맞게 마름질 잘된 연을 꼬드기면 높이 날지만 성글게 만든 연은 꼬드길수록 허공에서 찢어지고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꼬드김은 사탕발림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꼬드기지 못하는 광고는 죽은 광고다. 광고 전문가들은 사탕발림의 흑심을 점잖게 광고의 호소력이라고 말한다. (149쪽)

집을 짓는 일이란 작은 사회를 경영하는 일이다. 수많은 공사가 연결되니 그에 따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복잡하다. 얽히고설킨 일의 과저오가 세사오가 만나는 방식이 까다롭다. 집 짓는 일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람이 땅(자연)을 만지는 일이며, 동네(사회)를 이루는 일이다. 주변 상황을 존중하고 환경을 살리면 자연에 대한 겸양이지만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양과 폐해가 된다. 뭐든 지으면서 생각하지 말고 짓기 전에 생각하자. 짓다 만 집에서도 배울 게 있다. 급하는 하는 삽질과 망치질, 잘못하면 대대로 이 땅에 죄 짓는 일이다. (157쪽)

횡은 가로지른다는 뜻, 달리는 자동차가 주인이고 건너는 사람은 종이다. 횡은 위태로운 글자다. 비명횡사의 바로 그 횡이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육교나 지하도는 노약자 입장에선 또 다른 장애물이다. 보행자 중심으로 개념을 바꿔야 구조가 바뀐다. 횡단보도 아닌 다른 말은 없을까. 왜 자동차가 항상 우선인가, 다른 장치가 없을까. 더 효과적인 도로 설계와 디자인은 무엇일까...... 등등의 탐색이 계속 되어야 한다. (173쪽)

어떤 상황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는 결국 자신과 연결되는 관계의 거리다. 하지만 관계있음과 없음은 물질의 존재 여부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모든 관계란 있는 듯 없는 듯, 먼 듯 가까운 듯, 직접적인 듯 간접적인 듯, 오래된 듯 새로운 듯, 큰 듯 작은 듯 연결되어 있다. 세상 만물과 갖은 현상들은 한 줄로 엮인 망태다. 관계의 그물 속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보이지 않는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 공동성의 지혜다. 인위적 지형에 새겨진 표시는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그 누구는 혹시 당신과 나의 친근한 벗일지도 모른다. (183쪽)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은 공간적으로는 시선의 사각지대와 착시를 말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달려 나가는 앞길 지나면 그 길이 곧 뒤가 됨을 이르는 것이리라. 뒤를 보는 거울에 새겨진 말, 다가올 앞을 가리킨다. (219쪽)

`오신`날은 일 년에 단 하루다. `오신` 뜻대로 하자면 일 년 내내 365일을 님들이 `오시는` 날로 여겨야 마땅하리라. 성탄을 빛내려면 일 년을 예수처럼 사록, 부처림 `오신` 의미를 살리려면 평생을 부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오신` 뜻대로 마음 아픈 이와 서러운 이들을 위로하려면 `오신` 날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을 하루같이 `오시는` 날로 여길 일이다. 오시는 날이 바로 모시는 날이고 사람 바로 사는 날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땅한 일이 가장 어렵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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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기'는 가장 내밀하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이라 감추고 싶고, 누군가는 읽고 싶은 글도 된다. 그런데 시인 스스로 드러낸 일기였느니, 가감승제가 들어간 글이라 본다. 시인일기와 몇권의 책을 뒤적이며 점점 무거워지는 피곤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 시간만 나면 누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데도, 한밤에 몇번씩 잠을 깨서 잠자리를 옮겨가며 몸을 누였다. 낮에는 일에 몰두하니 몸과 머리가 늘 깨어 있는 거 같다. 가끔씩 사라진 '명사'를 되찾기 위해 몇번씩 머리를 굴리고 문장으로 설명을 해 봐야 하는 현상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니 피곤할 수 밖에. 

그간 심리검사를 통한 학생이해라는 주제로 샘들과 이야기했다. 동일한 그림에서 전경과 배경의 차이로 다르게 인식하는 부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선택하여 아는 만큼 해석하는 태도등등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돌아서면 똑같은 오해를 할거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게 가능키나 한건가. 그래도 측은지심으로라도... 방금 읽은 시인도 열과 분을 참느라 고생하고 계시던데. 그럼 그들이 나를 이해시켜 줘야할까. 그들이 나를 위해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그래서 점점 누구를 만나는 게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아프신 후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언제나 오십대로 내맘을 차지하고 계셨는데 팔십오세의 할아버지였다. 얼굴을 마주하고 맛있는 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월을 막아 세우고 싶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인다. 달과 별을 따다 줄 아버지였는데...  

무더위가 넘쳐 몰려오니 1994년 6월이 생각난다. 그 달에 아이가 태어났다. 더위가 갈때까지 울었다. 아울러 쌍벽을 이루는 추위는 1991년 2월이다. 엄청난 추위로 온갖 탈것이 모두 얼어서 눈과 빙판길을 돌아돌아 새파란 얼굴의 하객들로 가득했던 어느 결혼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추위와 더위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기에 견딜만 하다. 

벌써 7월이다. 앞으로 7월을 몇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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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일기 - 2010년 - 2014년
박용하 지음 / 체온365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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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타자다. `나는 타자다` 라고 글을 쓰고 말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와 타자가 행복하게 만나 한몸이 되고 합일하는 순간은 삶의 여러 순간들 중 극히 짧은 한 순간일 것이다. 결국 나는 언제나 나로 돌아오고 만다. 도로 아마타불. 그게 인생이다. (20쪽)

지나간 날들은 손쓸 수 없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지나갔기에 고통에서 놓여나기도 한다. 지나갈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역시 손쓸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역시 내 맘처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손쓸 수 없는 것들의 무덤이다. (34쪽)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소리? 괴물과 싸우려면 괴물을 닮기도 해야 하고, 싸워서 제압하려면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괴물이 함부로 굴지 않는다. (70쪽)

봄날의 나, 심각하다. 일주일째 고압 상태. 화병+우울+분노. 자꾸 열 받으니 언어 감각의 기능 상실은 물론이고 안압까지 상승한다. 화의 근본을 어떻게 처단한담. 어린애 달래듯 해야 하나. 적과 동침하듯 같이 살아야 하나. 화의 꼬리를 자르려 하면 열 꼬리, 스무 꼬리가 되레 더 꼬리치며 기승을 부리니 이쯤 되면 뇌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 내려놓기 힘든 걸 내려놓는 대인들도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나 같은 소인배하곤 먼 얘기. 차라리 추운 겨울은 나았다. 늘 이맘때와 일조량 줄어드는 십일월이 더 힘들었지. 망념 떨치려 오빈리 들판을 걷다 뛰다 걷다 했다. (129쪽)

과거 없이는 현재도 없고 미래 역시 없다. 우리는 어제에서 태어나 어제일 오늘과 오늘일 내일로 살러/죽으러 간다. `화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에 담는 자나 세력은 가해자(죄인)거나 가해의 역사를 가진 자들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지금도 죄를 짓는 2차 가해인 것이다. 꿈에서라도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피해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절대 이유가 거기에 있다. (189쪽)

몸이 원하는 걸 맘껏 하다 죽는 삶은 어떤 삶일까. 좋은 삶일까. 담배 대신 커피를 다섯 잔 이상 마셨다. 난 이미 커피 중독자이기 전에 풍경 중독자이기 전에 삶 중독자였다. (250쪽)

그럼에도 안면 있는 저자가 보내온 책을 참을성 있게 읽어나간 건 담에 만났을 때의 그놈의 `안면` 때문이었다. 도장까지 박아 보낸, 질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그들의 책을 읽는 고역과 읽기도 전에 버려지는 냉대를 그들은 알까. 이 고역과 냉대는 피차일반일 게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서명해 보낸 책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모름지기 지갑을 열고 사 볼 책을 탈진할 때까지 쓸 일이다. 그리고 훗날 한 번이라도 더 펼쳐 읽게 된다면 대성공이다. 책 함부로 보낼 일이 아니다. (261쪽)

여러 날 글을 썼고 며칠 밭일을 했다. 옥수수, 고추, 가지, 오이, 애호박, 맷돌호박, 청상추, 적상추, 파프리카, 피망, 토마토, 방울토마토를 먹을 만큼 조금씩 심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어제와 다를 것도 없는, 그렇다고 어제와 똑같다고도 할 수 없는, 꿈없는, 꾸밈 없는 날들이 삶에 왔다 삶에서 빠져나간다. 삶에 있었던 순간처럼 시에 있었던 순간이 왔다 갔고, 와 있고, 올 것이다. 그렇게 나는 쓰거나 일거나 걸을 것이다. 지난해 삼월, 내게 보낸 너의 글을 페르난두 페소아란 작가가 있었다. 모르는 시인이었다. 그의 [불안의 서](배수아 옮김)를 읽으며 기쁨과 질투가 교차한다. 내가 읽고 있는 글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라는 것을. 그것을 지구 위 한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먼저 했었다는 것을. (264쪽)

인간은 그냥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지 않는다. 누구든 이 지상에서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 없기에 인간은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지상의 인간이다. 최초의 인간이자 최후의 인간이다. (283쪽)

`한국`을 통째 들먹일 것도 없이 내 살고 있는 이곳에도 인생의 연륜 같은 걸 무색케 하는 부끄럼 모르고, 경우 없고, 노회하고 닳아빠진 나이 든 욕심꾸러기 떼쓰는 진상 노인네들이 수두룩하다. `저렇게 늙으면 어쩌나` 나를 다시 살피게 하는 노인네들. 눈과 귀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점점 쉽지 않다. 빤질거리는 우리들의 안면에 뻔뻔하게 박힌 우리들의 안구.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망실한 낯짝들이 우리들 주위를 거리낌 없이 활개치고 있다. 이래저래 괴로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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