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쓸쓸해도 돼 - 김광석을 사랑한 서른네 명의 시인들
박준.김이듬.김행숙.장석주 외 지음, 김현성 기획 / 천년의상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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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늘 겉돌고 둘레를 헤매면서 찾아가는 편이 좋다. 중심보다 둘레를 사랑하는 일이 시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지워지는 세계, 느낌이 왔던 자리, 누군가 철봉에 매달렸던 희미한 손자국, 손가락 위에 반지가 있던 자리의 희미한 흔적 같은 것, 몇 억 년 된 물방울 등은 모든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한 번쯤 자리를 잡으려고 애써던 자리가 아닐까? 이 세상엔 교환과 거래의 법칙보다 그런 것에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세계관에 대해 묻는다면, 어린 시절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버린 잃어버린 로봇다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남의 집에 놀러 가면 제일 먼저 그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 집으로 들아와 이유 없이 우리에게 화를 내시던 어머니, 화분을 너무 좋아하던 그녀가 어느 마당 넓은 남의 집에서 몰래 작은 화분을 안아서 훔쳐오던 도둑질을 훔쳐보던 날의 경험은 누구에게 고백해야 하는 것일까?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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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저녁을 차린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의 어머니이다.

* 저자는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이기에 개개인의 동기가 있다면, 선호와 선택에 따라 이득이 남을 수 밖에 없고, 원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에 따라 자신에 대한 투자의 크기에서 실패와 성공이 따르고, 죽음까지 자원의 부족으로 죽는다고 한다. 배고파서 죽을 수도 있지만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다.

* 애덤 스미스라는 한 인간이 있기 위해서는 연결된 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관계에서 파생되는 내적인 부분과 생물학적 차이를 모두 배제해 버린 경제는 남성의 몫으로 한정시켜 버렸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이 경제활동의 필수이다.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혼자서만 독식하면서 살 수는 더더욱 없다. 사적영역이든 공적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경제이다. 경쟁의 상태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돌보고 나눠주는 여성의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우연이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고기 다지기, 밥 차리기, 접시 닦기, 아이들 옷 입히고 학교에 데려다주기, 쓰레기 분류, 창틀 먼지 청소, 침대보 세탁, 잔디깎이 수리, 차에 기름 넣기, 바닥에 널브러진 책과 레고 조각들 정리, 전화 응대, 현관 청소, 아이들 숙제 돕기, 마루 닦기, 계단 청소, 침구 정리, 공과금 납부, 싱크대 청소, 아이들 재우기, 이 모든 게 여성이 하는 일이다.(93쪽)' 아울러 여성의 가장 큰 일은 임신과 출산이다.

* 경제가 여성을 대하는 관점을 조금 알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어머니를 망각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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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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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31쪽)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 난다는 점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일 뿐이다. 여성이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의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수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만이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가졌다는 것의 의미는 여성만이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가졌다는 것일 뿐이다. 이사회의 임원으로 일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61쪽)

돈을 나눠 가질 때, 5세 어린이들은 돈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고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싶어 했다. 가질 수 있는 액수가 적은 경우에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일단 쥐고 봤다. 경제적 인간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5세 아이들이 아니다.
아니면 실은 5세 아이들인가? (149쪽)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를 없애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은 ‘정치가 시장을 섬기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합리적 행동을 장려해 경제를 이끌고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은 정치가 경제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가 손을 바쁘게 놀리도록 하는 상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214쪽)

경제학자들은 낭만적 관계를 두 명의 독립적인 개인 사이의 합리적 계산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낭만적인 관계에서 실제로 의미가 있는 것은 모두 제외해 버린다.(...)느낌이나 감정은 사람의 일부가 아니다. 경제적 인간의 세상에서 느낌이란 분류하고, 정리하고, 쌓고, 구분하는 것이다. (250-251쪽)

무엇이 의존이고 누가 누구에게 기생해서 사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정치적인 문제였다. 애덤 스미스가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가, 어머니가 애덤 스미스를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고, 따라서 사회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할 매체가 필요하다. 현재의 경제학에 인류의 현실적인 경험을 위한 자리는 없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허구의 인물,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인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당연히 인류가 직면한 바로 이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심지어 남성마저도 가지고 있지 안은 그 남성적 특성에 대한 가정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281-282쪽)

여성들이 돌보는 일을 책임지는 것은 자유 선택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고, 본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는 아무 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를 적용한다. 북유럽 복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 체제는 여성들이 아주 낮은 비용으로 특정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92-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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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글 안에는 지속적으로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고독이 들어있다. 쫀쫀하면서 깊이 있는 단어들로 불편감이 자꾸자꾸 밀려와 마음에서 몸까지 와 다았다. 표지 안의 헤밍웨이 사진을 한참 보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글도 꼼꼼히 읽었다. 작가는 전무후무하게 자신을 몰아갈 수 있는 먼 곳까지 나아가서 작품을 써야 함을,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고독한 삶이라고 한다. 자신을 제련하며 몰아부쳐 정제된 가장 압축된 단어하나, 문장을 뽑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읽다 보면 정말로 쓱 느껴진다. 아프고 고통스럽다.

2. 지난 주말에는 절친과 상학시인을 만나 봄날을 즐겼다. 신문로 어느 골목길을 지나 정동고갯 마루까지 가면서 꽃다지, 별꽃, 냉이꽃, 봄까치꽃, 자목련과 이야기 나누며, 탑하나로 남은 러시아 공사관 자취를 뒤로하고, 서촌블루스에서는 박남준시인이 가져온 벚꽃과 진달래가 머리 어깨 술잔에서 다시 피었다. 이시백소설가의 이야기와 버무린 노래를 맘껏 들으며 박남준시인이 만들어 준 화전을 보는 순간 환호가 절로 나왔다. 비틀즈가 곳곳에서 보고 있고, 엘피판으로 들리는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는 끝내줬다.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을까. 해피했다. 

3. 시인, 소설가들을 만나면 그들의 글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나는 너무너무너무 단순한 삶이어서 그 어떤 스토리도 없어서 글 한줄 쓰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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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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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난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우리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군."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그는 이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4쪽)

그는 사실 여자들을 손에 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너무 복잡했다. 물론 그것말고도 다른 무엇이 있었다. 막연히 여자를 원하기는 했지만 여자를 얻기 위해 실제로 작업을 걸기가 싫었다. 여자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도 싫었다. 호기심을 끌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용의주도하게 굴기도 싫었다. 구애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게 싫었다. 이제 더는 거짓말을 하기가 싫었다. 하나같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36-37쪽)

입씨름을 그만둔 건 참 잘한 일이야, 하고 사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여자와는 그다지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했던 다른 여자들과는 싸움이 너무 잦아서 부식 작용처럼 언제나 그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던 것까지 갉아먹곤 했다. 그는 너무 많이 사랑했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마모시켜 버렸던 것이다. (67-68쪽)

......그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끝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부분은 씻을 수 없을 만큼 돋보이는 채, 그 일은 일어났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참한 마음으로 그 일을 부끄럽게 떠올렸다. 아니, 부끄러움 이상으로 싸늘하고 공허한 공포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때는 자신만만하던 자리에 두려움이 마치 차갑고도 끈적한 텅 빈 동굴처럼 그대로 남아, 이내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그런 느낌이 지금까지도 그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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