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차게 비가 내리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다 햇살이 쨍쨍하다. 밀린 빨래를 하고, 학창시절 읽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마저 읽었다. 불쑥불쑥 나오는 기억들은 어느 순간 슬픔으로 연결되었다. 

닿을 듯 먼저 가있는 슬픔의 기억들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영영 바꿀 수 없는, 그래도 아직까지도 수긍하고 싶지 않는 기억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휘젓고 저미게 한다. 이런 기억들은 누군가의 뒷 모습에서도, 비오는 소리를 듣고서도, 어떤 행동이나 물건에서도 불현듯 나타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도처에서 나타나면서, 어딘 가에 들어가 있다.

돌아보면, 이상 속의 누군가나 바라는 행동보다는 -실제도 그러한 사람이나 상황은 부재- 바로 눈 앞에 있는 그럴 듯한 사람이나 행동을 속속히 알기 전에 드러난 모습, 손짓, 목소리 등이나, 그럴듯한 핑계나 이유를 들어 행동을 선택한 것 같았다. 순전히 나의 감정이 좌우한 셈이었다.

요즘의 슬픔은 기억과 맞물려 있다. 작가도 자신을 슬프게 한 것을, 그렇다고 슬픔에 휩쓸리지는 않으면서 담담히 관조하듯 드러낸다. 아직도 슬픔을 넘어서는 일은 도정에 있는 것 같다. 슬픔이 나쁜 감정은 아닌데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드는게. 비가 오니, 그 속에 자꾸만 머물러 있다.

'북클럽' 영화보다. 주인공들의 나이, 특히 제인폰다는 80이 넘었는데, 영화와 현실 간의 간극에서 아직도 헷갈리고 있다. 나의 심한 편견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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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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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인간. 들판에 피어오르는 연기. 숲 길에 흩어져 잇는 비둘기의 깃털. 벼락부자가 되어 자동차에 앉아 있는 여인의 가녀린 좁은 어개. 줄타기 묘기에서 세 차례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먼지 낀 서류에 뭔가 기록하고 있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만월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몇 구절 시구.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뒤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꽃피는 나뭇가지로 떨어지는 눈발......
이 모든 것은 우리들 가슴에 스며들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15쪽)

아, 세월 안에는 얼마나 유사한 반복이 자리 잡고 있는가. 이렇게 뇌우가 몰아치는 날, 땅거미 지는 어스름 속에 나 역시 똑같이 여기 서 있다. (62쪽)

이 어린 시절의 모험 위로 끝없는 세월이 흘러, 모래가 해변의 조개를 뒤덮듯이 다른 체험이 그것을 뒤덮었다. (79쪽)

그들과 맺은 우정이 이후의 내 인생에까지 살아 이어진 친구는 내게 한 사람도 없었다. 학창 시절이 흘러간 뒤의 인생 행로에서 나는 아무와도 재회를 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친구가 피의 구름 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111-112쪽)

건초의 향내 속에서, 이미 죽음에 의해 베어지고 망각의 세계에 묻혀버린 그 옛날의 풀을 베던 무리들의 아물아물 떠오른다. (중략) 콧마루를 벌름거리며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마른 풀의 아물거리는 향내를 함북 들이마실 때면, 그들 모두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서 되살아 움직인다. (125쪽)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내면의 긴장상태를 위해 무엇이든 행동을 하지 앟으면 안 되는 걸까? 어떤 무의미한 행동,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이 억제할 수 없는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 언제나 하찮은 것, 엉터리 같은 것, 어린애 장난 같은 것뿐이었어...... (154-152쪽)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울림. 태초로부터 설레어온 숲의 음성. 땅 위에 한 점의 바람결조차 느겨지지 않는 경우에도. 수관을 흘러가며 말을 건네오는 그런 숲의 살랑거림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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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다. 칠월이 되자마자, 줄서서 기다려 먹는 음식은 맛있을 수 밖에, 덤으로 얻은 어스름한 저녁 바닷가 산책과 늦은 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있는, 괜히 멋있었다... 그리고 친구를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통창문을 열어두어 시원했다. 주중이라 사람들도 적당히 있었다. 책이 아주 많았고, 사이 사이 들어가 책읽기 좋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작나무 행주와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선물했다. 맛있는 점심은 친구가 샀다. 책을 사준다는 말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층 중간 층에서 커피마시고 이야기하고 이책 저책 읽기도 하고 몇 시간을 보냈다. 기분이 좋았다... 아주 무더운 날에 조카 결혼식으로 각지의 식구들이 우리집으로 왔다. 가족 생일 축하로 또 식구들이 진천에서 만났다. 맹동면이 도시가 다 되어서 깜짝 놀랐다. 생일빵은 잠깐 고장난 엘리베이터로 16층에서 지하 2층까지 내려가는 거로 셈했는데, 애궃은 우리는 뭐지, 하며 웃었다... 멀리서 기꺼이 모인 다는 것, 모일 수 있다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사물들이 들어있다. 특히, 돈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많은 것을 대신한다. 마음을 표현하는 축의금, 외식비, 생일 축하금, 선물까지, 먼곳까지 가볍게 데려다 주기도 오기도 하게 한다... 일상의 사물 속에서 철학자들의 지혜를 찾아내고 연관지어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서른 개의 사물들을 연관된 것끼리 다섯 부분으로 분류하여 새롭게 보게 한다... 최근 라디오를 선물받았다. 비가 오는지 비와 관련된 노래가 많이 나온다. 온전하게 라디오를 듣고 있다니, 몇 십년만이다. 라디오에 들어있는 나의 시간과 추억들이 소환되고 있지만, 카메라(카메라는 사라지는 것들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대상을 전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망각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생겨나는 순간부터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소실점에 가 닿는 순간 사물은 사라진다. 146-147쪽), 조간신문(아울러 신문에 보도된 공포, 전쟁, 사고들, 잔혹한 사건, 끔찍한 자연재해 기사들은 이미 지나간 것들이다. 세계가 엄청나게 시끄럽더라도 신문은 조용하다.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사고와 사건들이 터지지만, 신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210-211쪽)과 같은 의미다. 모든 사물은, 사람까지 사라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제든 사라져도 괜찮도록 마음을 단단히 하면서, 지금은 책, 커피, 라디오가 곁에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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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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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보이지 않는 깊이가 아니라 그 표면으로 말하니, 사물의 표면이 말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라. 깊이라는 잣대로 사물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깊이란 실로 추상과 모호함, 혹은 거짓 형이상학의 변성에 지나지 않는다. 깊이의 의미심장한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고 섣부른 예단이다. (4-5쪽)

표면은 깊이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유나 인격이 깊이를 머금지 못할 때 말과 행동은 들뜸, 허장성세, 수박 겉핥기, 경박함으로 흘러간다. 우리 사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 들뜬 분위기에 감싸여 있는 듯하다. 감정이 들떠 있는 사람은 사물이건 무엇이건 고요히 응시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느끼고 판단함으로써 자주 실수하고 낭패를 본다. (35쪽)

산다는 것은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모든 빨래는 사람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불가역적 시간의 포획물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 불가역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것은 낡아지고, 깨끗한 것은 더러워진다. (41쪽)

선글라스는 일종의 가면이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자는 그 뒤로 숨는다. 선글라스는 눈빛과 눈동자를, 그리고 내면 심리를 가린다. 선글라스를 끼고 난 뒤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73쪽)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자극해서 제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종말론을 유포한다. 나쁜 종말론은 ‘나‘의 개별화된 죽음을 세계와 함께 자살하는 것으로 바꾼다. 세계의 종말이란 없다. 단지 ‘나‘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종말의 순간에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우글우글하다. 종말론자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뜨거운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다. 욕조 목욕이 주는 안락과 평화 속에서 관대해지는 것. 그것이 엉뚱한 종말론에의 유혹에서 우리를 구제한다. (91쪽)

가죽소파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체이긴 하지만 만짐과 만져짐 사이에는 어떤 정념도 생기지 않는다. 신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기에 순수한 자기감응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과 우리 사이에 어떤 형태의 가학증과 피학증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가죽소파의 현전은 수동적 타성태로 굳어지는 ‘있음‘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가죽소파 위에 몸뚱이를 가로 눕히고 주말 휴일을 빈둥러길 때 우리는 가죽소파와 몸뚱이가 하나로 연결된 신체로 변하는 사태를 겪는다. (111쪽)

사진의 본질은 더도 덜도 아닌 멈춤, 시간의 얼어붙음, 죽음이다.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현실의 시간에서 뒷걸음질 쳐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이때 과거란 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이다. 과연 죽음뿐일까? 사진은 시간과 존재의 정지라는 맥락에서 죽음이다. 동시에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존재의 회귀로서의 생생한 삶을 겪게 한다. (146쪽)

정글은 자연이 아니라 일종의 무대장치일 뿐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스펙터클과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접촉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정글과 그 정글이 만드는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주체다. 이 스펙터클을 보면서 이것에 한없이 길들여지는 우리들. 이제 가려져 있던 진실을 폭로하자! 우리가 텔레비전의 주인이 아니라 거꾸로 텔레비전이 우리를 포확하고 길들이는 권력의 대리인이자 능수능란한 조련사였다는 것을! (161쪽)

신문에서 리얼리티는 중요하게 취할 만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간신문을 읽는 이 시간에 서리는 유유자적, 햇빛의 기쁨, 멜랑콜리의 안온함이다. 조간신문은 멜랑콜리의 안온함으로 우리의 들끎는 욕망을 다독인다. 조간신문을 읽는 이 시간에 꽃잎 내려앉듯 쌓이는 정밀한 고요와 잔잔한 기쁨을 속속들이 맛보려 한다. (211쪽)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서잉 만든 견고성들이 어떻게 해체되면서 액체화하고, 세계가 어떻게 ‘고형적‘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는가를 조목조목 짚는다. 땅이 물렁물렁해지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지유주의적 지구화, 국제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 통제 불가능한 시장의 변덕, 국수주의, 테러리즘의 위험성들로 사회적 토대가 물렁물렁해진다. 따잉 언제 푹 꺼질지, 그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의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개인들의 삶 역시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의 영역으로 떠밀린다.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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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그동안 밀린 잠을 실컷잤다. 의도라기 보다는 마구 쏟아지는 잠에 그저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니 시간과는 무관할 수 밖에 없는 보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마침 언제든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던 자동차를 누군가가 박은 상황이라 정비소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주차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다행이었다. 김영민의 책을 선물로 준다기에 덥석 받았는데, 김영민이라는 작가가 몇명있나 보다. 내가 생각한 그분이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제목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침부터 웬 죽음, 삶의 끝을 알려주는 죽음을 목전에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질까. 어쩌다 태어났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라는,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삶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마음을 나눠야 하는지도 역시 모르겠다. 각자의 경험치로 세상을 보게 되고 받아 들이고 다시 조금씩 경험을 넓혀가면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삶들도 있고, 만나기도 하니, 그들까지 온전히 받아들여 이해해야 하는지, 아님 모른척 해야 하는지는. 죽기 전에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의 인생에 대해 그 누군가가 말해 줄 뿐이다. 그것도 관계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 드디어 잠을 떨치고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고 왔다. 이번 여행이 나의 마음을 넓히게 해 줬다나, 그녀의 잣대로 들었다. 내마음이 넓어졌다고, 난 조금 깊어 진거 같기는 한데. 그녀와 나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모습이다. 관계의 상태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지고 내용의 질도 한참이나 멀리 가기도 한다. 우린 죽음의 문턱까지 한번씩 가본 경험이 있는지라, 웬만한 건 시시하다고 느끼는 게 많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나머지 삶은 덤이니, 어떻게 살아야지 큰 다짐이나 계획보다는 지금 있는 그대로 살자, 요즘은 건강하게 살자를 말로만 외치고 있다. 그리고 죽게 되면 죽는거지,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너무 거창할 지 모르지만, 되도록 그렇게 살려고 한다... 요즘 원하는 건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아주 많이 먹고 싶다. 동해로 맛집여행을 가려한다. 엄지네포장마차, 스카이베이뷔페, 테라로사커피, 박이추커피, 쉘리스커피, 나폴리아커피, 속초생대구탕, 김영애할머니순두부, 봉포머구리집, 청초수물회, 삼교리동치미막국수, 버드나무브루어리, 풍년갈비, 얼라이브홈, 큰기와집, 테라스제이등이다. 칠월도 즐겁게 잘 살자!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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