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정수리에 불이 날 정도로 햇볕의 기운은 한창이다. 뜨거움으로 온몸이 녹아내릴 지경이다. 방학을 하고 7번 국도를 따라 바다를 보고 왔다. 잠깐씩만 본 바다가 아쉬웠다. 이번 학기는 무지 길고 힘들었다. 많이 위로받고 싶었다. 모두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 뿐이다. 각자 자신의 문제가 우선이니 자신만 보이니, 내게 건네는 말조차 잊기 십상이고 한 조각의 마음도 건너오는 게 멀리 있다. 스스로 위로했다. 어디에도 데뷔하지 않은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조인선 [시], 유진목 [연애의 책]이다. [시]에는 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형태와 형식과 언어의 내용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누구나 시인은 될 수 없을 거 같다. 드러난 메이저는 아니지만 마이너들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 거 같다. 연습생은 아직 곁눈질로 볼 뿐이다. [연애의 책]에는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감정,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너를 내 안에 들이기 위해, 너의 안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붙들어 매기 위한 노력들이 단어하나, 문장에 묻어있다. 두 사람의 사건은 "달콤하기보다는 쓰고 짜며, 아름답거나 고귀하다기보다, 소소하고 촉촉한 감정을 주거나 받으면서 전개될 뿐이다.(97쪽)" 연애의 감정을 잔잔하게(이십대는 다르게 읽힐 수도 있고, 삼십대, 사십대도, 아무튼 오십대는)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영화 '환상의 빛'과 '크고 작은 틀 안에서' 전시회도 보았다. 죽음에 대한 그 어떤 기미도 전조도 없던 사랑하는 이가 기차가 오는 걸 알면서도 타박타박 걸어 간 이유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바다 저 너머에서 아름다운 빛이 비치더래. 반짝반짝하는데 그게 꼭 바다가 부르는 것 같아서 따라가고 싶었데.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는 것 아닐까.(영화속 대사)" 지나간 건 그대로 놓아두고 놓아주자로.

그리고 그때는 분명 한가지색으로 된 한줄밖에 없었는데 지금보니 가로세로 섞여있고 그안에 또 다른 선과 색이 있으니, 어찌 알겠어. 

도무지 산다는 게 나의 시간과 삶도 모르는데 너에 대하여 어찌 짐작이나 하겠냐. 아무리 사랑한다해도 결국 자신을 위해 산다는 거. 너의 죽음에 대한 이유와 여러가지로 표현된 색과 선에서 지금의 내가 가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밖에. 이해하기 힘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와 문장을 만들어서라도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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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책 삼인 시집선 1
유진목 지음 / 삼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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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보았다

한 사람이 가고 여기 움푹 패인 베개가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될 거요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오고 반듯한 베개가 있다

저녁에는 일어나 저녁을 보았다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었다

금방 또 저녁이 오고 있었다

-[신체의 방](10쪽)

우리는 정답게 나누어 마신 병 그러고도 남어서 두고 보는 병 어쩌다 그렇게 독한 병을 서로에게 기울였는지 병을 마시고 병에 취하고 상한 속 붙들고 키들거리면서 예 한 시절 한 없이 즐거웠지요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은 피차 하지 말지요 하 수상한 게 생각이라 없는 게 약이라구요 그래도 삶은 사랑은 낡아진 속옷 모양 푹 푹 뜨거워지니 너무 오래 붙들었나요 사랑은요 무슨 불에 얹어둔 빨래가 넘는다구요 예 예 가봐야지요 아니요 가지고 계세요 지금은 묻지 않겠습니다 -[부재중 통화] 중(66쪽)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의 문장이었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몇 개의 간단한 문장 부호로 수식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는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도치와 철지난 은유로 싱거운 농담을 하면서 매일같이 당신을 씁니다 어느 날 당신은 마침표와 동시에 다시 시작되기도 하고 언제는 아주 끝난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나는 뜨겁고 맛있는 문장을 지어 되도록 끼니는 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이 없는 문장은 쓰는 대로 서랍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맨 아래 칸을 비우던 기억이 납니다 영영 못 쓰게 되어버린 열쇠 제목이 지워진 영화표 가버린 봄날의 고궁 입장권 일회용 카메라 말린 꽃잎 따위를 찾아 냈습니다 이제 맨 아래 서랍이라면 한사코 비어 있길 바라지만 오늘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당신 옆에 쉼표를 놓아 두었습니다 나는 다음 칸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쉼표처럼 웅크려 앉는 당신 그보다 먼저는 아주 작고 동그란 점에서 시작되었을 당신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문장을 생각합니다 -[당신, 이라는 문장](76쪽)

(윗글에 이어서)당신이 있고 쉼표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 문장 나와 당신 말고는 누구도 쓴 적이 없는 문장을 더는 읽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깜빡이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참 아득해져 있나요 맨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당신, -[당신, 이라는 문장](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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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를 마치는, 마음이 서늘하고 쓸쓸하고 허기지는 이맘 때, 읽은 글은 충분히 마음을 데펴주고 채워주고도 남았다. 어디론가 가야 될 듯한 발길을 멈춰 세웠고, 무언가를 사야할 거 같은 손길과 누군가를 만나야 할 거 같은 두리번거림을 거두게 했다. 오십이 넘은 이가 읽으면 딱 좋다. 어린 청춘들은 모르는 단어들이 종종 나오기에 그리고 이 두꺼운 책을 참아가며 읽어내야 할 거 같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감흥이 되었고, 어떻게 마음이 가라앉게 되었는가의 내용을 적어야 하는데 순 껍질만 적는다. 좋았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이 한마디로 일갈하려는 정도다. 그 속에 무엇이 좋았고, 어떻게 즐거웠는지, 행복의 내용은 어떤건지에 대한 것을 목성균의 수필처럼 담담히 적어가면 되는데-언감생심이지만, 생활을 이리 쉽게, 잔잔히 쓴 그분을 닮고 싶어- 그게 남의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적는다는 건 도무지 쉽지 않다. 나의 경험이 부족하고 삶의 내용이 빈약해서, 아님 도무지 느낌의 깊이와 너비에 닿기 전에 아주 심플하게 단 한줄로 정리되는 느낌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막연하지만 좋았던 것을 하나씩 풀어쓰면 될 듯 한데도. 이때껏 쓴 페이퍼 내용을 보면 좋았다 정도로 그친 게 전부인 거 같다. 글을 읽으며 이맘 때 느끼는 반성과 후회의 밑바닥 마음에도 자뻑과 자축을 할 정도의 힘을 얻었다. 괜찮다와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계속 해 준 글이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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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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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두 남녀가 이루어 가는 `우리`라는 단위의 인생은 단순한 연출의 누적에 의해서 결산되는 것인지 모른다. 약간의 용기와 성의만 있으면 가능한 연출을 우리들은 못하든지 안 한다. (28쪽)

나는 사람 사는 것이 다랑논 부치는 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랑논을 보면 삶이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는 게 얼마나 건방진 수작인가 싶다. 다랑논은 삶의 원칙 같다. 다랑논의 경작은 삶에 대한 애착의 일변도 같다. (32쪽)

기러기 떼는 높이 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은 비단 시계에 국한된 말은 아니리라. 안데스산맥 높이 나는 독수리는 눈으로 사냥감을 보는 정도지만 추운 밤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본다. 그것은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90쪽)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피붙이 같은 세간들이다. 그 세간을 비워 낸 집은 집이 아니고 삶이 머물렀던 흔적일 뿐이었다. (141쪽)

숨가쁜 삼복지경, 작열하는 불볕 아래 엎드려서 곡식을 가꾸는 농부들은 가혹한 삶의 비등점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인내한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그 말은 참을성이 모자라는 사람이 하는 소리일 뿐, 여름 농부에게는 가당찮은 말이다. 여름 농부의 참을성은 끝이 없다. 농부의 참을성은 곧 삶 자체인 것이다. 저문 밭고랑에서 허릴 펴며 돌아볼 때 자신이 온종일 지나온 깨끗한 밭두둑에 서 있는 곡식의 싹수 있음이 참을성의 원인이긴 한다. (163쪽)

그 강을 건너서 참 오랫동안 우리 부자는 각자의 인생을 나이 차이만큼 떨어져서 걸어왔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확신을 갖지 못하시고 불쾌한 얼굴로 돌아보며 저만큼 앞서 가시고, 아버지에게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나는 주눅이 들어서 그 뒤를 따라왔다. 그 까닭은 아버지의 힘에 대한 위압감 때문인데, 그때마다 그 강이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로서 그 범람하는 필연의 강에 섰을 때, 과연 나는 열세 살 먹은 내 자식을 건사해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그런 내 의지의 박약함을 눈치채시고 나를 `못난 놈`하고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늘 움츠러드는 것이다. (171쪽)

알밤 빠지는 소리는 작다. 마음이 조용히 머물러 있어야 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분망한 철없는 시절에는 못 듣는다. 할머니 말마따나 철이 나야 들린다. (197쪽)

드디어 전장포에 도착했다. 조용했다.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도 별로 없다. 돌담 너머 납작한 집의 툇마루에 늙은이들만 더러 봄 햇살에 속절없이 늙고 있었다. 어떤 집은 빈집인 채로 봄 햇살에 집이 혼자 늙고 있었다.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침묵하는 동네의 적적한 고샅을 돌아가자 작고 쓸쓸한 포구가 나타났다. 자포자기하고 주저않은 사람처럼 실망스러운 포구의 모습이었다. (260쪽)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기호품마저 몰개성적으로 규격화되었다. 조금 더 있으면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유전자나 염색체까지도 규격화해서 거추장스러운 격, 성, 정을 배제시킨 인간을 만들어 낼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편할까? 자존심을 상하고 울분으로 밤을 지새울 일도 없을 것이고, 그리움 때문에 시린 노을빛 속에 서서 마음을 떨 일도 없고, 배신 때문에 죽이고 싶은 미움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성공을 위한 분발심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수컷의 뜨거움도, 연민과 고독을 기대고 싶은 신앙심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66-267쪽)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방 밖의 눈보라치는 소리를 듣는 행복감을 작고 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죄 된다. 기실 삶의 각고가 누적된 후에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북하면 과묵하신 할머니가 `참 좋다`고 한숨처럼 감탄을 하셨을까. (297쪽)

불영계곡은 가을이 제일 좋다. 만산홍엽이 동면을 서두르는 처연한 몰락의 가을 절정기보다, 모든 걸 다 떨쳐버리고 잠드는 순리의 침묵 가득한 늦가을의 골짜기가 좋다. 그때의 불영계곡은 모든 것이 다 홀연하다. 흐르는 물도, 산등성이의 나목도, 바위도, 모든 거싱 신생대의 지각 변동을 치르고 난 골짜기처럼 너무 조용해서 마음이 엄숙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홀연히 인정하는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 편안함의 극치, 그래서 좋다. 그런 감정은 깊은 가을에 깊은 골짜기에 들면 어디서나 느끼게 마련이지만 나는 불영계곡에서 더욱 분명하게 느낀다. (389-390쪽)

그러니 반짝하는 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인생이란 연못가의 봄풀이 미처 봄꿈이 깨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이파리가 가을 소리를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야. (422족)

이른 봄이면 장원처럼 새파란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지지배배`거리며 하늘 높이 떠오르고, 초여름에는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 심해처럼 너울을 짓고 출렁거렸다. 저녁 때 노을지는 큰밭 머리에 서면 뉘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해서 나는 노을에 귀 기울이고 한참 동안 서 있기 일쑤였다. (540쪽)

돈독한 모습은 돈독한 사이일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그 사이는 하루 이틀의 사이가 아니라 세월이 걸리는 사이다. 춘분 때까지 한 항아리에서 묵은 배추김치 같은 사이다. (564쪽)

백로 때의 들녂은 마치 대운동회날의 점심시간같이 한가롭다. 여름날, 숨가쁜 농부의 허둥대던 소리의 여운이 남은 빈들은 목이 터지라고 외치던 응원 소리와 작은 발자국이 힘을 다해서 내닫던 숨찬 소리를 잠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청군 백군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빈 운동장 같다. 농부들이 어정거리던 들머리는 맑은 햇살만 내릴 뿐 본부석 천막 아래처럼 아무도 없다. 잠시 후, 확성기에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면 5, 6학년 여학생의 율동으로부터 운동회의 오후 순서가 진행되듯, 한로가 지나면 농부들은 갈걷이를 하러 들에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농부들은 운동장 가장자리 펄펄 끓는 국밥 솥 곁에서 학부형들과 얼굴이 벌게서 크게 웃는 선생님들처럼 들녘 가장자리의 주막에서 적조했던 친구들과 그렇게 어울린다. 그 소리가 아련히 들판을 건너온다. 그게 백로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573-5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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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무언가를 받고 싶었다. '사랑하는 **에게' 라고 적어 달라 했다. 글씨를 잘 못쓰는데라고 몇번 말했고, 적을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아 은근 좋았다. 사랑하는 너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어 계속 남아 있을 거니까. 개인에 따라 더럽혀지지 않고 당장은 사라질지라도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흰 것에 관한 이야기를 추억하며 읽었다. -나에게서 흰 것의 의미는 때묻지 않고 너만 바라본 마음, 기다린 마음, 너에게 건낼 때 나의 가녀린 흰 손과 흰 손수건, 너를 위해 쳐준 비창, 뽀얀 막걸리, 무엇이 좋을까요하고 마음이 건너간 그 시간들, 같이 부른 노래, 함께 다닌 길, 긴가민가하는 알까말까하는 조바심, 너의 마음을 많이 차지하고 싶은 열망,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고 싶은 노력등... 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91쪽)'야 감당할 마음이 생길 거 같다. 나의 흰 것들이 지금으로 건너 올 때는 언제든 결별을 열어둬야 한다는 거. 아직도 흰 것으로 남아 있을 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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