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왔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물건들과 누리고 있는 사상들을 탄생부터 차례대로 관련 철학자들과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알파벳, 글로 남길 수 있고 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환상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지금 우리는 오래전의 사라진 사람들과 이론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책꽂이에서 눈에 띈 책, 당연하고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우리 손에 그리그리하여 들어왔구나를 알 수 있다. 언제나 질문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뭐라도 끄적해야 한다.

사람이든 시간이나 사물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가 어느 듯 흔하고 뻔한 보편적이고 당연하여 잊혀져 갔는데, 그래서 다시 특별한 것들을 찾게 되고...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올해의 봄에서 이 평범이, 손 뻗으면 언제든 닿는 곳에 있어 너무도 흔했던 이러한 일상이 실지로는 특별하고 귀한 것임을 새삼 느낀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내가 지금 느끼고 보는 것이 이전과 이후와는 완전 다르고 어느 누구와도 다르기에 현재가 귀한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특별하고 상관해야 할 것이고 소중한 것이 된다.     

 

'봄날은 간다'를 여러 가수들의 버전으로 듣고 있다.

 

 

화양연화 /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리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화양연화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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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4-0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사인의 이 시를 여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

JUNE 2020-04-03 10:50   좋아요 0 | URL
어쩜 마음의 소리를 이렇게 잘, 김사인님께 감사하죠.. 해피데이~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 - 언제 어디서든 거부할 수 없고, 상관해야만 하는 질문
마르틴 부르크하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을 글로 잡아내고 다시금 글을 가지고 생각을 거듭하는 철학이고 보면, 알파벳을 소중히 여기는 철학의 속내를 알 만하다. 생각을 그림처럼 잡아둔 글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생명력으로 영원이라는 환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25쪽)

진리란 언제나 단 하나이며,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진리라면 이는 곤란하다. 더욱이 진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51쪽)

일상의 익숙함에 젖은 인간은 동굴에 갇힌 사람과 마찬가지다. 단지 진리의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 진리 그 자체는 보지 못한다. (중략) 한마디로 정신의 세계로 올라가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54쪽)

십자가와 더불어 다른 세상이 있을 가능성이 등장했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천국의 정치를 펼쳤다. 주기도문을 외우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소서!"라고 거듭 간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에는 유토피아의 차원이 담겨 있다. 플라톤에서 정신의 세계가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빛이었다면, 십자가는 하늘과 땅이라는 두 영역이 언제나 동시에 현존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늘과 땅이 우리를 이루는 두 부분이며, 우리의 이중적인 본성이라고 말이다. (83-84쪽)

그때까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부여받는 것으로 여겼다면("귀족 혈통주의), 시토 수도회의 노동 질서는 인간이 자신의 지위를 손수 일궈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귀족의 특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실제적이고 입증 가능한 업적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시토 수도회는 중세 사회가 성직자와 기사, 농부로 구분 해놓은 굳어진 신분 질서를 극복했으며, 그 자리에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질서를 놓았다. (95-96쪽)

모든 권력을 제후라는 중심에 집중시키면서도 겉으로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대의로 삼는 정치체제를 꾸리려는 논으가 일어난 것이다. (중략) 정치적으로 볼 때, 중심 중시 관점이란 곧 권력의 언어이자 대의제 정권을 뜻한다. (127쪽)

개인은 혈연과 전통이라는 속박을 끊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그림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자유에 이르러야 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런 자유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화의 저 깊숙한 내면에서 도도히 흐르던 원류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힘으로 터져 나올 때, 비로소 자유는 고개를 들었다. (137쪽)

제후라고 해서 위에서 말한 좋은 성격을 모두 지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진 듯이 보이게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하다. 청치는 일종의 속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152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통찰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유치한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우리의 상상이 빚어놓은 것이기에 혹시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는 비판 정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180-181쪽)

즉,인간이 각 개인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따를 때 결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공동의 부를 키우는 결과를 낳도록 유도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다. 탐욕과 이기심이 공동의 복리를 향상시킨다는 이 놀라운 변신이야말로 경제학을 탄생시킨 야합이다. 이로써 경제학은 죄책감과 속죄같은 까다로운 도덕의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었다. (186-187쪽)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품은 시리즈로 생산되며, 얼마든지 복사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눈길과 감각은 기회되거나 복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주목이나 관심을 귀한 재화로 이해한다면 많은 일이 쉽게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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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거리두기, 방콕하기, 냉장고 파먹기, 라디오 듣기, 수세미 뜨기, 붕어빵 만들기, 콜라비 깎아 먹기, 말린 비트와 여러가지 넣고 물 끓이기, 콩나물 봄동 부침개, 쇼핑... 좋아하는 원피스는 설겆이할 때 입어야 하나, 점점 불어나는 듯한 외모, 거울 속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하게 되는, 간간히 오던 전화도 없고, 마스크사려고 줄 서는 것이 싫어 천마스크와 거즈를 잔뜩사서 가끔씩 동네 한바퀴 돌 때 사용한다. 실컷 잠자고 실컷 먹는 중인데, 총량의 법칙에 따라 이때껏 건너 띈 식사를 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의 이 생활이 나이 들면서 지속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간히 여행을 떠나고 연중 행사로 만나는 서너명의 친구들이 전부이니, 책 읽기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 같다. 소설 읽기에서 우리는  '소박한 독자' 이거나 '성찰적인 독자' 일 수 있다. 소설 쓰기 또한 소박하거나 성찰적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동시에 둘 다일 수 있다. 소설 읽기는 소설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환원하여 세부사항에서 점차 중심부를 찾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인위적인 면을 성찰적으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에 의해 묘사된 풍경들을 우리와 동일시하여 다른 세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설을 통하여 세상을 만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소설의 내용이 실재일까 허구일까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을 때는 다른 의미로 -성찰적으로- 남게 된다. 그림은 보여지는 소박한 면에 치우친다면, 소설은 상상하면서 소설 속에 들어가 성찰적인 면을 훨씬 더 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림이 우리집에 걸려 있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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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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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12쪽)

소설 읽기의 진정한 희열은 세계를 외부가 아니라, 안에서, 그 세계에 속한 등장인물의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그 어떤 문학 형식도 제공하지 못하는 속도로, 전체 풍경과 찰나의 순간을, 일반적인 생각과 특별한 사건 사이를 오갑니다. (18쪽)

우리는 소설이 사실만큼이나 상상에도 의거한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 아니라, 소설이 독자들에게 이런 착각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이것을 위해. 실재와 상상을 혼동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 순간 우리가 느낀 것은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성찰적이 되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읽기는, 마치 소설 쓰기처럼, 이러한 두 가지 정신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입니다. (중략)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관찰로부터 출발하여, 처음에 약속했던 감춰진 진실로, 중심부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48-49쪽)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풍경을 소설 주인공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소설 주인공이 풍부한 풍경의 일부라는 것을 압니다. 이후 주인공은 그가 속해 있었던 풍경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잊지 못할 기호, 일종의 상징으로 변합니다. (중략) 주인공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전체 풍경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개는 내가 ‘풍경‘이라고 불렀던 소설의 윤곽이나 대략적인 줄거리가 우리 뇌리에 남지만, 우리는 주인공을 기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의 이름은 우리 상상 속에서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풍경의 이름이 됩니다. (74쪽)

우리 자신의 감정과 우리 삶의 작고 세부적인 것을 통해 전체 풍경에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유가 생깁니다. (중략) 나에게 소설 쓰기는, 풍경 속에서(세계에서) 소설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 감정, 생각 등을 포착해 내는 것입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어떤 소설 속에 있다면 사물, 가구, 방, 거리, 나무, 숲, 풍경, 창밖 경치,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주인공의 생각과 느낌의 일부로 보입니다.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는 소설의 전체 ‘풍경‘ 속에서 형성됩니다. (84-85쪽)

주제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 차이를 일반화시켜 봅시다. 어떤 작가들은 ‘단어적‘이고, 어떤 작가들은 ‘시각적‘입니다. 이 말은 어떤 작가들은 주로 독자의 ‘시각적 상상력‘에 호소하고, 어떤 작가들은 주로 ‘단어적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모든 작가는 시각적 상상력과 단어적 상상력에 동시에 호소합니다. (90-91쪽)

한 편의 소설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단어에서 그림으로 전환해야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실 읽기를 그림 보기보다 더 참여적이며 사적인 일로 만듭니다. (98쪽)

소설 독자들이 느끼는 희열은 박물관 관람객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소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우리의 지각이 만나는 순간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색깔, 소리, 말, 풍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기록하고, 최소한 어느 기간 동안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에게 속한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삶에 소설에 기록되어 보존된다는 느낌입니다. (130-131쪽)

중심부는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 일종의 통찰입니다. 깊은 곳에 있는 실재 또는 상상의 신비로운 어떤 지점입니다. 소설가들은 이 지점을 탐색하고 그곳이 함축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 소설을 씁니다. (147쪽)

소설 쓰기와 읽기는 우리 삶에서, 상상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 소재, 이야기, 주인공은 물론 사적인 세부 사항까지도 이 빛, 이 중심부와 통합시키는 것입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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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게 된 [사피엔스], 시간이 많다고 금방 읽히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다양하게 적용하며 읽을 수 있다. 

 

여러 호모 중에서 사피엔스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신화, 문화, 화폐, 제국, 윤리, 종교, 법, 돈, 국가, 사상 등)을 믿을 수 있는 종족, 그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의 행복은 발전되는 혁명으로 점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혁명이 진화되고 힘이 더해질 때마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지나간 곳에는 모든 종들을 사라지게 하고, 동물들을 멸종시켰듯이, 우리의 유전 코드에는 처음부터 없었던 조건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인지혁명으로 협력이라는 상생은 경쟁으로, 농업혁명의 잉여생산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의 소유로, 과학혁명은 동물과 생태계 파괴로 나아갔다.

무지를 깨달아서 시작된 과학혁명은 우리의 욕망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며, 전지전능한 신이 되려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무책임하다. 개인의 즐거움만 추구하고 있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비혼주의도, 코로나도, 만약 간디가 불가촉천민이라면(204쪽) 적용해 봐도 된다.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586쪽)’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옥의 티: 노아의 아들인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 은 그 아버지로부터...(206쪽) 

            HAM 함으로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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