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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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난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우리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군."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그는 이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4쪽)

그는 사실 여자들을 손에 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너무 복잡했다. 물론 그것말고도 다른 무엇이 있었다. 막연히 여자를 원하기는 했지만 여자를 얻기 위해 실제로 작업을 걸기가 싫었다. 여자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도 싫었다. 호기심을 끌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용의주도하게 굴기도 싫었다. 구애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게 싫었다. 이제 더는 거짓말을 하기가 싫었다. 하나같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36-37쪽)

입씨름을 그만둔 건 참 잘한 일이야, 하고 사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여자와는 그다지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했던 다른 여자들과는 싸움이 너무 잦아서 부식 작용처럼 언제나 그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던 것까지 갉아먹곤 했다. 그는 너무 많이 사랑했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마모시켜 버렸던 것이다. (67-68쪽)

......그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끝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부분은 씻을 수 없을 만큼 돋보이는 채, 그 일은 일어났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참한 마음으로 그 일을 부끄럽게 떠올렸다. 아니, 부끄러움 이상으로 싸늘하고 공허한 공포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한때는 자신만만하던 자리에 두려움이 마치 차갑고도 끈적한 텅 빈 동굴처럼 그대로 남아, 이내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그런 느낌이 지금까지도 그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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